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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화부터 내고 보는 청와대 위기관리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지친 오후, 사무실, 회사원이 봉지에서 초콜릿을 꺼내 한입 물었다. 순간 책상에 피가 뚝뚝 떨어진다. 기겁해서 보니 초콜릿이 아니라 오랑우탄 손가락이다.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를 겨냥해 그린피스가 만든 동영상이다. 오랑우탄 서식지인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팜오일 제조업체와의 거래를 비난하는 내용이다.
 

대통령 가족 문제 궁금증은 당연
‘법 잣대로만’ 고집은 하지하책

네슬레는 화가 났다. 인도네시아 수입 팜유가 많지도 않은데…. 법원에서 가처분 신청을 받아 동영상을 삭제했다. 결과는? 불똥만 걷잡을 수 없이 튀었다. 소비자들이 문제의 동영상을 수많은 블로그와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다. 뒤늦게 팜유 수입 중단을 발표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심각한 브랜드 타격을 입은 뒤였다. 기업 위기관리 실패 사례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2010년 ‘네슬레 킷캣(초콜릿 이름) 사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딸 다혜씨의 해외 이주 의혹이 터지자 청와대가 발끈했다. 폭로한 곽상도 의원의 자료 수집 불법성을 따져 책임을 묻겠단다. 과거 정권의 ‘음습한 사찰 그림자’까지 거론했다. 김태우 전 특감반원과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 패턴이다. 그때도 폭로자를 ‘미꾸라지’ ‘좁은 시야’라고 비난하는 데 집중했다. 정작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는 “불법·탈법은 없다”는 말 외엔 별 설명이 없다.
 
곽상도의 폭로가 ‘음습한 공작’의 독과(毒果)인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만약 곽상도의 위법이 확인되면 어떻게 되나. ‘그래, 이건 독수독과(毒樹毒果)야. 불법으로 수집된 정보니까 증거 능력이 없어. 궁금증은 휴지통으로!’ 과연 이럴 수 있을까. 독수독과론은 고문·조작 같은 수사기관의 위법성을 견제하기 위한 형사재판의 원칙이다. 판사도 아닌 대중의 뇌리에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혜씨의 해외 이주가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범상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부부끼리 집을 주고받더니, 석 달 만에 팔았다. “전업주부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더니 갑자기 해외로 떠났다. 궁금하지 않다면 더 이상할 지경이다. 대통령의 가족은 ‘비자발적’이긴 하지만 ‘준(準)공인’이다. 권력자나 그 주변의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과 엮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국민의 궁금증은 당연함을 넘어서 정당한 권리다. 문제는 권력이 살아있을 때 그 관련성이 드러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궁금증이 의혹으로 자라는 시간이기도 하다. 벌써 시중에서는 이런저런 말이 돌고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언젠가 정치적 상황과 뒤섞여 독버섯으로 자랄지 모른다. 처방은 투명한 소통일 텐데, 청와대의 해법은 뜻밖이다. 전 정권을 불통의 아이콘으로 비난하면서 그 대척점에 서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청와대 아니었던가.
 
기업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몇 가지 공통 원칙이 있다. ▶초기 대응에 힘을 쏟아라 ▶솔직하게 밝혀라 ▶CEO가 직접 나서라 등이다. 대책 중 하지하(下之下)가 ‘법률적 대응’이다. 대중 정서를 무시하고, 법 논리만 따지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진 기업 사례는 마케팅 교과서에 허다하다. 위기 발생 초기, CEO들은 법무실보다 홍보실 말에 더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 이 분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네슬레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위기 후 생긴 스위스 본사의 ‘디지털촉진팀(DAT· Digital Acceleration Team)’ 사무실 사방 벽은 모니터로 도배돼 있다. 온라인에서 올라온 고객들이 부정적 반응을 빠짐없이 체크해 즉각 대응한다. 네슬레는 이번엔 기업 위기 극복의 모범사례가 됐다. 일이 터지면 화부터 내는 지금 청와대 위기관리 조직에 이런 회복력이 있을까.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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