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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 공황장애 실직…빈곤 15년 시작됐다

질병 앓는 수급자 27% 정신질환 
서울 강북구 김모(64·여)씨는 15년 전까지만 해도 빌딩 청소 일을 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청소일을 하다 지하 식당에서 밥을 먹으러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에 난생 처음 이상한 일을 겪었다.  
 
"벽이 막 이상했어요. 벽이 나한테 다가오는 듯한 공포를 느꼈어요. 공포영화도 그렇게 무섭지 않을 거예요. 그때 상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영화 필름이 착착 끊기고 길이 막히는 것 같았죠.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찼고, 고함을 질렀으며, 그러곤 쓰러졌어요."
 
김씨는 빌딩 보안요원에게 업혀 병원 응급실로 갔다. 그는 "병원에서도 무섭고 힘들어 고함을 질렀던 것 같다"고 회상한다. 그는 가운에 정신과라 새긴 의사가 옆에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저는 정신과 환자가 아니에요"라고 소리쳤다. 주사를 맞고 이내 편안한 상태가 됐다. 의사는 '공황장애' '불안장애'로 진단했다.  
 
청소 용역회사 사장이 병원에 와 "그냥 치료 받고 집에서 쉬세요. 몸을 보살피는 게 가장 중요하죠"라며 해고를 통보했다. 김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 방세·쌀값·난방비·공과금 등을 내야 하는데, 딸과 할머니를 부양해야 하는데…. 김씨는 "그게 말이나 돼요? 병원 마당에서 막 울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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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그렇게 정신질환자가 됐고, 처음 몇 년간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발병 이후 일을 한 적이 없다. 김씨는 "아프기 전엔 기초수급자가 뭔지도 잘 몰랐다. 여유 있지는 않았지만 정부 보조금에 의지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결국 기초수급자가 됐다. 딸은 결혼했고 김씨는 혼자 산다. 지난해까지 술에 취해 살았지만 요즘엔 많이 줄였다. 병세가 많이 호전됐으나 가끔 심해질 때도 있다. 김씨는 "약 없으면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다. 약을 안 먹으면 불안해진다"며 "평생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매달 약 타러 병원에 가는 것을 잊지 않는다. 김씨는 월 50만원의 생계급여 정부 지원금으로 살아간다. 이걸로 공과금을 내고 생활하는데 살림살이가 매우 빠듯하다고 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김씨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가 외가에 의탁했다. 얼마 안 지나 집안을 돌보던 외할머니가 숨지며 가세가 기울었다. 어머니가 잘 돌보지 않았고, 술 장사를 한다고 김씨를 고아원에 보냈다. 중학생 언니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2년 후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와 빵집에서 일했다. 빵집이 문 닫자 일자리를 구하러 직업소개소에 갔다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김씨는 서울 외곽 도시의 기지촌으로 끌려갔다. 지금도 소개소 직원이 부모 없는 어린애라는 사실을 알고서 입이 찢어지던 게 생각난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다가 두 번째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그때 나이 15세였다. 거기서 14년을 보냈다. "고생 많이 했어. 너무 힘들게 살았어"라며 계속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 깊은 곳의 한의 일부를 토해 냈다.  
 
김씨는 "아무리 못살더라도 명절에 집에 가고 그래야 마음이 안정되는데, 막 떠돌아다니니까 병이 생긴 것 같아요. 제 생각에…"라고 말한다. 그의 넋두리는 계속됐다.  
 
"의사에게 물어보니까 맞대요. 너무 어릴 때부터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병이 생긴 거라고, 고생해서 생긴 거라고. 돈이 없어도 평범한 가족 사이에서 태어났으면 이런 병이 생기지는 않았을 텐데. 열 다섯 살이면 아직 애기인데, 세상에 부모 없다고 그런 데다 팔아먹어서…. 한창 배울 나이인데, 제대로 못 배워도 사람 대하는 예절은 배웠어야 하는데, 제대로 배우지 못해 내가 사람이 그래요. 제대로 못 컸어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의료급여(기초수급자) 대상자 중 김씨와 같은 정신질환자(치매 포함)가 가장 많다. 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진료를 받은 의료급여 대상자 159만1000명 중 정신 및 행동장애 환자가 42만8051명으로 26.9%를 차지한다. 고혈압(21.1%), 관절염(19.9%)보다 많다. 기초수급자가 아닌 일반인 중 정신 및 행동장애 환자는 6%에 불과하다. 2017년 기준으로 정신병원 입원 환자는 8만4000명이다. 이 중 의료급여 환자가 6만 명(71.4%)에 달한다. 빈곤과 정신질환이 밀접하다는 뜻이다.  
 
정신질환이 빈곤을 야기한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정신질환이 있으면 업무 수행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취업이 어렵거나 해고되고 대인관계가 어려워진다"며 "일자리를 갖더라도 소득이 낮은 단순 업무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빈곤이 정신질환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 과장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 불안증세나 불면증을 겪게 되고 사업 실패로 인해 공황장애가 오거나 장기적으로 취업이 안 되면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며 "이런 악순환이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트랜스제너레이셔널 트랜스미션(transgenerational transmission·세대 간 전이)이 일어난다"고 진단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세대간 역(逆) 전이도 있다. 경기도에 사는 김모(84·여)씨는 35세에 이혼했다. 1989년 어느날 갑자기 멀쩡하던 아들(현재 54세)이 성질을 내고 난리를 피웠다. 조현병이었다. 아들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김씨는 아들에게 매달렸다. 김씨는 "그때부터 죽지 못해 살았다"고 말한다. 막노동을 비롯해 안 해 본 일이 없다. 10년 전 김씨에게도 조현병이 찾아왔다. 머리에 벌레가 있는 것처럼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몇 년 지나 기초수급자가 됐다. 김씨는 그런 과정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서울 성북구 김모(63)씨는 사업에 실패하면서 빚 청산에 날아간 건물에 물끄러미 서 있었다. 오후 9시만 되면 멍청히 바라보면서 소주 두세 병을 마셨다. 그런 세월이 계속되면서 알코올에 중독돼 갔다. 입퇴원을 반복했다. 안 먹겠다고 맹세하고 나와서 또 먹는 일이 반복됐다.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혼자가 됐다. 지금은 기초수급자가 돼 월 50만원 정부 지원금으로 산다.  
 
최재영(청아의료재단 이사장)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회장은 "정신과 환자는 경제력이 약하고 사회생활이 힘들다"며 "정신질환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재활시설이나 적응시설이 부족한데, 이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건강보험 환자와 진료 수가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급여 환자의 하루 진료 수가는 건강보험 환자의 54.5%에 불과하다.
 
◆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이승호·김태호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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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