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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김정은, 영변뿐 아니라 모든 핵 시설 폐기 약속”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스탠퍼드대 비핵화 강연에 앞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광조 JTBC 기자]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스탠퍼드대 비핵화 강연에 앞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광조 JTBC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2차 북·미 정상회담 시간과 장소를 오는 5일 국정연설 때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같은 날 스티브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핵 시설 폐기→핵·미사일 신고→보유고 폐기로 이어지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그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 로드맵을 제시했다. 지난해 10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방북 때 “미국이 상응조치를 하면 영변을 넘어(Beyond Yongbyon) 전체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시설 폐기를 허용하겠다”고 구두 약속한 사실까지 처음 공개하면서다.
 
핵 시설 폐기는 비건 대표가 강연에서 밝힌 비핵화 로드맵의 첫 단계다. 그는 “김 위원장이 언급한 영변 너머로 뻗어 나간 시설과 단지들은 북한의 플루토늄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변 단지 내 우라늄 농축 시설뿐 아니라 북한 전역에 퍼져 있는 비밀 시설을 모두 없애 핵 물질 추가 생산을 중단하라는 의미다.
 
외교 소식통은 “지난해 9월 평양 선언 때는 영변의 영구적 폐기만 언급된 상황에서 ‘영변 너머까지 폐기’라는 김 위원장의 구두 약속을 공개한 건 이례적”이라며 “실무협상을 앞두고 김 위원장 입을 빌려 2차 정상회담의 마지노선을 압박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건 대표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2차 정상회담에서 상당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 진전과 북측의 대담하고 진정한 행동을 기대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지난달 18일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상당한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직접 압박했다는 뜻이다.
 
핵 시설 폐기의 다음 단계로는 ‘포괄적 신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비건 대표는 “비핵화 단계가 최종적이 되려면 그 전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미사일 프로그램 전모를 파악해야 하며 그러려면 포괄적 신고를 받아야 한다”며 “국제 기준에 따른 주요 시설에 대한 전문가 방문 및 검증도 합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고와 사찰·검증이 2단계란 의미다. 그는 “북한도 플루토늄·우라늄 시설 폐기를 약속하며 ‘그 이상’이란 결정적 단어를 추가했다”며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려면 훨씬 많은 일이 남아있는 만큼 이는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비건 대표는 이어 마지막 단계로 “모든 핵 물질과 무기, 미사일과 발사대 및 다른 WMD 보유고의 제거와 파괴 등을 확실히 해야 한다”며 보유 중인 핵·미사일 폐기를 제시했다. 그는 “이 모든 게 실무협상에서 반드시 다뤄야 할 로드맵”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이행할 경우 이전에 생각했던 어떤 것도 초과하는 보상을 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비건 대표는 미국이 검토 중인 상응조치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김 위원장은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는 조건으로 이들 시설에 대한 후속 조치를 승인했다”며 “정확히 어떤 상응조치를 취할지 후속 회담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는 비건 대표가 3일 방한할 예정이라고 밝혀 이르면 4일부터 판문점에서 북·미 실무협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비건 대표는 상응조치의 하나로 한반도 종전선언 채택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70년 한반도 적대 행위를 종식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며 “전쟁은 끝났으며, 북한을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핵화 계획과 더불어 우리의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줄 외교(관계)를 개선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평양 연락사무소 개소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에게 북한의 견실한 경제 개발 비전을 제시했다”며 “비핵화 완성과 더불어 적절한 시점에 우리는 많은 나라와 함께 투자를 동원하고 인프라를 개선하며 북한 주민들이 이웃 나라처럼 부를 누릴 수 있도록 경제적 참여를 유도할 최선의 방법을 모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완화에 대해서는 “북한 비핵화가 완료되기 전 대북 제재 완화는 없을 것”이란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지난달 31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 “미국의 제재 관련 입장은 아직도 확고하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 3주간 이어질 북·미 실무협상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외교 소식통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우여곡절 끝에 열릴 가능성이 크지만 어느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팔로알토(캘리포니아)=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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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