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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美와 손잡은 후 고성장···北 '경제 롤모델' 최적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2014년 9월 지상 65층, 지하 5층 규모로 개관한 인텔리전트 복합빌딩인 ‘롯데센터 하노이’. 베트남 경제 번영의 상징이자 한=-베트남 협력의 증거다. [연합뉴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2014년 9월 지상 65층, 지하 5층 규모로 개관한 인텔리전트 복합빌딩인 ‘롯데센터 하노이’. 베트남 경제 번영의 상징이자 한=-베트남 협력의 증거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27~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베트남을 택한 것엔 북한 미래에 대한 메시지가 담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핵을 포기하고 한국·미국과 협력하면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리는 ‘베트남을 보라’는 제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때보다 더욱 분명한 대북 메시지가 된다. 싱가포르는 권위주의형 일당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성장을 이뤘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관심을 끌 만했다.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그는 회담 전날 싱가포르의 야경을 돌아보며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싱가포르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을 많이 배우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구 550만 명의 싱가포르는 2018년 추정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명목금액 기준 6만1716달러로 세계 9위의 부국이다. 물가 등을 감안한 구매력(PPP) 기준으로는 9만8014달러로 세계 3위다.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국제기구와 분석가들이 2015년 기준 GDP 약 250억 달러, 1인당 GDP 약 1000달러로 추정하는 북한엔 지나치게 높은 목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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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보다 더 현실적=그럼 점에서 베트남 경제는 ‘우등생’이긴 하지만 싱가포르에 비해 북한엔 훨씬 현실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2018년 추산에 따르면 베트남의 GDP는 명목금액 기준 2474억 달러로 세계 47위, PPP론 7286억 달러로 세계 35위다. 1인당 GDP는 명목금액 기준으로 2603달러, PPP론 7882달러에 이른다. 2018년 7.08%, 2017년 6.91%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뤘다. 한반도의 약 1.5배인 33만1230㎢의 국토에 9456만 명의 인구가 사는 베트남의 실업률은 2018년 4분기 2.2%로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다. 평균 월 급여는 2017년 기준으로 650만 동(미화 약 300달러)에 이른다. 도이머이(쇄신)와 개방경제로 성장을 누리면서 베트남 공산당의 집권에는 문제가 없다.
 
◆고난의 행군 거쳤지만 재기=사실 이런 베트남도 북한의 ‘고난의 행군’ 같은 경제난을 겪은 적이 있다. 1975년 적화통일을 이룬 베트남은 70~80년대 북한처럼 국가가 생산·분배·가격·유통·대외무역·금융 등 국가가 경제 부문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사회주의 중앙집권 경제체제를 운영했다. 개인의 창의성이나 자발성이 무시되면서 효율이 떨어졌고, 비효율과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베트남 공산당은 생존과 인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85년 대대적인 개혁인 ‘도이머이’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배급제 폐지, 가격 자유화, 국유기업 민영화, 시장 개방과 외국인 투자 유치, 농업개혁으로 시작해 협동농장·집단농장 폐지와 수출가공지구 설립, 노동집약적 경공업 중심의 수출산업 육성으로 확대했다.
 
남 교수는 “주목할 점은 베트남 공산당이 이 과정에서 과거 1955~75년 20년간 총부리를 겨눴던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은 82년 미국과 접촉해 실종 미군과 전쟁포로 문제를 협의했다. 세계 최대의 경제를 지닌 미국과 손잡아야 투자도 받고 산업도 일으키며 시장도 확보할 수 있다는 인식이 바탕이 됐다. 승전국인 베트남이 과거의 적국을 만나고 협상하며 교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도 작용했다.
 
호찌민 베트남 주석(왼쪽)과 김일성 북한 주석이 만나는 모습. 평양 유치원에 걸린 사진이다. [연합뉴스]

호찌민 베트남 주석(왼쪽)과 김일성 북한 주석이 만나는 모습. 평양 유치원에 걸린 사진이다. [연합뉴스]

◆한국 등  해외자본 잇따라 투자=베트남은 92년 12월 한국과 수교하면서 외국인 투자법을 대대적으로 고쳐 외자·외국기업 유치의 물꼬를 텄다. KORTA 자료에 따르면 88년 이후 30년간 한국의 대베트남 외국인 직접투자(FDI) 누적 액수는 575억 달러로 일본(491억 달러), 싱가포르(418억 달러), 대만(308억 달러)보다 많은 부동의 1위를 차지한다. 과거 대우나 현재의 삼성전자 등은 베트남에 대거 투자했다.
 
베트남은 95년 7월 미국과 수교하고 아시아경제개발협력기구(아세안)에도 가입해 대외 개방과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베트남의 대한·대미 화해와 협력의 결과는 현재의 번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마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해 7월 베트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과 베트남 간 교역량은 지난 20년 동안 8000%로 늘었고, 미국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경제 성장을 돕고 체제 보장을 지원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을 강조한 셈이다.
 
◆클린턴 이후 미국 대통령 모두 찾아=미국도 베트남과 관계 증진에 힘써 2001년 빌 클린턴, 2006년 조지 W 부시, 2015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각각 베트남을 찾았다. 클린턴 이후 역대 미 대통령은 임기 중 반드시 한 번은 베트남을 방문했다. 베트남은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으며, 2010년에는 미국 등과 환태평양경제협력체(TPP) 가입을 논의했다.
 
이런 배경의 베트남은 북한과 미국 모두에 매력적이다. 미국 입장에선 북한에 ‘과거’와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투명한 진열장’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을 치른 적대관계인데 관계가 정상화됐고, (베트남의) 개혁·개방이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나라”라며 “북한이 앞으로 비핵화를 진행하면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베트남은 미국의 자신감과 북한의 심리적 안정감이 맞아떨어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단, 회담 결과에 따라선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비핵화 작업에 속도가 나지 않고 삐걱거릴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게 베트남이란 장소는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고, 미국 내 여론도 악화할 수 있다.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지지부진할 경우 주민들에게 베트남에 대한 환상만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할 수 있다. 
 
북한, 베트남전 당시 무기와 조종사 보낸 과거의 혈맹=북베트남은 일찌기 50년 북한과 국교를 수립하고 57년 7월엔 호찌민(胡志明) 베트남 주석이 평양을, 58년 11월 28일부터 12월 2일까지는 김일성 북한 주석이 하노이를 각각 방문한 인연도 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60년대 북한은 북베트남에 다량의 무기와 물자를 지원했으며 전투부대도 보내 혈맹관계를 맺었다. 북한이 파병한 87명의 북한군 조종사는 베트남 공군 소속 미그기를 몰고 미군기와 전투를 벌이다 이 중 14명이 전사했다. 67년 하노이 부근 박장(北江)성에 묘지를 조성했다가 2002년 북한 당국이 유해를 모두 송환했지만 묘터는 계속 관리되고 있다. 북한이 공병부대를 보내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방부를 지하갱도로 옮기는 공사를 했다는 설도 있다. 물론 베트남이 92년 한국과 수교하고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탈북자를 한국에 보내면서 북한과 관계가 틀어지긴 했지만 공산당 수준에선 '과거 혈맹' 수준의 관계를 이어가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심리적으로 더욱 편안하게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장소로도 꼽힌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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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