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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 후 부모 앞서 즉사, 처절하게 원수 갚는 이야기

기자
권도영 사진 권도영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26)
설 차례상. 명절 뒤끝 각자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후유증이 남아 있을 터다. 긴 연휴 동안 즐거운 일이 많았다면 다행이고 이 경우엔 일상에 복귀하기 위한 시차 적응이 문제가 될 것이다. [중앙포토]

설 차례상. 명절 뒤끝 각자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후유증이 남아 있을 터다. 긴 연휴 동안 즐거운 일이 많았다면 다행이고 이 경우엔 일상에 복귀하기 위한 시차 적응이 문제가 될 것이다. [중앙포토]

 
명절 뒤끝, 각자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후유증이 남아 있을 터다. 긴 연휴 동안 즐거운 일이 많았다면 다행이고, 이 경우엔 일상에 복귀하기 위한 시차 적응이 문제가 될 것이다. 
 
요새는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어 제사니 차례니 치러내기 위해 겪어야 하는 힘겨운 과정을 과감하게 줄이고 온 가족이 함께 즐겁게 지내도록 서로 배려하며 묘안을 떠올려 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먼 길 찾아가거나 손님 맞이하는 일은 육체적, 감정적 노동을 수반하게 마련이어서 그 또한 갖가지 후유증을 만들어냈을 터다.
 
가장 친밀하면서 가장 말 안 통하는 가족
명절의 가장 큰 감정적 후유증은 가족 간 관계로부터 발생한다.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이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말이 안 통하는 관계이기도 한 것이 가족이다. 서로의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잘 알아차리고 내 입맛에 맞게 움직여 주면 세상 좋으련만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게 잘 안 될 때가 많다.
 
부부 사이에도 휴대전화에 상대방의 이름을 서로 ‘원수’라고 저장한 이들이 많다고 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부모 말 안 듣는 자식은 말 안 듣는 배우자보다 더 속상하고 미운 원수일지 모르겠다.
 
 
최근 종영한 ‘SKY 캐슬’이란 TV 드라마에서 원수의 자식으로 태어난 삼 형제 이야기가 소개됐다. 대한민국 0.1% 최상류층 집단, 그들의 자식 교육을 둘러싼 여러 모습이 꽤 현실감 있게 그려졌고, 덕분에 대중적 인기를 크게 얻은 드라마였다.
 
여기에서 입시 교육 전문가가 성정이 뒤틀려 있는 학생에게 “이게 바로 복수야” 하며 들려주었던 그 이야기는 만화 ‘신과 함께’에 등장했던 ‘차사본풀이’다. 제주도에 전해지는 무속신화인 ‘차사본풀이’는 강림도령이 저승차사가 된 내력을 풀이한다. 그 과정에 과양셍이의 아내가 나오는데, 여기서 원수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삼 형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부모 자식 사이가 원수지간이 될 수도 있는 내력을 짐작할 수 있다.
 
옛날에 동경국 버무왕에게 아들 칠 형제가 있었다. 아래로 삼 형제가 단명할 운명이라는 말을 듣고는 절에 보냈는데, 삼 형제는 십 년 기한을 채우지 못하고 집이 그리워 돌아오던 길에 과양셍이 아내에게 살해당했다.
 
삼 형제가 절에서 떠나올 때 주지승이 먹을 것 준다고 아무 집에나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하였지만 먼 길을 여행하며 배가 고파 과양셍이 집에 발을 들여놓았고, 이들이 가지고 있던 재물을 탐낸 과양셍이 아내는 삼 형제를 죽여 시체를 연못에 버렸다.
 
버무왕의 아들 삼 형제는 과양셍이 아내에게 죽임을 당한채로 연못에 버려진다. 과양셍이 아내는 연못가에 피어난 연꽃을 아궁이에 던지다 구슬을 발견하고, 세쌍둥이를 잉태한다. [중앙포토]

버무왕의 아들 삼 형제는 과양셍이 아내에게 죽임을 당한채로 연못에 버려진다. 과양셍이 아내는 연못가에 피어난 연꽃을 아궁이에 던지다 구슬을 발견하고, 세쌍둥이를 잉태한다. [중앙포토]

 
연못가에 예쁜 꽃이 피어나 과양셍이의 아내가 꽃을 꺾어다 집 안에 두었더니, 지나다닐 때마다 꽃이 머리를 잡아 뜯는 통에 아궁이에 던져 버렸다. 그 후에 아궁이에서 구슬을 발견한 과양셍이의 아내가 구슬을 입에 물고 장난질을 하다가 삼켜버렸다. 그때부터 태기가 있더니 과양셍이 아내는 열 달 뒤 아들 세쌍둥이를 낳았다.
 
과양셍이의 아내는 아들 세쌍둥이를 금이야 옥이야 끔찍하게 아끼며 키웠다. 최고로 좋은 음식을 먹이며 최고로 좋은 교육을 했고, 아이들은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훤칠한 인물에 반듯한 마음씨에 뛰어난 머리까지 골고루 갖추어 과양셍이 부부는 웃음이 끊일 날이 없었다. 삼 형제가 함께 과거를 보러 가더니 셋 다 급제하고 돌아와 나란히 절을 하니 과양셍이 부부는 그저 기쁘기만 했다.
 
그러나 절한다고 엎어졌던 세 아들이 영영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드라마에서 소개된 버전에는 말에서 떨어져 즉사했다고 했지만, 세세한 설정은 각 편마다 다를 수 있다. 말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부모에게 절하다가 그냥 영영 일어나지 않았다는 쪽이 훨씬 더 극적인 표현으로 느껴진다. 부모가 가장 극한 기쁨을 느끼는 그 순간에 뻔히 보는 눈앞에서 바로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에서 염라대왕 역을 맡은 이정재.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에서 염라대왕 역을 맡은 이정재.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밑도 끝도 없이 세 아들이 한 자리에서 숨이 끊어져 버리니 과양셍이 아내는 이성을 잃었다. 김치 원님을 찾아가 억울함을 풀어달라 하소연하였으나 원님이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과양셍이 아내가 미쳐 날뛰니 김치 원님이 “이 문제를 해결할 이는 이놈밖에 없다” 하고 불러들인 이가 강림도령이다. 그런데 이 강림도령이란 이는 똑똑하긴 하나 허랑방탕한 생활을 해 아내가 일곱이고, 원님이 불러들여도 도망갈 궁리만 했다.
 
그러나 현명한 첫째 부인의 지혜 덕에 염라대왕을 붙잡아 오라는 원님의 명을 시행할 방도를 찾게 되었고, 그렇게 저승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 일이니 그 자초지종은 저승에나 가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저승의 최고 우두머리 염라대왕 정도는 돼야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 강림도령이 등장한 이후엔 강림도령의 사연과 저승 여행, 그리고 염라대왕을 만나 담판 짓는 데까지 상당히 긴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무튼 어찌어찌 염라대왕은 과양셍이의 아내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밝혀내고 버무왕 삼 형제는 환생시킨 뒤 과양셍이의 아내는 사지를 찢어 죽였다. 이 일로써 강림도령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해 보인 덕에 저승차사의 임무를 부여받고 활약하게 되었다는 내력이다.
 
아들 삼 형제 원수 갚는 '차사본풀이'
'SKY 캐슬'에서 부모와 갈등을 빚던 영재(왼쪽)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뒤 잠적해버린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선의로 한 일에도 자식은 원망을 느낄 수 있으니 끊임없는 대화가 중요하다. [중앙포토]

'SKY 캐슬'에서 부모와 갈등을 빚던 영재(왼쪽)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뒤 잠적해버린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선의로 한 일에도 자식은 원망을 느낄 수 있으니 끊임없는 대화가 중요하다. [중앙포토]

 
옛이야기란 어차피 각자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눈에 보이고 가슴에 와 닿는 만큼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긴 하다. 그 힘이 좀 더 제대로 발휘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야기 자체를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차사본풀이’에서 과양셍이의 아내 이야기까지 함께 묶어 본다면 부모의 편애가 자매의 질투를 만들어냈고, 욕심에 눈먼 부모는 자식의 앞날을 망칠 뿐만 아니라 결국 자식으로 인해 자신도 큰 해를 입을 수 있다.
 
많은 옛이야기가 성급한 판단을 경계한다. 버무왕 삼형제도 십 년 기한을 채우지 못하고 그저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과 금기를 어기고 남의 말을 함부로 들은 것에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니 환생을 두 번이나 해야 하는 고난을 겪는 것이다.
 
우리 옛이야기에 원수의 자식으로 태어나 복수하는 이야기가 꽤 있어 하나의 유형을 형성하기도 한다. 함부로 죽인 구렁이가 자식으로 태어나 죽이려고 덤비기도 하고, 보통 이인(異人)이라고 불리는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이 복수하려고 태어난 아이임을 알아보고 아이를 불에 태워 죽이기도 한다. 혹은 아버지 당사자가 자신의 아이가 복수하기 위해 자기 아들로 태어난 원수임을 알아보기도 한다.
 
원수가 아니고서야 저럴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될 만큼 말 안 듣는 자식과 그 때문에 고통받고 갈등을 겪는 부모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제시하는 해법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선의로 한 일에도 자식은 원망을 느낄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 자식 사이에는 끊임없이 대화하며 조정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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