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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 뼈로 괴물 소리 만듭니다"…국내 유일 '게임 폴리 아티스트'

 
 
 판교는 대한민국의 새 성장동력이다. 공장 굴뚝 하나 없는 이곳에 1200여 개 기업, 7만 여 명의 인재들이 한국판 구글ㆍ페이스북을 꿈꾸며 일한다. 중앙일보는 2019년 한해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디지털 시리즈를 통해 판교 태크노밸리 기업과 사람들의 꿈ㆍ희망ㆍ생활을 해부한다.    
 
 
엔씨소프트 판교 사옥 지하2층에 위치한 폴리 녹음실. 잡동사니가 가득한 이곳에서 게임에 들어가는 다양한 소리들이 만들어 진다. 사진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 판교 사옥 지하2층에 위치한 폴리 녹음실. 잡동사니가 가득한 이곳에서 게임에 들어가는 다양한 소리들이 만들어 진다. 사진 엔씨소프트

 
 
1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엔씨소프트 지하 2층 폴리 녹음실. 녹음실 내부는 잡동사니 보관소 같았다. 자동차 문짝, 타이어, 깨진 벽돌 등이 널브러져 있다. 폐차장이나 고물사 등에서 직접 구해왔다는 이 물건들은 게임 사운드 제작에 쓰이는 소품들이다. 녹음실 내부에는 콘크리트 바닥과 모래 바닥도 설치돼 있다. 무질서 해 보이는 이 공간은 국내 유일의 게임 ‘폴리 아티스트(Foley Artist)’인 박준오(39)씨의 업무 공간이다. 그는 이곳에서 이승기(33) 레코딩 엔지니어와 함께 게임에 들어가는 다양한 소릴 만들어 낸다. 
 
‘폴리 아티스트’는 영화와 게임을 비롯한 각종 영상에 입히는 다양한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무성영화에 처음 소리를 입힌 ‘잭 폴리(Jack Foley)’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국내에는 영화와 게임 분야에 10명이 채 안 되는 폴리 아티스트들이 활동 중이다. 박 씨는 국내에서 유일한 게임 전문 폴리 아티스트다. 사운드가 게임의 품질을 가르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면서 2014년 엔씨소프트에 합류했다. 박 씨가 속한 엔씨소프트 사운드센터에는 그를 비롯해 작곡과 사운드 디자인 등 게임 음향을 담당하는 60여 명의 직원이 일한다. 영화 제작 규모의 5.1 채널 영상 사운드 믹싱룸과 폴리 스튜디오를 갖춘 곳은 국내 게임사 중 엔씨소프트가 유일하다. 
 
국내 유일의 게임 폴리 아티스트인 박준오씨. 화면 속 칼이 날아가는 소리를 바이올린 활과 미장용 흙손을 문질러 재연하고 있다. 사진 엔씨소프트

국내 유일의 게임 폴리 아티스트인 박준오씨. 화면 속 칼이 날아가는 소리를 바이올린 활과 미장용 흙손을 문질러 재연하고 있다. 사진 엔씨소프트

 
 
감자탕 뼈로 해골 부딪치는 소리를  
게임에 흔히 등장하는 드래곤이나 각종 몬스터들은 세상에 없는 존재다. 박 씨는 실체가 없는 존재들에게 ‘실감 나는’ 소리를 입혀준다. 세상에 없는 소리를 만들지만, 소리의 원천은 일상 생활 주변에서 나온다.  
바이올린 활로 공사장에서 쓰는 ‘미장용 흙손’을 문질러 ‘휘잉’하며 칼날이 공중을 가르는 소리를 만들어 내는 식이다. 몬스터나 해골 병사들이 달그락 거리며 움직이는 소리는 감자탕집에서 얻은 뼈로 만든다. 박 씨가 뼈들을 흔들고 서로 부딪히니 해골 병사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여기에 마카다미아 껍질 등을 바스락 거려 얻은 소리를 섞어 넣었다. 칼에 맞은 괴물이 갈라지거나 하는 소리는 게나 가재 같은 갑각류의 등껍질을 벗길 때 나는 소리로 만든다. 그는 “상상 속 존재들이지만, 우선 머리 속으로 어떤 소리가 날지 그려본 다음에 거기에 최대한 재질 등을 맞춰서 소리를 만든다”며 “감자탕 뼈는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 준다고 말하고 잔뜩 얻어와 쓴다”고 웃으며 말했다.  
 
국내 유일의 게임 폴리 아티스트인 박준오씨(사진 왼쪽)와 사운드 엔지니어인 이승기씨. 박씨는 "이씨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는 작업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사진 엔씨소프트

국내 유일의 게임 폴리 아티스트인 박준오씨(사진 왼쪽)와 사운드 엔지니어인 이승기씨. 박씨는 "이씨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는 작업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사진 엔씨소프트

 
영화판 거쳐 게임 업계로
박 씨는 원래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었다. 하지만 ‘음향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학교를 옮겨 방송영상음향을 전공했다. 거기서 영화 후반작업을 담당하는 학회에서 활동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사운드를 직접 녹음해보자’는 생각에 올해로 14년 째 폴리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는 “초창기 만들었던 사운드 중에 구토하는 장면에 넣은 소리가 있는데, 같이 작업한 작업자들이 ‘정말 직접 구토하는 것 같다’고 칭찬을 해줘 쾌감을 느꼈었다”고 말했다. 시작은 영화판이었다. ‘왕의 남자’, ‘놈놈놈’ 등 50여 편의 각종 효과음을 만들었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누적 관객 1억명만 채워보자’는 목표로 버텼다. 1억 명을 채운 뒤인 2014년 마침 엔씨소프트에 자리가 났다. 영화와 게임 사운드는 원리는 같지만 추구하는 바는 조금 다르다. 영화는 ‘가능한 사실의 소리에 가깝게’ 내는 걸 목표로 한다면, ‘게임은 강조하고 싶은 소리를 최대한 도드라지게 만들어 낸다’는 차이다.
 
여자 하이힐 신고, 고물상 누비기도
에피소드도 많다.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걸음 소리는 그가 직접 하이힐을 신고 걷는 소리를 녹음해 사용한다.도도한 느낌이 들도록 높은 굽을 구해 신는다. 그는 “총각일 때는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의 신발을 빌려서 소리를 만들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을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는 아빠다. “아이들 장난감에서 어른들 물건에선 나지 않는 다양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종종 농부로 변신할 때도 있다. 날이 맑을 때면 이승기 엔지니어와 함께 사옥 앞 금토천변에 나가 풀이나 갈대를 베어온다. 이를 말려서 게임 캐릭터가 풀 숲 등을 걷는 소리를 낼 때 쓰기 위해서다. 주변에 이사를 가는 사람이 있을 땐 버리는 물건은 꼭 달라고 한다. 정말 의도치 않은 물건에서 생각하지 못한 소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에서 존재하는 여러 가지 소리를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건 버릇이 됐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두드려보는 건 기본. 그는 “대개 새 물건보다는 헌 물건, 젖은 물체보다는 수분이 없는 물체에서 좋은 소리가 나온다”고 했다. 단골 고물상도 있다. 수시로 들러서 고물들 속에서 ‘소리가 날 만한’ 물건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단골 고물상이 더는 영업을 않기로 해 새로운 고물상을 찾아야 한다.  
 

100개 만들면 10개도 활용 못해
폴리 아티스트를 천직으로 여기지만, 역시 쉽지 않은 직업이다. 우선 원하는 소리를 얻기가 만만치 않다. 100개의 소리를 만들었을 때 정작 사용할 수 있는 건 10개가 채 안 된다. 박 씨는 “이것저것 시도만 해보고 마음에 드는 사운드를 얻지 못할 땐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실존하지 않는 드래곤이나 몬스터 등의 소리를 만드는 만큼 머리 속으로 어떤 소리를 만들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는 “영상 속 사물에 어울리는 재질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물건들을 머릿 속으로 조합해 어떤 소리가 날지 생각해 본다”고 설명했다. 게임 속 해골 병사들의 소리를 내기 위해 재질이 비슷한 감자탕 뼈를 활용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DB 만들어 8000여개 소리 보관 중
그래서 최근에는 자신들이 제작한 소리 중 특히 유용한 것들을 모은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8000여 가지의 소리를 모아뒀다. 그는 “사운드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분들은 있지만, 폴리 아티스트를 전문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기관이 없는 만큼 도제식으로 교육이 이뤄지고,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다”며 “틀에 갇힌 생각보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과 행동들이 보다 나은 소리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박 씨의 소속 부서인 엔씨소프트 사운드 센터는 게임과 관련한 모든 사운드의 개발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엔씨사운드(NCSOUND)’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NCSOUND))을 운영 중이다. 리니지와 블레이드 & 소울, 아이온 등 엔씨소프트 게임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와 뮤직비디오 등을 공개하고 있다. 엔씨 측은 이 채널을 통해 앞으로 OST 개발 스토리와 오디오북 등 사운드 관련 다양한 콘텐트를 순차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이수기ㆍ남궁민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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