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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편집…생선 캔에 ‘쓰나미 때 식량’ 스토리 입히니 불티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일본 전역에서 올라 온 맛있는 음식을 모아 파는 상점인 니꼬리나의 JR도쿄역점. 구로시오정의 생선 캔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설명하는 전시대가 설치돼 있다. [사진 니꼬리나]

일본 전역에서 올라 온 맛있는 음식을 모아 파는 상점인 니꼬리나의 JR도쿄역점. 구로시오정의 생선 캔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설명하는 전시대가 설치돼 있다. [사진 니꼬리나]

9년 다닌 아사히신문을 퇴사하고 한국에 유학 온 지 2년이 됐다. “왜 그만뒀어요?” “그만두고 뭐하게?” 2년 동안 이런 질문을 수백 번 받았다. 아사히신문이라는 회사는 월급도 많이 주고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였던 건 사실이다. 주변에서 “아깝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아사히신문에 있으면 할 수 없는 일들도 많다. 어느 조직이나 그럴 것이다. 나는 원래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꿈이었다. 그렇지만 대학원을 졸업해서 바로 프리랜서로 일하기엔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또 그럴 만한 능력도 없었다. 9년 일해서 유학할 만큼 돈도 모았고 이제 자립해도 되겠다고 스스로 생각해서 회사를 떠난 것이다. 유학해서 좋아하는 한국영화에 대해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중앙SUNDAY나 아사히신문에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지금이 만족스럽다. 아사히신문에서 일한 9년도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그만둔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런데 최근 프리랜서가 사회적 약자 입장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오사카에 혼자 사는 어머니가 사정이 생겨서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다. 일본에서는 흔히 없는 일이지만 아파트 집주인이 갑자기 바뀌면서 3개월 내에 나가라고 한 것이다. 어머니는 집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찾아서 방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부동산으로 갔다. 그런데 부동산 직원 말로는 어머니가 작성한 신청서를 제출하자 집주인이 방을 보여 주는 것조차 거부했다고 한다. 나이 많은 여성이 혼자 집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도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 잘못도 없는 어머니가 쫓겨났다가 갈 데도 마음대로 못 정한다니 황당했다. 어머니가 마음에 드는 곳에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사람한테 물어보고 고민한 결과 내가 같이 사는 거로 임대 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부동산 직원은 또 내가 현재 프리랜서라는 것 때문에 계약 명의는 도쿄에 사는 내 남편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은 현재 사법연수생으로 재판소(법원) 소속이다. 연수받는 남편은 되고 일하는 나는 안 된다니…. 소속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차갑구나. 그래서 갑자기 나처럼 아사히신문을 퇴사한 동기들이 어떻게 사나 궁금해졌다.
 
 
꿈을 위해 퇴사했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아사히신문 기자를 그만둔 뒤 니꼬리나에서 일하고 있는 하쿠타 사야카. [사진 나리카와 아야]

아사히신문 기자를 그만둔 뒤 니꼬리나에서 일하고 있는 하쿠타 사야카. [사진 나리카와 아야]

아사히신문 동기 중 기자는 40명 정도였다. 그중 지금까지 10명 가까이 퇴사했다. 퇴사 후에도 다른 매체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또한 프리랜서지만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전혀 다른 길로 간 동기가 가장 궁금해서 오랜만에 연락해 봤다.
 
그는 JR도쿄(東京)역에 있는 가게의 매니저 하쿠타 사야카(白田さやか·34). 일본 전국에서 맛난 음식들을 모아서 파는 ‘니꼬리나(ニッコリーナ)’라는 가게다. ‘니꼬리’는 일본에서 미소 짓는 얼굴이다. “보고 니꼬리, 먹고 니꼬리, 알고 니꼬리”가 가게의 콘셉트다. 1월 중순에 찾아갔더니 ‘생강과 꿀’을 캠페인하고 있었다. 나가노현(長野県)산 사과를 사용한 ‘생강&사과 잼’이나 고치현(高知県)산 생강을 사용한 ‘생강 시럽’ 등 그 지방에 가지 않으면 구입하기 힘든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니꼬리나의 상품들은 우선 일본 전국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니꼬리나는 도쿄의 소비자들에게 지방 상품의 매력을 전달하기 위해 상품 개발과 포장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지방의 생산자와 도쿄의 소비자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매니저 하쿠타다. 하쿠타는 나와 함께 2008년에 아사히신문에 입사했지만 2년 만에 퇴사했다. 그는 “고작 2년이었지만 기자의 경험이 지금 일에 도움이 되고 있다. 전혀 다른 일 같지만 소재를 어떻게 보여 주냐는 것은 편집과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하쿠타는 딸과 함께 나타났다. 육아휴가 중이라고 한다. 동기 기자 중 여성이 40% 정도였지만 아이를 낳은 기자는 거의 없다. 선배 여성 기자들을 봐도 아이를 낳으면 다른 부서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전국을 전근하며 일하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면서 기자로 계속 일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 또한 오사카본사에 있을 때 결혼했지만 1년 만에 발령을 받아 도쿄본사로 가게 되어 남편과 별거 생활을 했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아사히신문에 있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쿠타는 “아사히신문사를 그만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어서 하나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했다. 생물학을 전공했고 과학 담당 기자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당시 아사히신문에서는 입사하면 5년 동안 지방에서 근무한 다음 도쿄나 오사카의 본사로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쿠타의 첫 근무지는 돗토리현(鳥取県).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현이다. 대부분 신입 기자가 그렇듯이 하쿠타도 경찰 담당으로 시작했지만 사건 수가 적은 돗토리현에서는 농업이나 어업에 관한 취재를 하는 기회가 많았다. 생물학을 전공한 하쿠타로서는 흥미는 있었지만 후계자 부족 문제나 생산물이 많아도 가격이 내려가서 결국 살기 힘들다는 문제 등 어려운 현실을 알게 되었다. 이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없을까 생산자와 같이 고민하며 기사를 썼다.
 
 
비상식량으로 개량한 과정 패널로 전시
 
니꼬리나의 ‘생강과 꿀’ 캠페인 전시대. [사진 나리카와 아야, 니꼬리나]

니꼬리나의 ‘생강과 꿀’ 캠페인 전시대. [사진 나리카와 아야, 니꼬리나]

돗토리현에서 그 당시 하쿠타는 유일한 여성 경찰기자였다. 경찰과 기자들의 술자리가 있으면 항상 하쿠타가 경찰 본부장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다른 신문사 남성 기자들로부터 “여성 기자는 좋겠다”는 소리도 듣고 불편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신문기자 일은 하쿠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전근대적이었다”고 한다. 나 또한 상사한테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지만 회사에서 그 이야기는 하지 못한 채 그만뒀다. 입사 1년째에 그만둔 동기 여성 기자도 퇴사 이유 중 하나는 성희롱이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는 작년에 ‘미투(Me Too)’운동이 퍼지면서 조금은 개선된 면이 있는 듯하다. 일본은 아쉽게도 한국처럼 ‘미투’가 퍼지지 않았고 지금도 참고 있는 여성들이 많을 것이다.
 
하쿠타는 거의 쉬는 날 없이 일하면서 여러 이유로 계속 기자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어머니한테 이런 전화가 왔다고 한다. “도쿄역에 새로 가게를 내고 싶은데 점장이 없네. 아사히신문을 그만두고 점장 하지 않을래?” 그 가게가 ‘니꼬리나’다. 하쿠타는 “지방의 맛난 음식들을 어떻게 도쿄의 소비자들에게 전해야 할지 돗토리에서 기자를 하면서 생각했었다. 그걸 실현할 만한 회사가 마침 어머니가 경영하는 회사였다”고 말했다.
 
“어떻게 파는지는 편집에 가깝다”는 예를 들어 보자. 고치현 구로시오정(高知県黒潮町)에서 생산하는 생선 캔이 대표적이다. 캔이 탄생할 때까지의 스토리를 상품 위에 패널로 전시했더니 그 전까지 한 달에 수십 개밖에 안 팔렸던 캔이 갑자기 한 달에 천 수백 개가 팔리기 시작했다.
 
하쿠타는 캔 공장을 만드는 데부터 참여했다. 계기는 2011년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당시 엄청난 쓰나미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대규모 지진에 대비하자고 앞으로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 지진의 예상 피해 규모를 발표했다. 구로시오에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34.4m의 쓰나미가 올 것으로 예상됐다. 이 발표 후 구로시오를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새로운 산업으로 구로시오를 활성화하자는 프로젝트가 캔 공장 만들기였다. 실제로 쓰나미 피해를 입었을 때도 먹을 수 있는 것은 물에 잠겨도 괜찮은 캔이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에서 조사해 봤더니 캔이 있어도 알레르기 때문에 못 먹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2013년 구로시오에 새로 캔 공장을 만들어 계란이나 우유, 밀 등 알레르기 유발 성분을 제거한 캔을 개발했다. 재해에 대비한 ‘비상식량’이기도 했지만 일상적으로 먹어도 맛있는 캔이기도 했다.
 
하쿠타는 이런 스토리를 ‘니꼬리나’에 전시한 것이다. 구로시오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사 간 손님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쿠타의 ‘편집력’이 지방과 도쿄를 맺어주고 있다.
 
그는 어머니 회사로 들어갔기 때문에 나처럼 프리랜서의 약자 입장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대기업에 있을 땐 편했다”는 것은 몇 번 느꼈다고 한다. “아사히신문이라고 하면 누구든 만나 줬는데 우리 회사처럼 작은 회사는 좀처럼 만나 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알리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나도 요즘 "대기업 소속도 아닌데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는 충고를 자주 듣는다. 동기의 이야기를 들으며 프리랜서라고 부동산에서 무시당했다며 억울해할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잘 편집해서 보여 주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과 한국(TV REPORT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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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