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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수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한의 경제 성장, IMF 가입이 결정한다

북한 개발과 성장동력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핵화하면 ‘밝은 미래’가 보장돼 있으며, 이를 위해 ‘민간 부문(투자) 역할론’을 강조했다. 지난해 국내 증권사가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전망’ 세미나는 대성황이었다. 주최 측은 “한국의 성장 속도가 느려지면서 북한과의 협력을 마지막 희망이라고 보거나, 남북 경협을 자신의 비즈니스에 접목할 방법을 고민하는 고객이 많았다”고 말했다.
 
북한이 비핵화하고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중장기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한국·중국·베트남처럼 개발 초기 소득 수준보다 인적 자원이 우수하다. 북한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국가들도 주변에 많다. 그러나 북한이 몇 년 만에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수는 없다. 북한이 개혁·개방한다 해서 ‘북한 특수’가 생기지는 않는다. 중장기적으로 북한이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해서 단기간에 ‘블루 오션’이 되지는 않는다.
 
북한은 세계에서 1인당 소득이 가장 낮은 최빈국 중 하나다. 경제 규모가 라오스와 비슷하다. 라오스는 한국 경제 규모의 1% 수준이다. 라오스 정도 경제 규모를 가진 국가와의 긴밀한 경제 협력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겠지만, 성장동력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라오스는 최소 10년 이상 고도성장을 구가해야 그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된 중국에 이어 최근 베트남이 부각되고 있다. 베트남은 북한·중국·라오스·쿠바와 함께 사회주의 유일 정당 체제를 유지하는 5개 국가 중 하나다. 그렇지만 베트남은 북한·쿠바와 달리 중국·라오스처럼 경제체제는 시장경제로 운용하고 있다. 베트남은 1인당 소득이 2400달러 수준이지만 인구가 1억 명에 근접해 경제 규모는 2200억 달러(2017년 기준)가 넘는다. 이는 라오스의 13배가 넘고, 한국 경제 규모의 15% 수준이다. 베트남은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베트남이 있기까지 수십 년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베트남의 개혁·개방이 86년 12월 도이머이(Doi Moi) 선언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면 올해로 33년이 됐다. 현재 베트남은 경제 규모가 라오스(북한)의 13배 이상이다. 북한이 연 10%씩 고도성장해도 최소 20년이 걸려야 현재의 베트남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북한이 올바른 방향으로 개혁·개방을 지속한다면 십수 년 후에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때를 처음 본 사람은 천지개벽을 운운할 것이나, 계속 지켜본 사람은 경제에 지름길은 없으며 공짜는 없다는 경제학 제1 법칙을 떠올릴 것이다.
 
앞으로 ‘북한 개발’이라는 주제는 주목받는 화두가 될 것이다. 그런데 90년대 초·중반 북한 최악의 경제 위기 ‘고난의 행군’ 시절, 2010년대 초반 ‘통일 대박’ 등 북한 개발 논의의 광장에서 상당수 기존 연구는 마치 우리가 북한 개발의 주체인 듯한 논리 전개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북한 개발의 방향을 정하고 바라는 방식대로 개발할 개연성은 정치적 통일이 되기 전에는 거의 없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타결되면 김정은 정권이 북한 개발의 주체임은 더욱 명확해진다. 마치 우리가 북한 개발을 주도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하는 오류는 결국 비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쏟아낼 뿐이다. 우리는 북한 개발을 ‘지원’하고 ‘협력’하는 주체이다.
 
국가 경제 개발 재원은 중장기적으로 민간 투자가 주로 조달한다. 공적 재원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경제 개발의 주축이 되지만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다. 북한 개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간 기업은 이익을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 돈이 된다면 들어가고, 아니면 나온다. 북한을 개발하는 사업에 관심을 가지는 국내 민간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북한 개발을 위해서는 민간 투자가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을 신속히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기초 인프라 확충과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민간 투자 관련 제도·법률 구축이 핵심이다.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용감하게’ 선점 효과를 노리고 북한에 투자한 이집트 통신 기업 오라스콤의 실패는 반면교사다.
 
2008년 오라스콤은 지분 75%를 투자해 북한 체신청과 합작으로 이동통신사 고려링크를 설립했다. 10년 뒤 북한 휴대전화 가입자가 500만 명에 달하는 등 오라스콤은 상당한 수익을 확보했다. 그런데 오라스콤은 이 수익을 이집트로 가져갈 수 없었다. 북한 당국은 오라스콤이 이 수익을 공식 환율(100원=1달러)이 아닌 시장 환율(8000원=1달러)로 환전하라고 했다. 시장 환율로 환전하면 80분의 1로 가치가 떨어지므로 오라스콤은 수익을 송금하지 못하고 있다. 오라스콤은 2013년부터 북한 신규 투자를 중단했다. 2015년 오라스콤의 북한 독점 사업권이 만기가 되자 북한 당국이 제2 이동통신사 별을 설립해 경쟁 체제가 됐다. 오라스콤은 결국 고려링크를 계열사에서 협력사로 전환했다. 고려링크는 유엔 안보리 제재에도 북한에서 영업을 계속할 수 있으나, 오라스콤은 수익을 이집트로 송금하려면 북한이 제대로 개혁·개방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많은 전문가는 민간 투자가 북한 개발을 견인하는 마중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민간 투자는 북한 개발이 잘 진행됐다는 결과물이지 마중물이 아니다. 삼성·SK·LG 등 대기업이 기초 인프라가 결여된 북한에 투자를 본격화하기는 쉽지 않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휴대폰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국제 민간 투자가 북한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려면 오라스콤 사례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런 확신을 심어주는 핵심이 국제금융기구 가입이다.
  
북한 경제 발전 로드맵 - 시작은 IMF, 마무리는 WTO 가입
국제사회에는 북한과 같은 시장경제체제 이행국이 거쳐야 할 로드맵이 정립돼있다. 먼저 IMF와 세계은행에 가입한다. 아시아개발은행(AD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도 자연히 뒤따른다. 국제금융기구 가입과 함께 북한은 국제 기준에 따른 통계 작성, 원조 수용 역량 강화 등 기술 지원과 기초 인프라 확충 자금 지원을 받는다. 그러면 선진국 등 국제 사회도 북한에 대한 공적 지원을 시작한다.
 
또 미국·프랑스 등 선진국과의 국교가 정상화되면 이들로부터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무역협정을 체결한다. 무역협정 체결은 북한의 수출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북한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다. WTO 가입을 위해서는 회원국들과 가입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은 신규 가입국이 최소한의 국제 기준에 부합되는 제도·법률·기초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가입 조건으로 요구한다. 북한의 WTO 가입은 국제 질서에 성공적으로 편입된다는 의미다.
 
북한 개발은 최빈국의 경제 개발이라는 고전적 과제와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경제체제를 이행하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과정이다. 30년 전에는 이런 사례가 생소했으나 지금은 다르다. 베트남은 국제사회에서 모범 국가로 통한다. 국제개발은행 직원들은 베트남을 담당하기를 바란다. 실패할 확률이 낮은 베트남 개발 지원 사업을 담당하면 승진이 쉽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86년 12월 도이머이 개혁·개방 선언을 했지만, 국제사회의 지원과 투자는 거의 없었다. 베트남의 개혁·개방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것은 베트남군이 캄보디아에서 철수하고 파리평화협정을 맺은 이후다. 세계은행이 다시 베트남에 대한 자금 지원을 시작하고 베트남이 미국과 수교한 95년쯤 국제사회의 지원과 투자는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지원과 투자는 30억 달러 수준에 그쳐 베트남 경제 규모에 비해 많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은 미국으로 수출되는 봉제업·신발업 위주의 중소기업들이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베트남은 2006년 말 WTO 가입 이후 해외직접투자(FDI)가 급격하게 유입된 베트남이다. 도이머이 이후 20년, 미국과 수교 후 11년이 지난 뒤였다.
 
비핵화한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설 때 베트남은 벤치마크가 될 수 있다. 국제 민간투자를 본격 유치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 국제 공적 지원의 역할이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할 때가 되면 국제 공적 지원도 경쟁과 협력의 대상이 된다. 세계 각국이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북한 개발 지원에 나설 것이다. 북한에 대한 ODA를 효율적으로 공여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를 이끌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북한 개발 초기에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북한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중소기업은 주주권이 분산된 대기업보다 과감한 투자 결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다. 개성공단과 같은 중소기업 전용 특구 개발 방식이 북한 개발 초기의 남북 경협 방식으로 효율적이다.
 
장형수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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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