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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이국종·유발 하라리…명사 122인 최다 추천 '인생 책'은

지난해 말 11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한 네이버 북 큐레이션 코너 '지서재'에 자주 추천된 책들. [사진 네이버]

지난해 말 11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한 네이버 북 큐레이션 코너 '지서재'에 자주 추천된 책들. [사진 네이버]

“또 하나의 야구”(전직 프로야구선수 이승엽)  
“건축의 에너지”(건축가 승효상)  
“작업실”(미술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유홍준)  
“좋은 음식을 만들게 하는 신선한 식재료”(요리 연구가 김소희)  
“난중일기”(외과의사 이국종)  
“무한한 혼돈”(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사회 각계각층 명사들이 이렇게 표현한 것. 바로 책과 서재다. 그들이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자양분이 돼준 책들을 지난 11년간 직접 추천받아 정리해온 네이버 연재코너 ‘지서재’가 지난해 12월부로 막을 내렸다. 2008년 8월 영화감독 박찬욱을 시작으로 세계적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소설가 김훈, 클래식 음악가 장한나, 범죄 심리학자 이수정, 물리학자 정재승 등 이 코너를 거쳐 간 국내외 학자‧전문가‧예술가 등은 122인에 달한다.  
 
‘지식인의 서재’(~2016)란 이름으로 출범한 코너는 ‘전문가의 지서재’(2017)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2018) 등 여러 번 이름이 바뀌었지만, 명사들의 삶에 영감을 준 책을 소개하는 형식은 이어졌다. 이렇게 11년간 추천받은 도서가 4108권. 가장 많은 명사가 언급한 필독서는 무엇일까.  
 
명사 122인 최다 추천한 '인생 책' 1위는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

네이버에 따르면 1위는 중남미 대표 고전으로 꼽히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이었다.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영광을 누리다 한순간 사라져간 마을을 무대로 100년에 걸친 한 집안의 흥망성쇠를 그렸다. 소설가 조정래‧황석영과 만화가 이현세, 물리학자 정재승, 가수 이적 등 13명이 추천했다. 이 책을 “3~4년에 한 번 다시 꺼내 읽는다”는 경제학자 장하준은 “남미는 500년 걸친 식민 역사부터 너무 부당한 일이 많았다. 소위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하는데, 현실을 이렇게 말도 안 되게 표현하지 않으면 도저히 받아들이고 편히 살 수 없는 사회들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문학장르가 탄생했다. 남미 역사‧문화를 이해하며 읽으면 참 기가 막힌 책”이라고 설명했다.  
 
5위권 내 유일한 한국 작가, 신영복 『강의』  
2위는 소설가 김훈·김연수, 한국사 강사 설민석, 건축가 승효상, 의사 박경철 등이 추천한 그리스 철학가이자 작가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가 차지했다. 고민 많은 청년 ‘나’가 윤리‧종교‧조국 따위 틀을 웃음으로 단번에 깨뜨리는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를 만나게 되는 얘기다. 이어 3위 창조성 연구 학자 미셸 루트번스타인의 인문교양서 『생각의 탄생』은 외화번역가 이미도, 영화평론가 이동진, 국악인 황병기 등, 4위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미술사를 700쪽에 담은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유홍준 교수, 소설가 한강, 만화가 이현세 등이 추천목록에 올렸다. 5위는 이해인 수녀, 방송인 김제동, 유홍준 교수 등이 필독서로 꼽은 신영복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가 선정됐다.  
 
최근 JTBC 드라마 ‘SKY 캐슬’에 나와 다시 화제가 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진화학자 장대익, 뇌과학자 김대식, 응용수학자 존 캐스티 등 지지로 15위에 올랐다. 추천 책 장르론 소설(24.9%)이 가장 많고 사회‧역사‧문화(21.7%), 인문분야(17%) 순이었다.
드라마 'SKY 캐슬'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주제로 독서토론을 하는 장면. [사진 JTBC]

드라마 'SKY 캐슬'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주제로 독서토론을 하는 장면. [사진 JTBC]

 
외과의사 이국종 "경외한다" 말한 소설가는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작가는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를 되짚은 인문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였다. 국내 작가 중엔 김훈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가 이순신 장군의 1인칭 시점으로 임진왜란부터 노량해전까지 2년여를 다룬 소설 『칼의 노래』가 자주 꼽혔다.  
 
지서재가 만난 명사 중 최다 30만건 조회수를 올리며 주목받은 중증외상센터 외과의사 이국종은 『칼의 노래』에 대해 “인생 최고의 책. 하루에 몇 번씩 다시 읽기도 한다”고 했다.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을 끝없이 일으켜 세운 이순신 제독의 모습이 생생했다.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제 상황에 대입해 제 이야기로 다시 써내려갈 수 있었다. 김훈 작가에 깊은 경외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2년 전 인터뷰 당시 응급상황이 자주 발생해 이 코너 최장 인터뷰 시간(6시간)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국종 교수는 판문점을 넘어 귀순한 북한 병사를 살려내 국제적인 인물이 됐다. 2003년부터 주한미군 중증외상 치료도 전담하고 있다. [사진 CNN 캡처]

이국종 교수는 판문점을 넘어 귀순한 북한 병사를 살려내 국제적인 인물이 됐다. 2003년부터 주한미군 중증외상 치료도 전담하고 있다. [사진 CNN 캡처]

 
아이돌부터 이선희‧조용필 등 중견 뮤지션까지 히트곡만 300여편 넘는 작사가 김이나가 “저를 정화해주는 문체다. 작업하다 막힐 때 펼친다”는 책도 『칼의 노래』였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꼽은 "20세기 최고 예언서"
소설가 김훈이 꼽은 인생 책은 뭘까. “서재에 책이 별로 없다. 각종 언어‧국어‧한자사전과 우리나라 여러 법전 등 필요한 책들뿐”이라는 그는 화재 진화법, 중장비 작동법, 항해술 등을 다룬 책을 즐겨 읽는다 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그러는데, 세상의 길과 연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독서”라고 했다. 그런 그가 “어렸을 때부터 봤고 평생을 옆에다 놓고 보는” 책은 송나라 성리학자들이 초학자를 위해 쓴 입문서 『근사록집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게 아쉬워 추천한 책도 있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제가 읽었던 공상과학 소설 중 최고이자 20세기 최고의 예언서”라며 『멋진 신세계』를 꼽았다. 대한민국 1세대 프로파일러인 이수정 범죄 심리학자는 국내 미출간된『폭력의 생물학(The Biology of Violence)』을 소개했다. “지금 한국사회는 인간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게 범죄 발생의 또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했다.  
 
다독가 박찬욱 감독이 사랑한 만화 『멋지다 마사루』
만화 『멋지다 마사루』

만화 『멋지다 마사루』

어릴 때부터 톨스토이를 정기적으로 다시 읽으며 “마음의 키를 잰다”는 클래식 음악가 장한나 등 명사들의 독서 습관도 흥미롭다. 물리학자 정재승은 정독할 책과 속독할 책을 구분해 읽고, 봤던 책을 다시 되새김질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영화보다 책 읽는 시간이 더 길다”는 박찬욱 감독은 한꺼번에 100권의 책을 추천하며 다독가의 취향을 드러냈다. 한국에서 “으뜸 문장”으론 이문구의 소설 『관촌수필』을, 해외에선 커트 보네거트를 들며 『멋지다 마사루』 『보노보노』『요츠바랑!』 등 만화에 대한 애정도 표했다.  
 
지난해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인터뷰를 끝으로 종료된 ‘지서재’. 정순지 네이버 지식백과 서비스 매니저는 “10여 년 전만 해도 없던 북 큐레이션 서비스의 시초”라고 돌이키며 “지식 공유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책 추천 코너로 돌아올 것”이라고 전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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