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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16대 종손이 권하는 '복을 만드는 방법'

기자
송의호 사진 송의호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41)
이근필 퇴계 선생 16대 종손이 ‘수신10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송의호]

이근필 퇴계 선생 16대 종손이 ‘수신10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송의호]

 
우리 정신문화를 찾아 나섰다. 1월 26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의 종택. 찬바람에 손이 시렸다. 16대 종손 이근필(87) 옹이 두루마기 차림으로 마당까지 나와 방문객을 맞았다. 나라얼연구소(소장 황영례) 회원 20여 명은 종손을 따라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으로 들어섰다. 정자 마루에 자리를 정한 뒤 이 옹은 방문객과 먼저 맞절을 했다. 그리고는 방문객을 편히 앉게 한 뒤 자신은 꿇어앉은 자세로 “찾아와 고맙다”고 했다.
 
그는 추월한수정의 내력을 우선 설명했다. 귀가 어두워 보청기를 꼈고 목소리는 작았다. 
“퇴계 선생이 돌아가신 지 145년이 지나 제자 후손들이 학덕을 기리기 위해 갹출해 지었다. 정자 이름은 ‘가을 달이 찬 물에 비쳤다’는 주자(朱子)의 시구에서 따왔다. 퇴계 선조의 투명한 성품을 뜻한다. 정자는 그 뒤 두 차례 불이 났다. 후손들은 그때마다 다시 돈을 거둬 복원했다.”
 
방문객을 맞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근필 퇴계 선생 16대 종손. [사진 송의호]

방문객을 맞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근필 퇴계 선생 16대 종손. [사진 송의호]

 
마루 위 편액을 차례로 설명한 이 옹은 이어 봉투가 든 자료를 하나씩 돌렸다. 봉투에는 자신이 직접 붓으로 쓴 ‘造福(조복, 복을 만든다)’이란 글씨가 들어 있었다. 10여 년째 종택 방문객에게 글씨를 전해 온 이 옹은 요즘 들어 ‘남의 선행을 알리자’는 ‘양선(揚善)운동’을 시작했다.
 
‘조복’ 글자 옆에는 ‘隱惡揚善(은악양선)’ ‘惟人所召(유인소소)’라 새긴 붉은 인장이 찍혀 있다. 양선운동의 방법이다. 이 옹은 “복은 빌어서 오지 않고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근필 종손이 직접 써서 나눠 준 글씨 ‘조복’과 ‘의재정아’. 글씨 위는 ‘은악양선’을 새긴 목걸이. [사진 송의호]

이근필 종손이 직접 써서 나눠 준 글씨 ‘조복’과 ‘의재정아’. 글씨 위는 ‘은악양선’을 새긴 목걸이. [사진 송의호]

 
남의 흉이나 허물은 입에 올리지 말고(은악)
미담이나 선행을 드높여(양선)
복을 만들어라(조복)
복이나 화는 오직 사람이 부르는 바에 달렸다(유인소소)
 
이 옹은 “이런 방법으로 국민 모두 올곧은 선비가 됐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자료에는 고인이 된 포항공대 권오봉 교수가 쓴 『퇴계선생 일대기』도 들어 있다. 읽어 보고 공감하면 같이 이야기를 나누라는 것이다. ‘은악양선’이라 새긴 목걸이도 넣었다. 또 다른 봉투에는 ‘義在正我(의재정아, 의리는 나를 바르게 하는 데 있다)’라 쓴 글씨가 있었다.
 
퇴계 선생이 태어나신 태실. 퇴계의 할아버지 집인 노송정 종택 안에 있다. [사진 송의호]

퇴계 선생이 태어나신 태실. 퇴계의 할아버지 집인 노송정 종택 안에 있다. [사진 송의호]

 
종손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도덕성 회복이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이 옹은 추월한수정이 지어진 과정처럼 “종택이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기만 했다”며 “그래서 자신도 미력이나마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택은 양선운동에 동참할 사람을 모으고 있다. 퇴계 종택은 연간 수만 명이 찾는다.
 
회원들은 이날 종택 방문에 앞서 도산서원을 찾아 퇴계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상덕사(尙德祠)에 참배했다. 선생을 뵙는 의식이다. 이날 대표로 분향한 양명수 이화여대 교수는 “이곳에서 직접 선생을 떠올리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선생의 학문은 연구할수록 치밀함에 놀란다”고 말했다.
 
나라얼연구소 회원들이 도산서원 상덕사에서 퇴계 이황 선생을 뵙는 의식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나라얼연구소]

나라얼연구소 회원들이 도산서원 상덕사에서 퇴계 이황 선생을 뵙는 의식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나라얼연구소]

 
선생이 직접 설계한 소박한 도산서당도 둘러봤다. 안내를 맡은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신종주 수련기획실장은 “퇴계 선생은 도산서당에서 책을 볼 때 성현을 대하는 자세로 읽었다”며 “책 앞에서 절대 눕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도산서당 앞 금송은 서원 입구로 옮겨져 있었다. 일본이 원산지 아니냐는 논란에 휘말렸던 소나무다.
 
종택을 나온 뒤 회원들은 낙동강과 문필봉이 보이는 퇴계 묘소를 찾았다. 기대승이 쓴 비석이 정면 아닌 측면으로 세워진 게 눈길을 끌었다. 퇴계 선생이 태어난 태실이 보존된 노송정 종택에도 들렀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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