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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한 우물 파기보다 여러 일 경험…실패해도 즐거운 놀이판 벌이게 됐죠"

오은비씨는 2016년 디지털 노마드족(유목민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요가 여행을 겸한 '한 달 살기'를 경험했다.

오은비씨는 2016년 디지털 노마드족(유목민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요가 여행을 겸한 '한 달 살기'를 경험했다.

다능인(多能人·multipotentialite). 에밀리 와프닉의 저서 『모든 것이 되는 법』에서 소개한 '다능인'은 '다양한 분야의 재능을 결합하고 연결해 혁신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뜻합니다.10여 곳의 직장을 거치며 여러 일을 해온 오은비(36)씨는 자신을 ‘다능인’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했죠. 한 우물을 파서 ‘장인(匠人·artisan)’이 되기보다는 성격이 전혀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그는 한때 자신이 ‘경험중독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위축되기도 했다는데요. 하지만 '혁신은 교차점에서 일어나는 법'이라는 말도 있죠. 지금의 은비씨는 “미래는 다능인의 시대”라고 당당히 이야기합니다.

 
취업 가시밭길서 찾은 '다능인'의 길
광주광역시에서 여중·여고를 졸업한 은비씨는 수시전형으로 일찌감치 전남대학교에 합격했어요. 수능 시험을 치른 후에는 아르바이트 대신 어머니의 권유로 토플 공부를 시작했죠. 그에게 토플을 가르쳤던 선생님은 상업고등학교 출신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어요.
 
“광주에서 자라면서 대학을 서울로 가겠다는 생각조차 안 했는데, 그 선생님과 영어 공부를 하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미국 유학까지 결심하게 됐죠.”
 
2002년 ★브리검 영 대학교(Brigham Young University) 하와이캠퍼스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대학에서 제일 각광받는 회계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은비씨에겐 그다지 재미있는 학문이 아니었죠. 그래서 평소 관심 분야였던 가족상담이나 인간 발달과정 및 심리와 관련된 분야로 전공으로 바꿔볼까 하고 '휴먼 디밸럽먼트 앤 패밀리 스터디'(Human Development and Family Studies) 과정을 2학기 동안 공부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고민 끝에 결국 회계학과 관련 있는 계리학(Actuarial Science·보험통계학)을 전공으로, 테솔(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부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미국에서 계리학 전공자는 단계별 시험을 통과하면 ★계리사(Actuaries)로 활동할 수 있거든요. 계리사는 요즘 각광 받는 빅 데이터(Big Data)를 분석하는 직업으로, 미국에서는 의사보다 연봉이 높은 전문직으로 통합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쇼카 유(Ashoka U·사회 혁신을 위한 대학교들의 글로벌 네트워크) 행사에 참석한 오은비씨.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쇼카 유(Ashoka U·사회 혁신을 위한 대학교들의 글로벌 네트워크) 행사에 참석한 오은비씨.

은비씨의 공식적인 첫 직장은 국내 화재보험 대기업의 컨설팅업무를 담당하는 외국계 컨설팅회사였어요.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은 탓에 얼마 가지 않아 퇴사했죠. 이후 여러 대기업 취업문을 두드렸지만 실패했고 오랜 유학생활로 떨어져 있던 부모님과 함께 지내기 위해 고향인 광주에서 직장을 구했습니다.광주에서는 광산업단지 내 LED 제조회사에서 신소재(LED 신호등 및 조명) 기술영업 및 해외 수출업무를 담당했어요. 이때부터 과학기술 국제협력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한국특허정보원(KIPI)·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KIMST) 등 과학기술 분야 공공기관에서 국제협력직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죠.
 
은비씨가 다능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 것은 브라질 ★국경 없는 과학(Ciencia sem Fronteiras) 사업의 프로젝트매니저(PM)를 맡게 되면서부터였어요. 교육부 산하기관인 한국사학진흥재단(KFPP) 소속으로 2014년 3월부터 3년 반 동안 일했죠.그가 국경 없는 과학 프로젝트에서 했던 일들은 그야말로 다양한 분야의 재능을 결합하고 연결해 혁신을 만들어내는 일이었어요. 과학기술에 특화된 국내 대학과 컨소시엄(특정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협력관계)을 맺어 브라질 엘리트 대학생들을 한국의 대학에 배치하고 그들이 한국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선진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죠.
 
그 즈음 ★디자인씽킹(Design Thinking)에 흥미를 느낀 은비씨는 관련 동아리를 찾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디자인씽킹을 활용해 경력단절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워크숍을 열기도 했고, 자신의 주된 업무인 국경 없는 과학 프로젝트에 디자인씽킹 기법을 적용해보기도 했어요.
 
“자신의 나라에서 엘리트인 브라질 학생들이 한국 대학생활 적응에 실패해 우울증을 호소하거나 상담을 받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이들이 상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또 자기 진로를 어떻게 설정할지 등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해보기도 했죠.”
 
'국경 없는 과학' 참가자들을 환영하는 행사를 열었다.

'국경 없는 과학' 참가자들을 환영하는 행사를 열었다.

한 장의 사진에서 발견한 '놀이'라는 답
브라질 학생들을 보며 은비씨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지, '왜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던 거죠. 그는 당시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놀이(Play)’에서 답을 찾게 됐다고 말합니다. 영국의 팝업 파크(Pop up Park)라는 단체가 한 아파트촌 공터에서 벌인 팝업놀이터의 사진이었어요. 도전하고 실패해 볼 틈도 없이 쉬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달려온 삶에서 숨을 쉬기 위해서는 ‘놀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죠. 우리에게는 왜 일 외에 놀이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걸까, 어른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일은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성인이 됐을 때 꼭 필요한 삶의 기술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판을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한 건 바로 제 문제에서 시작한 거였어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학교든, 직장이든 어느 곳에서도 놀이를 통한 여유를 가질 기회가 드물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일과 취미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든 시대가 열렸어요. 일 외에 자기 취향을 만들 수 있는 놀이판이 필요합니다. 내 취향이 여러 개가 될 수도 있고, 또 그런 취향들이 직업이 될 수도 있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돈을 버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을 보면 알 수 있죠.”
 
주한브라질 대사관에서 '국경 없는 과학' 프로젝트 참가자들과 디자인씽킹 인턴십 워크숍을 진행했다.

주한브라질 대사관에서 '국경 없는 과학' 프로젝트 참가자들과 디자인씽킹 인턴십 워크숍을 진행했다.

오랜 조사기간을 거쳐 2015년 4월 은비씨는 사이드 프로젝트(돈을 버는 직업으로서의 일이 아닌 흥미와 관심으로 하는 부수적인 일)로 ‘팝업 플레이 서울(Popup Play Seoul)’을 시작했어요. 팝업 플레이 서울은 즐거움·자유로움·도전·융통성·자기주도성을 놀이의 철학으로 생각하며,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통해 놀이의 본질과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죠. 이후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대회인 ‘위키서울’에 선정됐고, 활동비 지원을 받아 서울 2개 지역(불광동 서울혁신파크, 성수동 디웰)에서 6개월 동안 팝업 놀이터를 운영할 수 있었어요.
 
2016년 8월 국경 없는 과학 사업이 중단되면서 은비씨는 아예 회사를 그만뒀죠. 팝업 플레이 서울이 유니세프·서울시교육청 등과 함께 하면서 ‘2016 서울어린이대공원 놀이엑스포’라는 대형 프로젝트도 맡게 됐어요. 회사를 나온 후 오히려 사회 혁신, 창업생태계, 소셜 벤처 등 다양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죠. 서울에 이어 안산시에서 열린 팝업 놀이터에서는 커뮤니티 기획자 양성과정을 진행하는 등 팝업 플레이 서울에 집중했어요.
 
“팝업 플레이 서울의 모토는 어린이들이 삶을 살아가는 기술(life skill)을 배우도록 돕는 것입니다. 각자 원하는 대로 목공도 하고, 톱질·칼질도 하고, 종이상자로 놀이도 하면서 말이죠. 어른들에게는 플레이메이커(playmaker, 놀이 커뮤니티 기획자)라는 신직업을 소개하고 그들이 각자의 동네 공터에서 활동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플레이메이커는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마을의 놀이 문화와 문제를 발견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어린이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놀이판을 기획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요. 은비씨는 초등학생들이 일주일에 2~3번이라도 충분한 놀이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플레이메이커들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살아가고 싶다는 은비씨는 현재 자신을 실험하는 중이라고 했어요. 덧붙여 먼 미래엔 영국의 ★상상력연구소(Institute of Imagination·ioi)처럼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와서 호기심을 펼치고 자기 자신을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을 설립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2017년 경기도 안산에서 열었던 유니세프 깔깔 바깥놀이 잔치.

2017년 경기도 안산에서 열었던 유니세프 깔깔 바깥놀이 잔치.

*브리검 영 대학: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가 운영하는 사립대학교로, 미국 프로보·하와이·아이다호에 캠퍼스가 있다.
 
*계리사: 미국 계리사는 현직에서 일하면서도 계속 시험을 봐야 한다. 레벨에 따라 회사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도 한다.
 
*국경 없는 과학 프로젝트: 2011년 취임한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국가장학사업. 브라질의 낙후한 과학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국에 우수한 이공계 대학생을 국비로 1년씩 유학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지우마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중단됐다.
 
*디자인 씽킹: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를 바꿔 나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디자인적 사고방식을 문제 해결 과정에 적용하는 것을 디자인 씽킹이라고 한다. 스탠포드대학교의 디스쿨(D-School)에 따르면, 디자이너의 문제 해결 방식은 공감하고,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시제품을 제작하고, 사용자 테스트를 진행하는 단계를 거친다. 
 
*상상력연구소(Institute of Imagination·ioi): 영국의 어린이박물관을 새로운 개념으로 재탄생시킨 공간. 예술과 교육, 과학과 디지털기술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워크숍을 개발하고 ‘상상력 랩(Imagination Lab)’을 운영해왔다. 상상력연구소의 경험과 학습(Experience and Learning) 디렉터이자, 학습 경험의 콘셉트 디자이너인 톰 도스트(Tom Doust)는 영국 ‘팝업 파크(Pop up Parks)’의 설립자이며, 예술과 기술을 접목한 교육프로그램 개발·관리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교육·문화·디자인 분야에서의 공공의 참여 프로그램을 위해 15년간 활동해 왔다.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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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