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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판사 이탄희의 마음

권석천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다시 법복 입고 법정에 설 수 있을지…마음이 2017년 2월 이전으로 돌아가질 않네요.”
 

‘사법농단’ 지시 거부했던 그는
왜 두 번째 사표를 낸 것일까

이탄희(41) 판사가 대법원에 사직서 냈다는 얘기를 며칠 전 전해 들었다. 쓸쓸하게 말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헌법재판소 파견 근무 중인 그를 만난 건 지난해, 한 연말 모임에서였다.
 
이탄희. 양승태 코트(대법원)의 부정한 지시를 거부함으로써 ‘사법농단’의 베일을 벗긴 장본인. 단정한 인상에 단어 하나하나의 무게를 달아가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어떻게 용기를 냈느냐 물었다. “저는 저항했을 뿐입니다.”
 
그는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심의관 발령을 받고 대법원에 인사 갔을 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을 관리하게 될 텐데 놀라거나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 이틀 밤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그 지시 뒤에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있었다.
 
“판사로서 제 명예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나를 지켜야 공적인 가치를 지킬 수 있으니까요. 부당한 지시를 못 견디는 판사도 있다는 걸 행정처에서 알아야 한다고….”
 
이탄희가 사직서를 내자 행정처는 “당신에겐 그 일을 맡기지 않겠다”고 절충하려다 결국 안양지원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언젠가 진상이 밝혀질 것이고, 그때까진 버티자’고 결심했다. 대법원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을 때 진상이 밝혀지리라 기대했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다.” 믿기지 않는 조사 결과였다. 행정처 판사들은 왜 진실을 말하지 않는가. 이후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면서도 상황이 그릇된 방향으로 가면 전면에 서기로 했다. 결단하는 건 쉬웠다. 그 결단을 지켜내는 과정은, 끈질기게 버텨내는 과정은 고단하고 괴로웠다.
 
법원 안에서 모든 진실이 드러나고, 책임이 가려지길 바랐지만, 희망은 끝내 먼지가 돼 흩어졌다. 그날, 그는 ‘사직’이란 두 글자와 그 이유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다만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했다. 가슴 속이 마모되고 소진된 것일까.  
 
이 판사 같은 사람이 법원을 지키며 좋은 재판 해야죠. 나는 좀 더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100% 이해가 되진 않는다”고 말한 건 그를 붙잡고 싶은 욕심이었을까. 그러면서도 그를 돌려세우기 어려울 거란 예감이 들었다. 한 시대가 젊은 판사의 마음을 밟고 지나갔다.
 
법원을 1990년대부터 취재했다.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판사를 만났다. 누구는 유능했고 누구는 순응했으며 누구는 침묵했고 누구는 희생했다. 다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면서 내부의 조직논리 앞에 무력했다. 이번처럼 한 판사의 잠 못 이루는 밤들이 판사들 마음을 움직이고, 스스로 권력이 된 사법에 균열을 낸 적은 없었다.
 
그릇된 지시를 따랐던 판사도, 몇 달 괴로워하다 굴복했던 판사도, 말문을 걸어 잠그고 갈등했던 판사도 저마다의 기준이 있었을 것이다. ‘이 정도는 되지만 그것만은 안 된다’는 그 선(線)들이 직업적 양심의 등고선을 그리고 있다. 이탄희의 기준은 엄밀했다. 지금 법복을 벗으려는 것도 그의 기준일 것이다.
 
두 번째 사표. 양승태 코트를 비난하거나 김명수 코트에 메시지를 보내려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사표에는 지난 2년이 응축되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지극히 사회적인 퇴직. 그는 패배하지 않았지만 좋은 판사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프다.
 
“판사는 영혼이 무기잖아요.” 이탄희의 기준을, 그 마음을 나는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지닌 판사들이 이 순간도 법정을 지키고 있음을, 그들이 스스로의 개혁을 향해 바르게 길을 잡아나갈 것임을, 믿는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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