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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가자미·병어·생복국, 그림 같은 한상에 눈이 번쩍

이택희의 맛따라기- 부산 ‘풍류 식객’의 셀프 주안상과 단골집
부산의 편집회사 에드뱅크(ED BANK) 조상제 대표가 만든 셀프 주안상. 자갈치시장에서 구입한 찰가자미를 직접 회를 뜬 뒤 상을 차렸다. 신인섭 기자

부산의 편집회사 에드뱅크(ED BANK) 조상제 대표가 만든 셀프 주안상. 자갈치시장에서 구입한 찰가자미를 직접 회를 뜬 뒤 상을 차렸다. 신인섭 기자

그의 주안상에 동석하기를 오래 별렀다. 부산 ‘풍류 식객’ 조상제(56)씨. 그는 편집회사(ED BANK)를 27년째 운영하는 CEO 겸 바다해설사다. 건축학과를 나왔는데 한때 10년 넘게 대학에서 문예창작∙산업디자인을 가르쳤다. SNS에 ‘세상 모든 것을 디자인하는 호모 루덴스’라고 자기소개를 한 그의 진면모는 ‘음식 디자인’에서 빛난다.
 
퇴근하며 자갈치시장에 들러 재료를 사다가 혼자, 또는 친구들과 먹기 위해 주안상을 차린다. 본인은 “호작질(‘손장난’의 사투리)”이라고 겸양했지만, 차려진 상은 절제된 아름다움이 가득한 한 폭 ‘그림’이다. 그와 부산에서 하루를 놀았다. 함께 장 봐서 주안상 차려 감상하고, 입맛 까다로운 그의 단골집 두 곳에서 부산의 맛을 즐겼다.  
부산 거제횟집에서 판매하는 물메기탕. 밑반찬도 고루 맛있다. 신인섭 기자

부산 거제횟집에서 판매하는 물메기탕. 밑반찬도 고루 맛있다. 신인섭 기자

거제횟집(복국)=도착해 바로 찾아간 곳은 활어로 탕을 끓여 내는 음식점이다. 자갈치위판장 맞은편에서 오전 8시부터 손님을 맞는다. 친척이 25년 동안 하던 복국집을 신순자(64)씨가 물려받아 23년째 운영하고 있다. 
 
물메기탕은 콩나물과 무를 많이 넣고 달인 채수(菜水)에 무∙대파∙마늘∙생고추∙미나리를 넣고 끓였다. 맛이 순하고 시원하다. 물메기 활어는 다른 재료 넣지 않아도 국물이 시원하다고 한다. 7가지 밑반찬도 고루 맛있다. 부드럽지만 오도독거리는 질감의 몰(표준어 모자반)무침이 색달랐다. 부산 사람의 일상적인 겨울 반찬이라고 한다. 몰과 가늘게 친 무채에 소금과 액젓 간을 하고, 다진 홍고추∙마늘 섞어 버무린 뒤 참깨를 뿌렸다.
에드뱅크 조상제 대표가 직접 만든 요리들. 일본 된장을 발라 숙성시킨 뒤 구운 고등어와 삼치, 아귀 간을 따로 손질해 모양을 잡은 뒤 뜨거운 증기로 쪄낸 음식, 자갈치시장에서 구입한 피조개를 손질해 놓은 피조개 회, 찰가자미를 손질해 회를 떠 놓은 찰가자미 회로 푸짐하고 아름다운 한상을 차렸다. 신인섭 기자

에드뱅크 조상제 대표가 직접 만든 요리들. 일본 된장을 발라 숙성시킨 뒤 구운 고등어와 삼치, 아귀 간을 따로 손질해 모양을 잡은 뒤 뜨거운 증기로 쪄낸 음식, 자갈치시장에서 구입한 피조개를 손질해 놓은 피조개 회, 찰가자미를 손질해 회를 떠 놓은 찰가자미 회로 푸짐하고 아름다운 한상을 차렸다. 신인섭 기자

풍류 식객의 셀프 주안상=찰가자미∙피조개 회, 병어∙고등어 미소(일본 된장)절임구이, 아귀 간 술찜, 생복국으로 한 상을 차렸다.
 
아침을 먹고 자갈치시장에 갔다. 단골 상회에서 활어 횟감을 전(前)처리해 집으로 간다. 즉살해 바닷물에 담가 방혈(放血)하고, 비늘 벗겨 배를 가른 다음 흐르는 바닷물에 씻어 거즈로 닦는다. 상인에게 얘기하면 알아서 손질해 얼음 팩 넣어서 포장해준다. 포 떠서 껍질 벗겨 달라고 해도 된다. 
 
시장을 돌다가 찰가자미를 발견했다. 시장에서 ‘물도다리’라는 이름으로 팔린다고 한다. 맛은 있으나 많이 잡히지 않아 횟집에서 팔 물량은 안 된다. 아는 사람만 먹으니 이 계절 자연산 횟감 중에선 가장 싸게 거래된다. 1㎏에 1만2000원. 검복(시장에서는 밀복) 한 마리 2만5000원, 피조개 5000원, 간을 쓰려고 산 생 아귀 한 마리는 5000원이었다. 
 
영도 바닷가 언덕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애기동백 꽃 가지 두어 개, 엽란∙털머위 잎을 한 장씩 채취했다. 거실에 들어서자 유리창 너머로 드넓은 바다엔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 눈부시고 앉은뱅이 원목 탁자 위 수반에 꽂은 한 가닥 매화 가지에는 꽃 한 송이가 막 피고 있었다. 
 
요리가 시작됐다. 찰가자미는 살을 넉 장으로 포 떠서 얇게 회로 떴다. 한 점 자를 때마다 부채꼴 모양을 만들며 가지런히 펼쳐 놓아 둥근 접시 절반을 채웠다. 부채 손잡이 부분에는 데친 찰가자미 흑백 껍질과 간, 몸통에서 길게 갈라낸 지느러미살, 미나리 줄기와 쪽파 잎, 고춧물 들인 무즙(모미지오로시) 한 덩이 곁에 애기동백 한 송이를 배치해 봄이 오는 정원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귀 간 접시엔 쪽파 잎 몇 가닥을 잘라 가지런히 올리고 노란 꽃술만 남은 애기동백 한 송이로 장식했다. 칼집을 곱게 넣은 피조개 회와 병어∙고등어 미소절임구이는 푸른 잎을 깐 접시에 담고, 연두색 영귤 편을 곁들였다. 
 
준비에 2시간이 걸렸다. 진력날 만도 하건만 그는 시종 즐거운 표정이다. 매화 가지 아래 차려진 상은 아름다워서 젓가락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상제 대표가 만든 피조개 회. 신인섭 기자

조상제 대표가 만든 피조개 회. 신인섭 기자

조상제 대표가 만든 아귀 간 술찜. 아귀 간을 따로 손질해 모양을 잡고, 뜨거운 증기로 쪄낸 뒤 썰어 놓았다. 신인섭 기자

조상제 대표가 만든 아귀 간 술찜. 아귀 간을 따로 손질해 모양을 잡고, 뜨거운 증기로 쪄낸 뒤 썰어 놓았다. 신인섭 기자

회 소스는 폰즈에 쪽파를 잘게 썰어 넣고 모미지오로시를 탔다. 피조개 회를 찍어 먹으니 새곰한 맛이 미각을 깨우고 살이 사각사각 씹히면서 싱싱한 조개 맛이 달금하게 배어 나왔다. 찰가자미 회는 쪽파 잎 한두 개를 회에 올려 돌돌 만 다음 폰즈를 듬뿍 찍어 먹으라고 했다. 얇은 회의 질감은 질깃한 듯하지만 맛은 섬세했다. 이런 회는 회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본래 맛이 묻히기 때문에 폰즈 소스가 맞는다고 한다. 
부산 수미식당의 대방어회 상차림. 신인섭 기자

부산 수미식당의 대방어회 상차림. 신인섭 기자

수미식당=저녁상은 부산 문화∙언론계 인사들이 많이 모이는 수정동 밥집 겸 주막 ‘수미’에서 마주했다. 여주인 이순자(60)씨가 날마다 조금씩 바뀌는 제철 해산물로 30년 상을 차리고 있다. 시금치무침, 톳무침, 생파래김무침, 오이무침, 하루 전에 담가 놓는다는 굴무채무침, 유채김치와 콩나물 등 7찬이 기본 차림으로 올라왔다. 접시마다 맛이 똑 떨어진다. 점심(7000원) 반찬을 저녁 술상 기본안주로 내는 모양이다.
 
콩나물 맛이 놀라웠다. 양념 않고 그냥 삶아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맛은 갖은 양념을 한 것보다 한길 위다. 조리법은 간단했다. 냄비에 식용유 몇 방울 치고 약한 불에서 씻은 콩나물을 익히면서 소금과 설탕(약간)을 넣는다. 바닥에 물이 고이기 시작하면 불을 높여 빨리 볶으면서 참기름 쳐 버무린 다음 불을 끈다. 이씨는 “적당히 익히는 게 기술이다. 물은 한 방울도 안 들어간다”고 했다. 
 
이날의 회는 대방어와 밀치(가숭어)였다. 대방어는 5시간 숙성해 뱃살∙등살은 포로 뜨고, 사잇살을 깍둑썰기해서 한 접시를 차렸다. 초밥을 직접 만들어 먹으라고 엄지만 하게 쥔 밥 한 접시를 함께 내줬다. 부산을 대표하는 막걸리와 함께 하니 이미 부른 배가 한스러울 뿐이었다.  
조상제 대표가 자갈치시장에서 구입한 찰가자미를 직접 회 뜨고 있다. 신인섭 기자

조상제 대표가 자갈치시장에서 구입한 찰가자미를 직접 회 뜨고 있다. 신인섭 기자

대학(81학번)에서 건축을 공부할 때 조씨는 고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고건축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 그때 유명 식당을 섭렵하면서 미식에 발을 들였다. 회를 좋아했다. 횟집에서 회 손질하는 걸 우연히 봤다. 저걸 어떻게 먹나 싶었다. 횟집 출입을 끊었다. 회는 먹고 싶고, 방법이 없어 생선을 사다가 직접 해 먹기에 도전했다. 
 
생선 파는 상인에게 물어보고 책 읽으면서 독학했다. 회 선진국 음식을 견학하러 일본에 70회 가까이 갔다. 그 중 41회는 쓰시마였다. 해외여행 가서 사오는 물건은 대개 그릇∙요리책∙술∙식재료∙생태도감 등이다. 그렇게 배우면서 꾸려온 셀프 주안상 살림이 20년이다. 비결을 물으니 “끊임없는 연습 말고는 길이 없다”고 했다. 요즘도 기회만 닿으면 길을 나선다. 
 
도전, 풍류 식객처럼… 생복국∙병어미소절임구이 
부산 ‘풍류 식객’ 조상제씨의 셀프 주안상에서 보통 사람도 따라 해볼 만한 요리 두 가지 조리법을 정리했다. 복어 독이 겁나지만, 시장에서 살 때 위험한 부위는 제거해주니 설명대로 잘 씻어 조리하면 안전하다. 
조상제 대표가 손수 끓인 생복국. 신인섭 기자

조상제 대표가 손수 끓인 생복국. 신인섭 기자

▷생복국: 재료는 생복어, 다시마, 어간장(또는 조선간장), 무, 대가리 딴 콩나물, 미나리, 대파, 마늘, 고춧가루(아주 조금), 소금.
①시장에서 다듬어 온 복어를 흐르는 물에 씻으며 독이 있는 부위(뇌, 눈알, 장기 찌꺼기, 지느러미, 아가미)가 없는지 살펴본다. 얼음물에 30분 정도 담가 피를 뺀다. 다시 찬물로 핏물을 서너 번 씻어낸 후 물기를 빼 둔다(※복어는 어시장 전문점에서 사는 게 안전하다. 작게 토막 쳐 짧은 시간에 끓여내야 살이 퍽퍽하지 않다). 
②찬물에 다시마와 어간장(또는 조선간장), 무를 삐져 넣고 불에 올린다.
③물이 끓기 시작하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복어를 넣는다.
④한소끔 끓인 후 콩나물, 어슷하게 썬 대파, 마늘, 고춧가루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살짝 한 번 더 끓인다.
⑤미나리를 올리고 불을 끈다. 
조상제 대표가 구운 고등어와 삼치. 직접 만드는 요리. 신인섭 기자

조상제 대표가 구운 고등어와 삼치. 직접 만드는 요리. 신인섭 기자

▷병어미소절임구이: 재료는 신선한 병어(생체 200g 정도. 대가리∙꼬리를 자르고 손바닥 크기), 미소(일본 된장) 20g, 설탕 10g, 청주 7cc, 조미술(미림) 7cc.
①병어를 다듬어 물기를 닦고 간이 잘 배게 앞뒤 표면에 칼집을 넣어 고운 소금을 뿌려 둔다(간을 한 느낌만 나게 아주 조금).
②미소와 청주∙조미술∙설탕 등 분량의 재료를 섞어 잘 갠다(병어에 바를 때 흘러내리지 않을 만큼 걸쭉하게). 설탕 대신 유자차 원액을 건더기까지 넣어도 좋다.
③소금을 뿌려 둔 병어의 물기를 닦고, 갠 미소양념장을 앞뒤로 골고루 발라 하루 재운다.
④흐르는 물에 미소를 씻어내고 거즈로 물기를 닦아낸다.
⑤그릴에 8~9분 정도, 겉이 노릇노릇할 정도로 굽는다.
※고등어와 삼치는 뼈 발라내고 겉에 칼집을 넣어 같은 방법으로 한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lee.tackhee@joins.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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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