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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나부랭이라고? 그 말 듣는 알바 기분 생각해 봤나

기자
장연진 사진 장연진
[더,오래] 장연진의 싱글맘 인생 레시피(12)
나부랭이의 사전적 의미. [사진 구글 검색화면 캡처]

나부랭이의 사전적 의미. [사진 구글 검색화면 캡처]

 
일기를 쓰다 말고 열이 받아서 ‘나부랭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본 적이 있다. 그 와중에도 글 쓰는 사람의 직업의식이 꿈틀댄 건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을 스스로 경계한 건지, 아무튼 그 치밀어 오르는 노여움의 뿌리를 파고 싶었다.
 
①종이나 헝겊 따위의 자질구레한 오라기. ②(‘~ 나부랭이’ 꼴로 쓰이어) 어떤 부류의 사람이나 물건을 낮잡아 이르는 말. 실, 헝겊, 종이, 새끼 따위의 잘고 시시한 조각을 뜻하는 일차적 의미를 읽는데 이미 쉽게 가라앉지 않는 내 분노의 정체를 생생히 알 것 같았다.
 
“엄마, 나 이제 알바 그만둘까 봐.”
그날 저녁 식탁에서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이던 둘째가 말했다. 사회생활 경험도 쌓을 겸 제 용돈을 벌겠다며 실내 인테리어 소품 및 주방용품 매장에서 2년째 주말 알바를 하던 참이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매장 직원뿐만 아니라 손님에게까지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대하는 매니저 밑에서 더는 일 하고 싶지 않단다.
 
또 처음에 그 매장에서 알바하고 싶었던 이유가 제 전공인 디자인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는데, 본사에서 독창적인 디자인을 개발하기보다는 손쉽게 타 회사 제품을 납품받거나 카피를 해 새 물건이 들어와도 별로 자극이 되지 않는단다.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초창기 멤버인 40대 초반의 매니저가 다른 매장으로 옮기고 저와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부매니저가 새 매니저가 될 때부터 익히 예견되던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침묵을 지킨 또 다른 이유는 둘째의 화법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둘째는 뭔가 결심을 밝힐 때 자기감정부터 앞세우지 않았다. 스스로 명분을 찾고 싶은지 나름의 타당한 이유를 먼저 꺼낸 뒤, 그런 마음을 먹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나중에 말하는 편이었다.
 
백화점 행사장에서 둘째에게 과장이 '알바 나부랭이'라고 했다. 옆에 서 있던 매니저가 팔로 툭툭 치며 눈치를 줬지만 둘째는 내가 왜 이 사람들한테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pixabay]

백화점 행사장에서 둘째에게 과장이 '알바 나부랭이'라고 했다. 옆에 서 있던 매니저가 팔로 툭툭 치며 눈치를 줬지만 둘째는 내가 왜 이 사람들한테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pixabay]

 
“어제 백화점 행사장에서 우리 회사 본사 과장이 나한테 알바 나부랭이라고 하는 거 있지.”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늦은 아침을 먹는데 둘째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ㅇㅇ는 알바 나부랭이잖아.” 무슨 말끝에 이 말을 하는 과장을 옆에 서 있던 매장 매니저가 팔로 툭툭 치며 눈치를 주는데, 내가 왜 이 사람들한테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고 했다.
 
그 말을 처음 듣는다면 말을 안 한다며. 업무적으로 실수해도 그런 표현은 삼가야 하는데, 얼마 전 매장에서 사적인 대화 도중 매니저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그 말을 툭 내뱉더란다. 기분이 확 나빴지만 그날은 처음이어서 별 뜻 없이 농담 삼아 한 말이려니 애써 자위하며 넘어갔는데 어제는 정말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고 했다.
 
두 사람이 서로 사귀는 사이인데 평소 매니저가 둘 만의 공간에서 그런 표현을 썼으니까 남자 친구인 과장이 자기를 그렇게 대하는 게 아니겠냐며. 아무리 연인 사이라도 본사 과장쯤 됐으면 데리고 있는 직원을 그렇게 비하하면 안 된다고 좋게 타이르지는 못할망정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주워섬기다니! 백화점 주방용품 할인행사에 참여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애가 이틀간 휴무를 반납하고 멀리 타 지역까지 가서 백화점 자체 교육까지 받고 일손을 보탰는데 고생했다는 말은 못할망정 그런 막말을 일삼다니!
 
성년이 넘은 자식의 일에 ‘헬리콥터 맘’처럼 나설 수도 없고 나는 대신 둘째의 분노를 지지해 주었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한 번 만 더 그딴소리 하면 가만있지 말라고. 본사 인사팀에 전화해서 매니저에게 알바 나부랭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적절한 표현인지 물어봐야겠다고 너도 웃으며 되받아치라고.
 
인건비 절약 등 회사 차원에서 다 필요 때문에 뽑은 인력을 알바 나부랭이라고 함부로 찧고 까부는데, 아르바이트생들 파업하면 대한민국 경제가 안 돌아간다고 아이의 무너진 자존감을 세워 주었다. 우리 집에서 10분이면 되는데 엄마가 너희 매장 가서 접시 하나 산 뒤 트집 잡아 매니저 나부랭이 주제에 운운하면 그래도 웃음이 나올까, 하며 보다 속이 후련하도록 분풀이도 해 주었다. 둘째가 그제야 응어리가 좀 풀리는지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를 쳤다.
 
나는 둘째에게 우리는 모두 물리학적으로는 별가루, 즉 우주진으로 이루어진 '우주먼지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는데 감히 누가 누구를 업신여길 수 있겠느냐 말했다. 끝으로 "우리 모두 서로에게 경외감을 가지는 동시에 겸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앙포토]

나는 둘째에게 우리는 모두 물리학적으로는 별가루, 즉 우주진으로 이루어진 '우주먼지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는데 감히 누가 누구를 업신여길 수 있겠느냐 말했다. 끝으로 "우리 모두 서로에게 경외감을 가지는 동시에 겸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앙포토]

 
“너무 속상해하지 마. 그래 봤자 너희 과장과 매니저 누워서 침 뱉은 격이니까.” 서로 흥분이 가라앉은 뒤엔 아이의 마음을 차분히 다독였다. 둘째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았다.
 
“모든 생명체는 지구로 쏟아져 내리는 우주먼지에서 비롯됐으니까! 우리 인체는 저 우주 공간에서 날아온 별 가루, 즉 ‘우주진(宇宙塵)’이라는 아주 작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한 나라의 대통령에서부터 기업의 아르바이트 직원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적으로는 다 ‘우주먼지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는데, 감히 누가 누구를 업신여길 수 있겠느냐고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끝으로 이 말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모두 서로에게 경외감을 가지는 동시에 겸손해야 하는 거야!”
 
장연진 프리랜서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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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