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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 논설위원이 간다] 길 잃은 선거제 개혁 협상, 노무현 방식이면 해결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여야 합의대로 도입될 수 있을까
총선이 불과 1년 남짓 앞이다. 현직 국회의원 뿐 아니라 여의도 입성을 노리는 예비 후보들에겐 올해가 정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해다. 그런 만큼 선거제도 개편이란 지각 변동이야말로 정치권의 최대 이슈다. 따지고 보면 시간 문제로 보이는 야권발 정계개편도 선거제도에서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을 나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어떤 형태로든 채택되면 소수 정당과 특정 계층의 지지를 받는 세력은 생존 발판이 마련된다. 그런 내용을 포함한 선거제 개혁법을 국회서 합의 처리키로 5당 원내대표가 정한 시한이 내일이다. 하지만 논의는 미궁에 빠졌고 자유한국당은 개편안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첩첩산중 선거법 협상은 길을 잃었다.

연동형 비례제·의원정수 확대관련
개혁안 나왔지만 거대 양당 소극적

노무현 정권 때 여야 입장 뒤바뀌어
과거 자기 주장 따르면 문제 사라져

현실적으론 올해 평행선 논의하다
내년 총선도 변화 없이 치를 가능성

 
휴일이었던 지난 20일 오전 국회 223호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심상정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정개특위 논의가 지지부진한 만큼 여야 5당 원내대표로 구성된 정치협상 테이블을 즉각 가동하자고 제의했다. 시한이 임박하고 난관에 봉착한 사정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기자들을 향한 요청 자체가 궁색한 특위의 위상을 대변했다. 열흘이 지났지만 5당 원내대표들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다. 심 위원장에게 물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정개특위가 겉도는 이유는 뭔가.
“더불어민주당은 소극적이고 한국당은 부정적이다. 특히 한국당은 현재로선 선거제 개혁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당 차원의 손익계산이 아직 끝나지 않아 보인다.”
 
거대 양당이 부정적이면 연동형 비례제는 물 건너 갔다고 봐야 하지 않나.
“아직은 아니다. 물론 민주당은 도입 자체는 찬성하지만 최소주의고, 한국당은 지지율이 올라갈 때와 떨어질 때 입장이 그때그때 다르다. 거의 일기예보 수준이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 공격에 집중하는 게 사는 길이라고 보는 모양인데 그래도 변화 가능성은 있다.”
 
연동형 비례제를 하려면 지역구 의원을 줄이거나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하는데 가능할까.
“지난달 5당 원내대표가 ‘1월 국회 처리’에 합의할 때 민주당과 한국당도 의원 증원에 대한 고려 정도는 했다고 본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내년 총선 1년 전인 4월 15일까지 국회의원 지역구를 확정해야 한다. 또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선거 13개월 전인 3월15일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쯤 획정기준 정도는 나와야 한다. 하지만 제자리를 맴도는 협상 탓에 의원 정수 자체가 오리무중이다. 관건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제대로 기능하려면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수가 1:1에 가까워져야 한다. 의원 수를 동결하면서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자면 지역구 의원 수를 줄여야 하는데 개별 입법권자에겐 생사가 걸린 문제다. 목수에게 자기 관을 짜라고 시키는 꼴이어서 당연히 진도가 안 나간다. 정개특위 자문위 역시 지역구에 손대는 건 비현실적이니 정원을 360석으로 늘리자는 개혁안을 내놨다.
 
그렇다고 의원 정수를 늘리는 건 국민 여론이 부정적이다. 오히려 줄이자는 의견이 더 많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도 2012년 대선에 출마할 때 국회의원 수 감축을 주장했다. 정치적 다양성을 보장하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 기회를 살린다는 연동형 비례제의 근본 취지엔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마저도 의원 숫자를 늘리려는 정치권 속셈이란 생각이 앞선다. 그렇다 보니 민주당과 한국당은 겉으론 연동형 비례제의 도입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의원 정수 확대엔 부정적이다. 내용적으론 많은 의석을 중소 정당에 내줘야 한다는 게 껄끄럽지만 증원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명분 삼은 것이다.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되 지역구 의석을 53석 줄이고 비례의석을 100석으로 늘리자는 협상안을 내놨다.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닌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한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제는 권력구조 개편과 연관된 만큼 내각제나 국회의 총리추천제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조건을 추가했다. 양쪽 요구가 모두 비현실적이란 건 두 당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꼼수와 꼼수가 물고 물리며 서로 상대에게 책임을 뒤집 씌우는 쪽으로 우회로를 만들었다. 속이 타는 야3당은 현행 300석과 360석의 중간인 330석 정도로 출발하자는 입장이다.
 
결국 협상은 군소 정당의 의석 늘리기와 거대 양당의 의석 지키기 대결로 흘러 버렸다. 하지만 출발점은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을 ‘민심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거대 정당은 과대 대표 되고 중소 정당은 과소 대표 되는 게 현재의 승자독식 소선구제다. 실제로 20대 총선 결과 민주당은 25.5%의 정당 득표율로 41%(123석)의 의석을 가져갔고 정의당은 7.2% 정당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2%(6석)의 의석 만을 가져갔다. 그러다 보니 총 유효투표 수의 절반 이상이 사표가 된다. 13~19대 총선 당선자 득표는 평균 988만 표였지만 낙선자 사표는 1023만 표였다.
 
우리 정치의 독점 구조를 깨는 오랜 과제이자 국회의원 특권의 기반을 무너뜨릴 계기란 점이 부각돼 지난 대통령 선거 때는 모든 후보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공약했다. 중앙선관위도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손질한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선관위 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거들었다. 문제는 방법이다. 헌법보다 바꾸기 어렵다는 게 국회의원 선거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구제를 바꾸는 게 권력을 한 번 잡는 것 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표현했다. 거대 정당은 승자독식 선거제 아래서 누려온 기득권을, 야 3당은 연동형 비례제를 포기할 기미가 없다.
 
그런데 의원 정수에 손대지 않으면서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할 수 있는 묘안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심을 따르면 된다. 따지고 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정치권 지형은 지각 변동이 불가피하다. 분권과 협치, 연정이 없다면 현행 대통령제가 제대로 굴러갈 지조차 미지수다. 당장 내년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제로 다당제가 확산되면 정국운영의 난맥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소야대 속에 취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다. 2005년 그는 국회 다수연합에게 총리 추천권을 넘기는 대연정을 내놨다. 다만 지역 독식을 막는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 또는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로 선거법을 바꾸자는 조건이 붙었다.
 
당시엔 대통령이 요구하고 야당인 한나라당은 소선거구제를 고집하며 반대했다. 이젠 입장과 주장이 정반대다. 그러니 역지사지하면 된다. 국회의 총리 추천제를 문 대통령 임기 이후부터 적용하면 거부감도 줄일 수 있다. 시대적 과제인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는, 분권으로 가는 길이다. 더구나 대통령중심제에서 다당제를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게임의 룰을 정하는 선거법 협상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가 불가능하다. 다른 법은 몰라도 한국 정치에서 선거법은 지금까지 여야 합의를 통해서만 통과됐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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