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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1월 수상작

<장원>
날고 싶은 잠자리  
-주연 
 
요양원 창틀 안에 말라붙은 잠자리가  
마주 선 치매 할머니 발길 잡고 속삭인다  
날개를 주고 싶다고, 같이 날고 싶다고 
 
출구를 찾지 못해 버둥대며 말라갔을  
혼자서는 열 수 없는 문 앞을 서성이다  
퀭하게 빠져나간 기억 혼자 담을 넘나들고  
 
꽃 시절 무용담에 시소 타는 퍼즐 조각  
꼭 붙든 이름 석 자 어둠 헤칠 단초 될까  
허공에 길 잃은 메아리 기우뚱 날고 있다  
 
◆주연
주연

주연

1970년 충남 광천 출생. 제9회 문경새재 전국 시조 공모전 참방, 제2회 방촌 황희문화제 청백리백일장 시조 대상. 

 
 
 
 
 
  
<차상>
목젖이 붉다  
-이종현 
  
요양원 침대에서  
기억을 그러안고  
허공을 색칠하던,  
아줌마 또 왔어!  
노을을  
움켜잡은 딸  
목젖 붉게 덧칠하다  
 
<차하>
희망자원 앞에서
-박숙경  
 
흘러내리는 하품을 간신히 달래놓고  
막다른 골목까지 몇 바퀴 훑고 나면  
무시로 되돌아나간 희망 한 줌 되찾을까  
 
빠진 앞니 움푹이 새어든 파란만장  
손가락 마디마디 수없이 박힌 옹이  
늑막과 늑막 사이에 압축된 저, 빗금들  
 
굽신거려 발굴한 누군가의 과거를  
곱잖은 시선 등지고 손수레에 싣는다  
경적과 시시한 연민은 잠시 접어두고서  
 
불법과 합법 사이 아슬아슬한 편견들  
최후진술 즐비한 문밖에서 듣는다  
당신의 오래된 희망 아직도 유효한가요?  
  
<이달의 심사평>  
신춘이라는 말은 봄을 성급히 기다리는 마음이니, 시인들은 벌써 땅 밑을 흐르는 봄의 물소리를 듣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기대감을, 앞선 12월에 탕진한 탓인지 투고작의 역량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럼에도 몇몇 작품은 1월의 서정에 맞게 희망과 소진된 기억을 붙들고 시조의 묘미를 되살려 주었다. 이번 달에는 우선 상징의 힘이 돋보이는 작품에 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입상작들은 공히 쇠락한 노년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겪는 일상이지만 이를 압축된 서정 속에서 어떻게 보편적 상징으로 심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장원에 오른 주연의 ‘날고 싶은 잠자리’는 잘못 날아들어 창틀에 갇힌 잠자리를 치매 할머니의 한계 상황에 등가적으로 대입해 인간 삶의 쇠잔한 형상을 보편적 상징으로 심화시키고 있다. 각 수의 종장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된 ‘날개’ 이미지를 통해, 저 건너를 엿보는 초월적 비전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차상에 오른 이종현의 ‘목젖이 붉다’는 단시조의 묘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중장에서 “허공을 색칠하던,/ 아줌마 또 왔어!”와 같은 극적인 반전을 통해 행간에 공백(空白)을 만들어 독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더구나 “노을을/ 움켜잡은 딸/ 목젖 붉게 덧칠하다”와 같은 종장은, 이전의 상황을 ‘붉음’ 이미지로 집중시키며 슬픔을 극대화한다.
 
차하로는 박숙경의 ‘희망자원 앞에서’를 선한다. 구체적인 상황과 활달한 말맛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다만, 전반적으로 풀려 있는 것이 흠이므로 전체 내용을 두 수 정도로 압축하면 좋을 것이다.
 
1월의 투고작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회상적인 정조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새로운 도약이나 청년 혹은 노년이 가진 심혼을 드러내는 글을 기대해 본다. 끝까지 남아 논의된 글 중에는 조우리, 문혜영, 조긍, 하수미 등이 있었다.  
 
심사위원: 염창권·김삼환(대표집필: 염창권)
 
<초대시조>
각연사 오디
-서석조
 
주지스님, 죄 하나 슬쩍 짓고 들왔습니다
비로전 앞뜰의 뽕나무 말인가요?
바람에 흔들리거나 사람에 흔들리거나
 
오디는 익었으니 제 갈 데를 간 것이고
보살의 배 안에서 열반을 하였으니
그 누가 주인인가요 그냥 보고 있었지요
 
◆서석조
서석조

서석조

1953년 경북 청도 출생. 2004년 『계간시조세계』신인상 등단. 시조집『매화를 노래함』『바람의 기미를 캐다』, 기행시조집『별처럼 멀리 와서』, 현대시조100인선『각연사 오디』. 서정주문학상, 시조시학젊은시인상, 한국해양문상, 경남문학우수상 수상.
 
  
 

<이달의 심사평>
인간은 땅을 따라야 (人法地)하고, 땅은 하늘을, 하늘은 도(우주의 질서)를, 도는 자연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자연은 신이다. 시인은 무위자연을 통한 인간무위의 경계에 도달하고 있다. 절간에서 익어가는 오디를 훔쳤으니 버릇없는 보살의 행위를 보면 실정법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죄 하나 슬쩍 짓”는 것을 넘어선 절도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주지스님의 청정심은 시정의 상식이나 실정법과는 사뭇 다른 해석으로 그의 죄를 용서하는 무주무착의 판정을 내린다.

 
스님은 보살의 일탈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에 순응하고 귀의하는 선문답으로 응할 뿐이다. 즉 “바람에 흔들리거나 사람에 흔들리거나” “그 누가 주인인가요” 라고 반문하고 있다. 참으로 명판결이다. 해탈이나 구원을 얻을 만큼의 깨달음이 깃든 것도 아니다. “오디는 익었으니” “열반을” 했을 뿐 세상에 주인이 없으니 그것이 곧 무위자연이며 “그냥 보고 있었”으니 또한 인간무위가 아닐까. 우리의 삶은 언제나 존재와 부재 사이에 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화나고 다급하고 숨 가쁘게 고달픈 일상이 산문에 들어서면 구름 흘러가듯 한다. 달라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짧은 시간 속의 변화는 마음먹기에서 온 평온이며 행복이다. 고담준론은 중생을 설파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깨달음만이 완전한 자유와 무위로 깃들 수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나누는 고담방언이야말로 힐링이 되고 웰빙을 만들어낼 것이다. 각연사 잘 익은 붉은 오디가 바람에 흔들릴 때면 우리 모두가 자연이고 우주다. 최영효 시조시인
 
최영효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04513) 또는 e메일(won.minji@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02-751-5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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