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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워싱턴서 UAE 원전건설 정보 접한 순간 “수출 기회다” 직감

2003~2007년은 과학자와 교육자로서 보람을 만끽한 시기였다. 2004년 2월까지 호서대 총장을, 그해 12월부터 2007년 9월까지는 명지대 총장으로 각각 일했으며 한국 과학기술 한림원장도 맡았다. 무주택자를 위한 ‘사랑의 집짓기’ 사업인 한국 해비타트 운동도 계속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칼둔 알무바라크 행정청정(왼쪽)과 함께한 정근모 박사. UAE에 한국 원전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친분을 쌓았다. 칼둔은 UAE 원자력공사(ENEC) 이시회 의장으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의 최측근로 알려졌다. [사진 정근모 박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칼둔 알무바라크 행정청정(왼쪽)과 함께한 정근모 박사. UAE에 한국 원전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친분을 쌓았다. 칼둔은 UAE 원자력공사(ENEC) 이시회 의장으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의 최측근로 알려졌다. [사진 정근모 박사]

 
2008년 초 미국 워싱턴 근교의 조지메이슨대 특임교수를 맡아 떠났다. 그해 이른 봄 연구실로 존 그레이엄 미 국무부 원자력·군축담당 대사와 어니 케네디 등 한국 표준원전 설계를 도왔던 전직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 엔지니어들이 찾아왔다. 발전기술 업체인 CE는 자체 원전인 시스템 80과 시스템 80+의 원천기술을 한국에 이전해 표준원전 설계를 도왔다. CE 엔지니어들은 한국 원전사업의 성공을 자신들의 보람으로 여길 정도로 친한파가 됐다. CE는 1990년 스위스 기업을 거쳐 2000년 화석연료 부문은 프랑스 알스톰으로, 원전 부문은 웨스팅하우스로 각각 분할됐다. 일부 엔지니어는 세계 각국 정부·기업에서 에너지 관련 중책을 맡았다. 
정근모 박사(왼쪽)원전 수출 과정에서 친분을 쌓은 아랍에미리트(UAE) 층 인사로부터 매 사진 약자를 선물받고 있다. 매를 이용한 사냥은 말 경주와 함께 UAE의 국민 스포츠다. [사진 정근모 박사]

정근모 박사(왼쪽)원전 수출 과정에서 친분을 쌓은 아랍에미리트(UAE) 층 인사로부터 매 사진 약자를 선물받고 있다. 매를 이용한 사냥은 말 경주와 함께 UAE의 국민 스포츠다. [사진 정근모 박사]

 
워싱턴 연구실을 찾은 이들은 정보를 전하고 협조를 구했다. 정보는 중동 산유국 아랍에미리트(UAE)가 자원 고갈에 대비해 원전을 짓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내게 원전 경제·기술 타당성 조사의 자문위원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원전의 우수성과 풍부한 건설·운용 경험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이것이 수출 기회임을 직감했다. 이해 상충을 피하려고 자문위원을 고사하고 수출을 돕기로 했다.  
 
2008년 여름 일시 귀국한 나는 산업자원부로부터 2013년 세계에너지회의(WEC) 총회 유치 명예 위원장을 맡았으며 김쌍수 당시 한국전력 사장이 유치위원장으로 뛰었다. 그해 11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WEC 집행위원회에서 한국은 덴마크·남아프리카공화국을 누르고 유치에 성공했고 김영훈 대성에너지 회장은 WEC 회장에 당선했다. 유치가 확정되자 나는 김 사장에게 UAE 원전사업을 보고하고 북한에 핵 포기 대가로 지어주기로 했던 경수로의 건설 중단으로 돌아온 엔지니어들에게 이를 맡기면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귀국 뒤 UAE가 원전사업(바라카 원전 4기)을 발표하자 한전·한국수력원자력·한전기술에서 파견된 엔지니어들은 지하 상황실을 설치하고 입찰을 준비했으며 나는 고문을 맡았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자들이 지난 50년간 닦은 원자력 기술력을 믿고 뛰어든 도전이었다. 
 
2008년 말 나온 400쪽 분량의 타당성 보고서는 100개가 넘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국제 경쟁입찰에 응찰한 한국·미국·일본·프랑스·러시아의 9개 팀 중 한국의 한전, 프랑스의 아레바, 미국과 일본의 GE·히타치 연합팀이 예산을 통과했다. GE·히타치팀은 평가가 낮은 비등형 경수로(BWR)를 들고 나왔고, 한국표준원전과 같은 가압경수로(PWR) 공급자인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탈락했다. 모든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팀은 기술과 경험을 동시에 갖춘 한전팀뿐이었다.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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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