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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선수들 국적 포기하지만…한국 골문 지키는 달튼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귀화 선수 골리 맷 달튼이 자신의 대한민국 여권을 들어 보였다. 뒤쪽으로 골리 장비를 착용한 그의 사진이 보인다. [임현동 기자]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귀화 선수 골리 맷 달튼이 자신의 대한민국 여권을 들어 보였다. 뒤쪽으로 골리 장비를 착용한 그의 사진이 보인다. [임현동 기자]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16명의 외국 선수가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국가대표선수가 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절반 가까운 7명이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알렉산더 겜린(미국)은 파트너 민유라와 후원금을 놓고 갈등을 빚다가 결별했다. 여자 바이애슬론 에바쿠모바는 한국생활에 적응 못해 러시아로 떠났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랜디 희수 그리핀과 대넬 임, 캐롤라인 박 등 한국계 귀화 선수 3명도 학업을 위해 돌아갔다. 단기적 성과를 위한 ‘일회성 귀화’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남자 아이스하키 맷 달튼(33·안양 한라·한국이름 한라성)처럼 변함없이 한국 국가대표로 뛰는 선수도 있다. 캐나다 출신 달튼은 2016년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얻었다.
 
최근 안양빙상장에서 만난 달튼은 “지난해 평창 올림픽 당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덕분에 외국팀과 외국 리그에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난 한국이 더 좋아 제의를 거절했다”면서 “난 평창 올림픽을 위해 귀화한 게 아니다. 내 하키 인생에서 올림픽은 그저 한 부분일 뿐이다. 한국 아이스하키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남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일시적으로 귀화한 경우가 거의 없다. 귀화 선수 라던스키는 한국에서 10년간 뛰었다. 올림픽 때만 반짝하고, 귀화 선수로 뛴 게 아니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선수들과 뛰었다”며 “한국 선수들이 매일 노력하면서 발전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처음에는 한국 선수와 귀화 선수의 기량 차가 컸지만, 이제는 확실히 차이가 줄었다”고 덧붙였다.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귀화 선수 골리 맷 달튼이 자신의 대한민국 여권을 들어 보였다. 뒤쪽으로 골리 장비를 착용한 그의 사진이 보인다. [임현동 기자]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귀화 선수 골리 맷 달튼이 자신의 대한민국 여권을 들어 보였다. 뒤쪽으로 골리 장비를 착용한 그의 사진이 보인다. [임현동 기자]

동네북 신세였던 한국 아이스하키는 귀화 선수 7명이 가세한 뒤 전력이 업그레이드됐다. 평창 올림픽에서 세계 6위 체코(1-2패), 세계 4위 핀란드(2-5패), 세계 1위 캐나다(0-4패)를 맞아 선전을 거듭했다.
 
지난해 평창 올림픽 당시 조국 캐나다를 상대했던 달튼은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은 평창 올림픽 사진을 종종 본다. 당시 우리 가족은 캐나다 골리 가족과 함께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그때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고 말했다.
 
달튼이 2014년 실업팀 한라에 입단할 당시만 해도 그의 가족들은 북한 관련 뉴스를 보며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달튼은 “걱정하던 가족들이 벌써 한국에 서너 차례 다녀갔다. 시즌이 끝난 뒤 캐나다에 돌아가면 이웃들이 ‘북한과 전쟁이 나면 참전하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하는데 이제는 일일이 대답하기 귀찮을 정도다. ‘한국은 안전한 나라다. 전쟁에 대해 생각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말해준다”고 밝혔다.
육군수도군단에 입소해 특공대원 체험을 한 달튼. [사진 안양 한라]

육군수도군단에 입소해 특공대원 체험을 한 달튼. [사진 안양 한라]

 
그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달튼은 “캐나다에 갔다가 돌아올 때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내국인 줄에 서 있었는데, 직원이 ‘줄을 잘못 섰다’고 하더라. 한국 여권을 보여줬더니 당황해하며 사과했다”며 웃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26일 육군 수도군단에 입소해 특공대원 체험도 했다. 입소 신고식을 마친 뒤 얼굴에 위장크림을 칠하고 각개전투에도 참여했다.
 
달튼은 “어릴 적부터 국가를 지키는 군인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골리 장비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20분 정도 걸려 착용하는데 군부대에서는 전투복과 장비를 30초 이내에 착용하는 것이 신기했다. 특공대원 체험은 단 하루였지만, 국가를 지킨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얼굴에 위장크림을 칠하고 대한민국 육군 체험에 나선 맷 달튼(가운데). [사진 안양 한라]

얼굴에 위장크림을 칠하고 대한민국 육군 체험에 나선 맷 달튼(가운데). [사진 안양 한라]

 
그는 2017년 12월 16일 핀란드 대표팀과의 경기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핀란드 선수가 때린 퍽이 달튼의 마스크를 강타하는 바람에 얼음판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이가 깨질 정도로 큰 부상을 당했지만 그는 끝까지 골문을 지켰다. 달튼은 “당시 충격이 너무 커서 완전히 뻗었다. 입안에 뭔가 씹혀서 마스크 파편인 줄 알았는데, 뱉어보니 깨진 치아였다. 아팠지만 경기를 포기할 순 없었다”고 밝혔다.
 
한국은 1982년 일본에 0-25로 참패를 당한 뒤 34년간 상대전적이 1무19패에 그쳤다. 하지만 2015년 3-0으로 이긴데 이어 2017년에도 4-1로 완승을 거뒀다. 달튼은 “선수들이 일본을 꺾은 뒤 무척 좋아해 깜짝 놀랐다. 나중에 일본과 역사적으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3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남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경기. 한국 골리 맷 달튼이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다. 마스크에 있는 그림은 이순신 장군. [연합뉴스]

지난해 2월 3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남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경기. 한국 골리 맷 달튼이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다. 마스크에 있는 그림은 이순신 장군. [연합뉴스]

달튼은 지난해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마스크에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새겼다. 골문을 굳게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표현을 금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 탓에 이 마스크를 쓰지 못했다. 달튼은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역사 공부를 했다. 당시 한국 아이스하키가 처한 상황이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의 상황과 비슷했다”면서 “하지만 대회 일주일을 앞두고 ‘이순신 마스크’를 못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이 컸다. 나중에 세계선수권에는 착용하고 출전했다”고 말했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은 삼겹살이다. 시즌을 마치고 캐나다에 돌아간 뒤에도 삼겹살 생각이 나서 일부러 한국식당을 찾은 적도 있다. 달튼은 “캐나다의 한국식당에 갔는데 안양의 삼겹살집에서 먹던 그 맛이 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돌판 삼겹살을 먹으러 달려갔다”고 말했다.
 
달튼은 3~4년 정도 한국에서 더 뛰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는 캐나다로 돌아가 가족들과 추억을 나눠야 한다고 했다. 그 전까지 그는 경기력은 물론 품행이 훌륭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한국하키 발전을 위해 힘쓴 선수로 남고 싶다고 했다. [사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달튼은 3~4년 정도 한국에서 더 뛰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는 캐나다로 돌아가 가족들과 추억을 나눠야 한다고 했다. 그 전까지 그는 경기력은 물론 품행이 훌륭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한국하키 발전을 위해 힘쓴 선수로 남고 싶다고 했다. [사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달튼은 이제 30대 중반이다. ‘앞으로 한국에서 몇 년 더 뛸 것 같냐’고 묻자 그는 “3~4년 정도 더 한국에서 뛰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맷 달튼은…
출생: 1986년 7월4일(캐나다 온타리오주 클린턴)
체격: 키 1m87㎝, 몸무게 89㎏
한국이름: 한라성(2016년 특별귀화)
포지션: 골리
경력: 2009~10 미네소타 베미지 주립대
NHL 보스턴 브루인스
2011~12 러시아 비티아스 체호프
2012~14 니즈니캄스크
2014~ 안양 한라
한국 경력: 아시아리그 우승(2016, 2017, 2018)
세계선수권 월드챔피언십 승격(2017)
평창올림픽 출전(2018)
취미: 프로야구 관람(두산 팬)
 
안양=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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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