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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성매매 여성 종착지는 섬···"모두 한통속, 죽어야 나온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1962년 생겨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가 재개발된다. ‘1월 말까지 모두 비우라’는 최후통첩을 받았지만 10여 개 업소의 성매매 여성 40여 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설연휴가 끝나면 강제 철거가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면서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벼랑에 몰린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집창촌에서 30여 년을 보낸 성매매 여성 B씨(53)의 증언을 ’옐로하우스 비가(悲歌)’ 시리즈에서 소개한다. 

대구 도원동 집창촌 '자갈마당' 모습. [연합뉴스]

대구 도원동 집창촌 '자갈마당' 모습. [연합뉴스]

B씨가 발을 들일 무렵 집창촌 여성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어쩌다 감시를 피해 도망가도 금방 잡혀 오기 일쑤였다. 잡혀 온 여성은 며칠 동안 골목에 보이지 않았다. 업주가 도망간 벌로 이들을 감금해 때리고 굶겼기 때문이다. B씨는 “무자비하게 폭행을 하면서도 손님을 받는데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굴은 손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게 일을 봐주는 폭력배 ‘삼촌’들은 “또 도망가면 식구들에게 알린다”고 협박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집창촌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유린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여기에 일조했다. 
 
“같이 일하던 언니가 손님을 가장한 인신매매범에게 속아 전라도 외진 마을로 잡혀갔어요. 울면서 내보내 달라니까 속옷만 입혀 다락에 가둬놓더래요. 나중에 보니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한가득이에요. 겨우 속옷만 입은 채 도망 나와 택시를 탔는데, ‘아무 경찰서나 가자’라니까 한 바퀴 돌더니 다시 업소에 내려주더라는 거예요.” 
 
이 여성은 어쩔 수 없이 몇 개월 동안 업주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겨우 외지에서 온 손님에게 신고를 부탁해 탈출했지만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업주·단골·경찰 모두 한통속” 
 
“특히 섬 있잖아요. ○○도 같은 곳은 우리끼리 얘기로 죽어야 나올 수 있다고 했어요. 도망치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업주·선장이 모두 한통속이거든요. 경찰도 믿을 수 없다는 얘기도 했어요. 단골손님도 못 믿어요.” 
 
○○도는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 마지막 가는 곳으로 여겨졌다. 육지의 항구에서 배를 타고 2시간 정도 들어가야 나오는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폐쇄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섬에서는 범죄를 당해도 도망가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강하다. 2016년에는 한 섬에서 주민들이 새로 부임한 초등학교 여교사를 성폭력 한 사건이 일어났다. 2014년에는 전남의 한 섬에서 장애인들을 감금해놓고 몇 년 동안 노동력을 착취한 사건이 알려져 공분을 샀다. 
 
섬은 호젓한 낭만이 있지만 때론 약자들에게 감금의 공포를 유발한다. 공개적으로 도움을 청하기 힘든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선 섬에 대한 두려움이 종종 화제에 오른다. 
1990년 9월 24일 경찰에 붙잡힌 인신매매범들. 서울시경은 인신매매범 일제 단속에서 84명을 적발해 58명을 구속하고 26명을 입건했다. [중앙포토]

1990년 9월 24일 경찰에 붙잡힌 인신매매범들. 서울시경은 인신매매범 일제 단속에서 84명을 적발해 58명을 구속하고 26명을 입건했다. [중앙포토]

때론 성매매 여성들이 집창촌에 사실상 감금된 미성년자를 탈출시키기도 한다. B씨는 다달이 집에 돈을 보내야 하는 형편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집창촌에 머물렀다. 그러나 성매매를 강요받는 16세 소녀의 탈출을 도운 기억이 뿌듯하게 남아있다. 
 
“딱 봐도 어린앤데 스무 살이래요. 맨날 아프다면서 우는 거예요. ‘도망가면 다시는 이런 데 안 올 거냐’고 물으니 절대 안 온대요. 친한 언니들과 짜고 목욕탕에서 이모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게 하고 그 틈을 타 도망가게 했어요. 차비를 주고 무조건 기차역으로 가라 했지요.” 
 
업주들은 여성들이 딴생각을 못 하도록 늘 혹사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물론 돈 욕심도 컸다. 한 달 가운데 쉬는 날은 이틀. 소개소를 끼고 온 여성은 소개비를 갚아야 해 한 달 내내 일했다. 
 
“생리할 때 솜을 틀어막고 일해 몸이 망가진 여성들이 많았어요. 중절 수술한 다음 날도 바로 일해야 했어요. 그때는 피임을 제대로 못 해서 몇 번이나 임신하는 여성도 많았습니다. 아프면 일 못 한다고 때리고, 도망가다 잡혀 오면 때리고. 말 안 들으면 감금하고요. 요즘도 휴대전화 뺏고 도망 못 가게 지키는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성매매 여성들의 감금·폭행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은 2000년 9월 전북 군산시 대명동의 윤락가 속칭 ‘쉬파리 골목’ 화재 사건 때였다. 한 유흥업소에서 불이 나 빠져나오지 못한 20대 여성 5명이 질식사했다. 이후 조사에서 이들이 인신매매로 잡혀 와 감금된 채 성매매를 강요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업소 창문에는 쇠창살이 있었으며 두꺼운 철제문으로 된 출입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불나자 감금된 채 질식사한 여성들 
 
1년여 뒤 쉬파리 골목과 가까운 군산시 개복동의 한 윤락업소에서 또 불이 나 여성 14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이들 역시 감금된 채 성 착취를 당한 것이 밝혀졌다. 두 사건은 2004년 성매매 특별법(‘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2년 군산시 개복동 유흥업소 화재 현장을 화재 감식반이 점검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2년 군산시 개복동 유흥업소 화재 현장을 화재 감식반이 점검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후에도 집창촌 내 인권 유린은 계속됐다. 2008년 대전 유천동 성매매 업소에서 탈출한 종사 여성들이 여성단체와 언론 등에 업주의 감금과 갈취 등을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 
 
이어 2009년에는 성매매 여성이 달아나자 업주가 붙잡아와 감금한 채 마구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강현준 전국한터연합회(성매매 종사 여성 인권 단체) 회장은 “요즘도 전국 집창촌에서 여성의 휴대전화 명의를 업주나 삼촌으로 해 친구 맺기, 위치 추적 등으로 감금 아닌 감금을 한다”며 “신체 구속이 아니더라도 선불금 지급 등을 법에 어긋나지 않게 교묘하게 바꾸는 등 여성이 벗어나지 못하게 올가미를 친다”고 말했다. 
 
아직도 이런 범죄가 가능한 이유는 성매매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불법 행위자의 낙인이 찍힌 이 여성들은 도움을 청하려는 생각도 못 하고, 숨죽인 채 갖은 협박과 폭력에 시달릴 뿐이다. 
 
B씨는 자갈마당에서 업주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도에 넘겨 버리겠다는 말이 제일 무서웠다”고 기억했다. 국가도, 수사기관도 집창촌에 사는 여성들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ins.com 
 
<10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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