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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청산되지 않은 길 위의 식민지

서현 건축가·한양대 교수

서현 건축가·한양대 교수

부란자. 다섯 수레 책의 독서로는 뜻을 알 길이 없다. 사전 편찬에 인생을 바쳤어도 알기 어렵다. 기름때 범벅의 현장용어기 때문이다. 마후라·쇼바·세루모다 등이 가족 일원이다. 고향에서 각기 플런저펌프·머플러·쇽압소버·셀프스타트모터였던 단어들이다. 그런데 어쩌다 이런 몰골로 이역의 삼십 촉 다마, 아니 전구 밑을 배회하게 되었을까.
 
일본 메이지 시대 철학자들은 낯선 서양 추상개념들을 치열하게 번역해나갔다. 정의·민주·사회 등. 그러나 나중에 자동차에 묻어 들어온 기계부품 용어들은 수입 후 방치되었고 일본 정비공들 입에 맞게 변태했다. 그 단어들이 자동차와 함께 식민지에 이식되었다. 그 끝에 단어인지 문장인지 야릇한 것이 하나 붙어 있다. 오라이.
 
일제시대 도시 사진에는 신작로를 질주하는 검은 승용차가 등장한다. 승용차 뒷자리에 총독부 관리가 탔을 것이다. 나중에 친일파로 단죄될 예정의 조선인이었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묶으면 권력자들이다. 차창 밖 먼지를 뒤집어쓰고 걷는 것은 지저분하고 한심한 조선인 민초들이었다. 신작로는 권력 비대칭 공간이었다.
 
광복 후에도 승용차는 권력 표현과 신분 상징으로 남았다. 도로는 여전히 높으신 분들의 질주공간이었다. 한국 도로에 담긴 불평등한 출생의 비밀이 연속극 마지막 회가 아닌 일상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따르릉따르릉 비켜나세요. 자동차가 나서니 자전거까지 거만해졌다. 저기 가는 저 사람 꼬부랑 노인,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노약자건 뭐건 보행자는 바퀴 앞에서 비켜서라. 물렀거라.
 
서현칼럼

서현칼럼

한국 도시의 차도 유지상태는 선진국 최상위급이다. 서울의 간선 차도는 전체가 주작대로다. 그러나 인도 풍경은 근본 미상 국가들의 도시와 별로 다르지 않다. 번잡한 구조물 널린 지뢰밭이고 바닥 포장 상태는 백두대간이다. 오토바이가 질주하고 자동차가 슬근거린다. 자전거는 차로 분류한다면서 자전거도로는 인도에 그려놓는다. 겨울철 눈이 오면 밤새 차도에 염화칼슘 뿌려준다. 모두 세금이다. 그러나 너희 집 앞 인도의 눈은 너희가 치우라고 계도 문구만 무성할 따름이다. 치울 너희가 없는 눈 덮인 인도에서 넘어진 할머니의 치료비를 지자체가 책임을 느껴 대납해줬다는 미담은 들리지 않는다.
 
인도는 완전 개방 공공공간이지만 차도는 자동차에만 개방된 제한적 공공공간이다. 사람이 인도 위에 누우면 구급차가 오지만 차도 위에 누우면 경찰차가 온다. 차도를 보행자가 어슬렁거리면 차량통행 방해하는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범법자가 되지 않고 차도를 이용하려면 자동차를 사야 한다. 기름도 사 넣어야 한다. 그런데 차도는 공공공간이므로 유지관리에 세금을 쓴다. 이 경우 세금 징수·집행의 이상적 방법은 집합적 이용자가 내고 쓰는 것이다. 여기 유류세가 등장한다. 원유가는 내렸는데 왜 휘발유 값은 요지부동이냐며 주유소에서 납부하는 세금. 유류세가 공정한 것은 차도를 많이 이용하면 더 내는 절묘한 장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화석연료 고갈과 대기오염의 우려가 높아지면서 전기차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수소차도 어차피 수소 발생에 에너지를 써야 하니 기본 연료로 보면 전기차와 별다를 바 없다. 문제는 석유 대신 전기가 연료로 사용되면서 유류세를 통한 도로이용 공정성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차도는 자동차 가진 자들만 배타적이되 무료로 사용하는 공간이 된다. 세금으로 유지 관리하면서.
 
정부는 전기차 구매에 보조금까지 지급하고 주차비까지 감면한다. 승용차 구매를 권장하는 것이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아니 승용차 하나 장만해라. 보행자의 세금이 강자의 편의를 위해 전용되는 정책 아닌지 물을 일이다. 미래 기간산업 육성이라는 건 알아듣겠는데 육성되는 것이 황제 연봉, 세습 고용으로 지탄받는 미래는 아닌지 궁금하다. 전기건 수소건 달리는 건 자동차일 따름이다. 보행환경 팽개치고 승용차 사라고 세금 쓰며 부추기는 건 정의·민주·사회 아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가득 질주하는 도시와 유모차 미는 보행자가 산책하는 도시. 어느 풍경에 우리 사회, 도시의 미래가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싸고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전기생산 방식을 놓고 사회 갈등이 극심하다. 답은 없으니 억압이나 타협만 남을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석유사용 제한의 대안은 전기사용 권장이 아니고 에너지 소비 억제다. 석유차 억제의 대안은 전기차 장려가 아니고 대중교통 확충이다. 그게 싸고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로 가는 길이다. 정책결정권자들이 승용차 뒷자리에서 창밖으로 보는 한 이 도시는 여전히 식민지다. 대한민국은 이대로 직진해도 좋을까. 오라이?
 
서현 건축가·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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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