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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평 - 문학] 폭력 없는 언어로 시쓰기

강경석 문학평론가

강경석 문학평론가

언어실험이란 말이 있다. 언어가 지닌 미지의 가능성을 드러내거나 무능을 폭로하려는 문학적 글쓰기를 두루 아우르는 말이지만 읽기 어려운 작품들을 가리키기 위해 남용되는 경우도 많다. 서정시와 실험시 같은 속편한 구분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가 언어실험이고 어디부터가 아닌지 경계 짓는 일은 사실 쉽지 않다. 실험시에도 서정은 있고 서정시에도 실험은 족출하기 마련이다. 이기인의 세 번째 시집 『혼자인 걸 못 견디죠』는 이런 통상적 구분이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인 듯하다.
 
“머리를 씻겨주던 빗물은 철봉을 구부린다”(‘모두의 빗소리’)거나 “머리카락은 눈을 감았다”(‘빗질’)는 문장, “넘어진 컵에서 흘러나오는 혼자”(‘그렇다면 혼자’) 같은 어딘지 이상한 구문들 때문에 이 시집은 금세 이해되지 않는다. 한두 편만 읽어봐도 시인이 일상언어의 규범에 무심하거나 고의적으로 교란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감지할 법하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 같진 않다. 수록작 ‘노인과 바다’의 일부를 옮겨보기로 한다. “요해랑사로 읽었다 / 하나의 어머니를 자주 잊었다 / 치매의 목소리를 훈련하지 않았다 / 부드러운 빵의 크림을 천사에게 주었다 / 열쇠를 잃어버리고 손녀를 잃었다 / 천사의 이름으로 그물을 만들었다 / 낯선 방의 문고리를 구부리고 바늘을 만들었다 / (중략) / 어디 사세요 눈앞의 길이 울었다 / 바다가 노인을 향해 울었다”.
 
혼자인 걸 못 견디죠

혼자인 걸 못 견디죠

대부분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문장성분 간의 호응이 어긋나 있어 언뜻 납득이 쉽지 않지만 요령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사나 꾸밈말들을 제거하고 핵심어들만 대강 나열해보면 “요해랑사”(“사랑해요”를 거꾸로 쓴 것), “어머니” “치매” “빵” “열쇠” “손녀” “낯선 방” 등이다. 단어들 사이를 각자의 연상에 따라 이어보면 이 시의 골격은 의외로 쉽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문병 간 자식이 크림빵을 건네는 장면이나 손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집이 어딘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노인의 모습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상실감이나 슬픔 같은 것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노인이라는 소재가 『노인과 바다』(헤밍웨이)라는 유명한 책을 떠올리게 하고 치매 노인이 낯설어했던 자기 방의 문고리 형상이 낚시바늘을 연상시키며 ‘그물’과 ‘배’ 같은 사물들을 잇달아 나오게 만든다. 전형적인 서정시의 골격을 도처에서 교란하는 연상의 개입을 통해 치매 노인의 시점과 그를 바라보는 자식의 시점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아니 이런 착란이 화자의 것인지 그의 “어머니”의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이런 방식의 시 쓰기가 가져오는 효과는 비교적 분명한 것 같다. 시적 화자의 해석에 의해 대상을 드러내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기에 ‘나’의 감각과 해석이 끼어들기 이전의 사물이나 대상 그 자체의 고유함과 독자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가령 ‘모두의 빗소리’의 “빗물은 철봉을 구부린다” 같은 알쏭달쏭한 문장은 하나의 완결된 메시지를 지니지 않는다. “빗물”, “철봉” 같은 사물이나 “구부린다”와 같은 행위가 주어, 목적어, 술어의 체계 안에서 지정된 역할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문법적 질서는 유지되는 듯 보이지만 의미는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지 않고 “빗물”, “철봉”, “구부린다”가 상호연상을 자극하면서 개별적인 사물이나 행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에 의해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지닌 아픔이 일방적으로 설명되지 않듯이 어떤 사물이나 행위도 오직 그 자신으로 고유하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언어실험에 대한 정의 중에 오래된 것으로 “일상언어에 가해진 조직적 폭력”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기인의 언어실험처럼 보이는 시쓰기는 정확히 그 반대편을 향해 있다. 사물과 언어에 가해지는 폭력을 그는 생각하고 있다.
 
강경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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