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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가 주는 교훈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한국과 프랑스에는 조직적이고 자발적인 정치 시위의 역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에서는 ‘노란 조끼’ 시위가 계속되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이 시위의 역할에 대한 여론이 갈리는 양상이 나타난다.
 
한국에서 대규모 시위 역사는 일제 강점기 일본의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3·1운동에서 시작한다. 광복 이후에는 시위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대통령이 축출되기도 했다.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 잡은 뒤에도 정치적 시위의 전통은 이어져 학생 집회, 노동자 집회, 정치 세력의 집회 등이 벌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수차례 촛불 집회가 열렸다. 서울에서 열린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는 국회의 탄핵안 결의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으로 이어졌다. 오늘날도 주말이면 서울 도심에서 각계각층의 시위대를 볼 수 있다.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된 정부가 왜 자발적으로 조직된 시위대의 압력에 굴복해야 하는가? 시위가 합법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의원 투표와 선출된 의원에 대한 신뢰에는 필연적 한계가 있다. 시위는 시민이 원하는 것을 투표와는 다른 방식으로 반영한다. 또한 선출된 대표들과 정당들이 현실에 무관심하고 결단력이 부족한 경우 정치인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시위를 할 수도 있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은 최근 많은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집단 시위와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 프랑스 법에 따르면 모든 프랑스 시민들은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자가용에 밝은 노란색 조끼를 비치해야 한다. 노란 조끼와 자동차의 연관성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노란 조끼 운동은 정부가 재정 긴축과 환경오염 방지 대책을 목적으로 유류세를 인상하는 세제 개혁안을 발표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촉발됐다.
 
글로벌 포커스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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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주민들보다 자가용 의존도가 높은 교외 거주자들은 정부의 결정에 곧바로 항의했다. 파리는 서울처럼 대중교통망이 촘촘히 구성돼 있어 자동차가 없어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도시이지만, 농업인들과 소도시 주민들은 그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없다.
 
노란 조끼 운동은 유류세 인상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보수·진보 세력 양측에 모두 관련된 훨씬 심층적인 문제를 건드린다. 전원생활에 대한 향수가 있는 보수층은 증세에 반감을 표하며 환경정책에 드는 비용에 의혹을 제기한다. 또한 시위대는 권력 집단을 겨냥해 정치와 경제의 유착을 비판한다. 그래서 노란 조끼 시위대는 일부 진보 세력에게서도 지지를 받았다. 시위가 시작된 이후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도는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12월 마크롱은 2500만 명의 프랑스 시민들이 지켜보는 생방송 연설을 통해 시위대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 그런데도 시위대의 과열된 분위기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노란 조끼 시위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던 서울의 촛불 집회는 젊은 부모들이 유모차를 밀고 나올 수 있을 정도로 평화적인 시위였다. 반면,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는 자주 폭력적인 양상을 띠었다. 원칙보다는 분노와 혼란에 사로잡힌 시위자들이 도로를 점거했다. 자동차를 전복시키고 창문을 깼다. 바리케이드에 대한 낭만적인 애착은 200여 년 전의 프랑스 대혁명이 남긴 불행한 유물이다.
 
시위대가 폭력을 행사하자 프랑스 정부는 시위 진압이라는 난제에 직면했다. 현재까지 노란 조끼 시위로 경찰과 시위대 양측을 합쳐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중 10여 명은 사망했다. 이런 위기가 어떤 식으로 해결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노란 조끼 운동에 맞서 질서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파란 조끼’ 시위와 ‘붉은 스카프’ 시위가 열리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웃지 못할 브렉시트(Brexit)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여러 민주주의 선진국들이 사회적 분열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에만 국한된 문제라면 그나마 수월하게 해결되겠지만 이면에는 그보다 더 뿌리 깊은 정치적 사안들이 얽혀 있다. 경제력뿐 아니라 문화적 우월성이나 신분으로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차별하는 나라의 경우 민주주의가 원활히 기능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노란 조끼 시위가 주는 교훈은 이렇다. 중도주의적인 절충안을 제시하는 민주주의 정치보다 최루탄과 고무탄을 발사하는 경찰과 대치하며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쪽이 더 흥미진진하기는 하다. 하지만 극적이고 감정적인 정치 때문에 치르게 될 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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