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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술모임은 권력 확인하는 자리…고단한 어른들, 예술과 디저트를 음미하라

김영민 서울대 교수에게 묻다, 설이란 무엇인가 
새해를 여는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가 모여 조상에게 예를 갖추고 덕담을 나누는 명절이 현대인에게 반갑지만은 않다. 지난해 추석 즈음 한 신문에 실린 칼럼이 명절에 대한 고정관념에 파문을 일으켰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쓴 ‘추석이란 무엇인가’는 명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젊은 세대들에게 친척들의 잔소리 대처법을 가볍게 전수하는 듯, 현대인에게 고통스런 의무가 된 명절 모임이 이제 시효 만료되었음을 암시하며 21세기에 변화된 가족의 의미까지 돌아보게 했다.
 
 
가족은 사적인 카르텔, 공적 기능 사라져
 
’명절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람을 못봤다“는 김영민 교수는 ’명절은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는 것이 좋다. 만화를 보고 플랭크나 스쿼트를 하며 체력을 보강하기를 권한다“고 했다. [김경빈 기자]

’명절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람을 못봤다“는 김영민 교수는 ’명절은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는 것이 좋다. 만화를 보고 플랭크나 스쿼트를 하며 체력을 보강하기를 권한다“고 했다. [김경빈 기자]

김영민 교수는 스타 칼럼니스트로 급부상했다. 젊은 세대와 여성 중심으로 그의 지난 칼럼들을 되짚어 찾아 읽는 현상이 생겼고, 여세를 몰아 출간한 에세이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본지에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칼럼도 연재를 시작했다. 사소한 일상의 에피소드로 문을 연 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진지한 생각거리를 유머와 해학으로 포장해 제시하는 그만의 스타일은 차원 높은 사유의 영역으로 누구나 쉽게 인도한다. 그는 요즘 가장 핫한 지식인이 됐다.
 
그런데 이 남자, 좀 이상하다. ‘하버드대 출신 서울대 교수’라는 성공한 인생과 권위의 대명사 같은 직함을 가지면서, 애들이나 좋아하는 미피 피규어를 SNS의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고, “술 대신 디저트를 달라”고 외치며, “배우 전도연을 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다”는 엉뚱한 소리를 진지하게 한다. 애초에 대한민국의 50대 남자가 가족과 명절의 근본에 대해 도발한 것부터 전에 없던 특이한 ‘아재’상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뜬 그에게 ‘설’이란 무엇일까. 1월 말 미국으로 가 2월 말에 온다는 그에게 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젊은 세대에게 환영받았는데, 설에는 음식 장만이 스트레스인 여성들에게 화두를 던져주시면 어떨까요.
“화두를 던지라니 주제넘은 일입니다. 중요한 건 죽은 사람은 음식을 안 먹는다는 것이고, 명절이란 산 사람들이 권력관계를 확인하는 자리란 것이죠. 술을 누가 먼저 따르고 전을 누가 부치느냐라는 오래된 권력이 원기를 회복하는 작업이랄까. 가족이 공적인 의미를 가졌던 때가 있거든요. 몇 백년 전에는 대가족이 자본을 축적해 구성원들에게 대부 기관·구호 기관 역할도 했는데, 오늘날의 가족이란 사적인 이익을 위한 카르텔에 가까운 집단이죠. 공적인 기능이 사라진 상태에서 오래된 권력관계가 희미해질 때쯤 새삼 관계를 확인하는 정치적인 모임인데, 이런 모임은 소규모일수록 좋아요. 대규모가 될수록 권력적인 요소가 강해지니까.”
 
명절에 대한 칼럼을 많이 썼는데, 본인은 명절을 어떻게 보내나요.
“최대한 평소처럼 보냅니다. 저희 가족은 차례는 지내지 않기로 하고, 명절 즈음에 만나고 싶은 사람끼리 자기 방식대로 만나고 있죠.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죠. 그런데 주변에서 명절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람은 못봤어요. 부모님, 친지는 대규모로 떼지어 다닐 게 아니라 각자 보고 싶을 때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례를 없애지 못하는 집안도 있고 각자 처지가 다르지만, 제가 일반적으로 권하는 건 만화를 보며 플랭크나 스쿼트를 하면서 보내라는 겁니다. 잘 쉬고 체력을 보강하란 말이죠.”
 
차례를 지내거나 선물을 주고받는 의식이 인간의 삶에 필요하기도 한데요.
“인간이 의미적인 동물이라서 그렇죠. 선승이나 특별한 경지에 오른 사람은 몰라도 보통 사람들은 삶을 견디기 위해 의미 부여와 리듬을 필요로 합니다. 의미 부여라는 게 고통을 참는 방식 중 하나죠. 삶이 고통스러워도 여기에 의미가 있구나 싶으면 참을 수 있지 않나요. 노동요를 부르는 것도 노동의 고통을 완화하는 면이 있구요. 상이나 선물을 주고받는 의식도 일종의 제로섬 게임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걸로 어떤 뜻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하면 그런 게 없는 벌거벗은 삶보다 훨씬 견딜 만해질 겁니다.”
 
그렇다면 혹시 ‘설’이란 의식도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고통과 슬픔을 잊기 위한 것일까. 그는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늙음과 젊음의 차이는 사소해진다”고 했다. “어떤 늙음이냐 어떤 젊음이냐가 중요하지 늙음이나 젊음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죠. 젊음이 좋아 보이는 것도 늙은 사람의 관점일 뿐, 젊은 사람 입장에선 좋은 줄 모르는 법입니다. 저는 늙는다는 게 슬프지 않아요.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니까요. 탈모가 진행되고 질병에 걸리면 탈모와 질병이 슬픈 거겠죠.”
 
젊음이 좋아 보이는 건 늙은 사람 관점일 뿐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그는 ‘추석이란 무엇인가’ 외에 ‘성장이란 무엇인가’ ‘위력이란 무엇인가’ 등의 칼럼에서도 근본적인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져왔다. 지식을 직접 가르치기보다 스스로 진리를 깨우치기를 유도하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지향하는 것일까. 그는 “일종의 직업병”이라면서 “정치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 진정으로 합당한 기초에 서 있는 것인지 재고하고 질문을 던지는 게 일이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고 있는 것들에 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했다.
 
“요즘 필요한 질문 중의 하나가 ‘한국이란 무엇인가’입니다. 한창 남북관계·통일·다민족·난민 같은 단어가 뉴스를 장식하는데, 그 모든 논의에서 빠져있는 게 그 질문이에요. 우리가 관습적으로 ‘한 민족’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이 아니거든요. 민족이란 개념은 극히 후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니 하나의 민족이란 근거 없는 주장이에요. 옛날부터 많은 이민족과의 교통이 있었고 오늘날 다민족 사회도 커져가고 있는데, 그걸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란 말로 가려왔던 것이죠. 점점 우리가 한 민족이란 걸 안 믿게 될텐데, 한 민족이 아니면서도 한국이란 나라를 구성하고 살게 만드는 핵심이 뭔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도 됐죠. 남북한 관계가 두리뭉실하게 넘어가고 있지만 민족 간 관계냐 국가간 관계냐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교육, 돈이 좌우하는 부르주아들 게임
 
최근 드라마 ‘SKY캐슬(스카이캐슬)’이 화제였는데, 왜 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야 할까요.
“이런 식의 경쟁 자체는 언제 어디서나 있어왔어요. 최근 한국사회에 특징적인 거라면 돈이 좌우하는 부르주아들만의 게임이 됐다는 것이죠. 기억할 만한 건 군부독재 시절엔 과외가 금지됐었다는 거에요. 그 시절엔 부르주아의 권력이 군사 엘리트에 확실히 복속된 상태였는데, 요즘 세상엔 돈의 권력이 우위가 됐죠. ‘SKY캐슬’에서 보이는 것도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투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치열한 경쟁인데, 이런 난리법석 자체가 그나마 한국사회가 아직 계층이동이 어느 정도 가능한 사회라는 방증이기도 해요.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이 아예 불가능하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법석피우지 않겠죠. 위로 상승하려는 게 아니라 여기서 지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가 큰 게 아닐까요.”
 
또 다른 인기 칼럼 ‘뱃살이 꾸는 꿈’에서는 한국 사회에 정치적 다양성이 상실된 현실을 개탄하고 있는데, ‘내로남불’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대개 보수냐 진보냐, 좌냐 우냐의 이분법에 익숙한데, 사실 우리에겐 삼·사·오분법이 다 필요해요. ‘SKY캐슬’의 그 난리가 한국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 같지만 극히 돈 있는 일부의 얘기죠. 사실 진짜 부자는 그런 난리 칠 필요가 없고, 가난한 사람도 그 게임에서 배제돼 있어요. 옛날식 표현으로 ‘진골 대 육두품’의 대결이 과대평가되는 것이죠. 육두품은 진골과 육두품 사이에 거대한 벽이 있다 생각하지만, 훨씬 더 아래서나 위에서 보면 진골과 육두품이 다 한통속이거든요. 그런 입장에서 육두품의 불만이란 ‘내로남불’일 수 있죠.”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지난 1월 25일 저녁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그의 글쓰기 강연에는 ‘불금’에도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300명이 넘는 독자가 몰렸다. 중요한 생각거리를 유머와 반전으로 포장해 판소리사설처럼 빙 둘러가는 그만의 글쓰기 스타일은 독자로 하여금 숨은그림찾기와 같은 발견의 재미 혹은 퍼즐맞추기 같은 지적 유희를 선사해 젊은 세대에게 특히 인기다.
 
“반전이라면 오해의 소지가 있죠. 칼럼이나 에세이 같은 글의 목표는 인식의 쇄신이거든요. 기존의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쇄신해서 달리 보게끔 하려는 것이죠. 좋은 에세이란 자기가 알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 더 큰 어떤 것의 일부임을 깨닫기까지 독자와 함께 걸어가는 일이거든요. 그런 순간이 오면 독자 입장에서는 반전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요즘 신종 글쓰기 장르가 댓글인데, ‘댓글이란 무엇인가’ 질문도 해볼 법한데요.
“상대를 비난하며 느끼는 쾌감에 중독되기 쉬운 장르인 것 같아요. 비난 대상이 잘못이라 하더라도 비난하는 자신이 우월해지는 게 아닌데, 가끔 착각할 때가 있죠. 평가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쾌감이란 게 있거든요. 그 위치에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댓글은 큰 노력 없이 평가자의 위치에서 짧은 순간의 쾌감에 도취될 수 있는 거죠. 굉장히 쉽게 평가자의 권력을 향유하는 쾌감이란 면에서 댓글중독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닙니다.”
 
익명에 숨으니 너무 폭력적이 되는데.
“무기명 댓글이란 형식은 언론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 한시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탈춤에서 탈을 쓰는 것도 얼굴을 드러냈을 때의 박해 때문인데, 억압 상황이 강하지 않다면 오히려 익명이 무책임한 글쓰기로 흐를 가능성이 있죠. 기명과 무기명 두 가지 통로를 다 만들어 놓는다면 댓글의 질을 비교할 수 있고, 어떤 공론의 장이 제대로 굴러가는지도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사실 교수 이전에 영화평론으로 등단한 작가다. 간혹 소설가 박민규나 하루키를 연상시키는 엉뚱한 상상력과 음악적 리듬감 충만한 글이 발견되는 이유다. “살면서 잘했다 싶은 일이 문학과 예술을 즐기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틈날 때마다 예술 사랑을 어필하는 그는 글쓰기 강연에서도 “글을 잘 쓰려면 현대미술관에 가라”고 했다. 현대무용을 꼭 배우고 싶다는 말도 한다.
 
“제가 좀 유연한 편입니다. 안 그래 보인다구요? 실제 제 몸을 본 사람들은 무용할 만하다고들 하던데, 겨울이라 인지 못하시는군요. 현대무용에 관심 있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굉장히 다양한 근육을 사용한다는 것이죠. 정신의 다양한 근육을 사용하고 싶듯이 몸도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써보고 싶거든요. 또 하나는 스스로 동작을 창조할 수 있잖아요. 발레나 사교댄스의 정형화된 움직임을 배우는 것과는 다르죠. 언젠간 배우고야 말겁니다.”
 
예술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요.
“예술에선 수동적으로 영향받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영감을 받아요. 예술가들은 대부분 미친 사람들이잖아요. 보통사람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니 여러 가지로 좋은 자극을 받죠. 정신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정신의 스트레칭이 된달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생각의 근육 사용하라
 
‘성장이란 무엇인가’란 칼럼에선 예술이 상처투성이 삶을 성숙하게 바라보게 한다는 예술론을 제시했는데.
“예술이야말로 어른의 유희라 생각해요. 어른이 유희를 못 찾으면 말초적 쾌락을 찾아 헤매게 되죠. 유희를 넘어 삶의 상처를 납득하고 심미적 차원을 부여하게 만드는 기능도 있어요. 리버 피닉스가 나왔던 ‘스탠바이 미’(1986)라는 영화가 그런 주제를 잘 다루고 있죠. 어린 소년들이 죽음을 목도하고 나서 자기들이 알던 세계가 전체가 아니라 큰 흐름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성숙해지는 이야기인데, 상처투성이 삶이 어떤 과정을 통해 심미적 향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거든요. 그런 영화를 보면 분명 느끼고 있는데 표현할 수 없었던 상처가 예술을 통해 잘 표현되고, 심미적인 차원까지 더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술보다 디저트’라는 취향이 ‘일반 중년 남성들과 다르다’는 함의를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술 자체는 죄가 없습니다. 당연히 가끔 마시기도 하는데, 적잖은 한국사회 술자리가 권력을 확인하는 자리거든요. 누군가 담배를 사러 나가야 되고 누군가의 술잔 채우는 데 신경 써야하고, 그 와중에 공적으로 얘기되어야 할 일들이 사적으로 처리되는 문화 자체를 즐기지 않습니다. 디저트 먹으면서는 그러지 않거든요. 디저트 먹다가 담배 사러갈 일도 없고, 누가 떠먹여 주지도 않죠.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정신의 사치가 필요하거든요. 디저트를 찬양하며 먹는다는 건 지쳐있는 삶에서 당분을 섭취하며 여유를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죠. 술값보다 훨씬 적게 드는 사치예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책 제목은 결국 ‘메멘토 모리’로 통하나요.
“첫째, 살아있으라는 얘깁니다. 살아있어야 죽음을 생각할 수 있죠. 둘째는 오전 중 일어나란 얘깁니다. 늦잠을 자면 아침에 생각할 수 없잖아요. 셋째, 생각의 근육을 사용하라는 얘깁니다. ‘Thinking’이란 건 몽상과는 다르거든요. 덧붙이자면 생각한다는 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라 체력이 필요하니 플랭크와 스쿼트를 권합니다. 제 몸매도 플랭크와 스쿼트 덕이거든요.(웃음)”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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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