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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마음을 달달 떨게 한 ‘교과서 분실사건’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4)
자료사진이 없다고 하자 아내가 자기의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공책 사진이라며 보내주었다. [사진 박헌정]

자료사진이 없다고 하자 아내가 자기의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공책 사진이라며 보내주었다. [사진 박헌정]

 
남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게 지겹겠지만, 또 나로서도 ‘일기는 일기장에’란 타박 듣기 지겹지만 오늘은 옛이야기 한번 해봐야겠다. 초등학교 5학년 올라가던 1979년 초였다. 별 볼 일 없던 4학년을 뒤로 하고 희망차게 새 학기를 시작하고 싶었던지, 교과서를 싸기 위해 지하철역 근처에서 예쁜 포장지를 사 왔다. 그때는 교과서 겉을 싸는 게 유행이었다. 보통 하얀 달력 종이로 싸곤 했는데 돈 주고 포장지를 사 왔으니 아버지께서 야단을 치셨다.
 
평소 내가 뭘 해달라고 하면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갑을 자주 여시곤 했는데 의외였다. 요즘 내가 아이들의 호들갑스러운 팬시 문구를 접할 때 드는 생각처럼 너무 과하게 보이셨던 것이다. 그래도 마침 예비 이모부께서 집에 인사 오셔서 더는 혼나지는 않았고, 오히려 장차 동서 사이가 될 두 분은 어색함도 달랠 겸 마주 앉아 오손도손 협조하며 내 책을 잘 싸주셨다.
 
1학기가 시작되었다. 이웃에 살던 세 살 터울 사촌 동생과 겨우내 땟국물에 절어 놀고 다니던 내게 아주 절망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교과서가 없어졌다. 아무리 찾아봐도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중요한 ‘국산사자(국어, 산수, 사회, 자연)’를 비롯해 도덕까지 없고, 별로 펼쳐볼 일도 없는 음악, 미술, 실과책만 보였다. 아무리 찾아보고 생각해봐도 감이 오지 않았다. 겨울방학 동안 워낙 놀고 다녀서인지, 유일한 단서가 됐을 법한 '교과서 포장'도 기억 못 했다.
 
신학기 첫날부터 교과서 없이 학교에 다녀야 했던 나의 하루는 초조함으로 아침을 시작해서 안도감으로 하교해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 또다시 내일의 불안감 속에서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담임은 무척 심드렁하고 불친절하고 불공평한 40대 초중반의 곱슬머리 남자 선생님으로, 아주 무섭지는 않았지만 깔끔한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에게 냉소와 비난의 감정을 자주 표현했고, 손으로 아이들 머리를 툭툭 치는 게 버릇이었다. 발각되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가방 다 쌌느냐고 물어보시곤 했는데, 가방을 매일 쌀 필요도 없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가방에 실과, 미술, 음악책을 전부 넣고 다니니까 아침에 도시락만 받아서 넣으면 되는 거였다.
 
교과서가 없어 스트레스받던 1학기가 끝나고 2학기가 되자 비로소 세상 사는 맛이 나기 시작했다. 2학기 운동회 날 점심시간. 오른쪽 끝이 필자. [사진 박헌정]

교과서가 없어 스트레스받던 1학기가 끝나고 2학기가 되자 비로소 세상 사는 맛이 나기 시작했다. 2학기 운동회 날 점심시간. 오른쪽 끝이 필자. [사진 박헌정]

 
키가 커서 교실의 가장 뒤쪽에 앉았는데, 책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 사이에 기피 인물로 찍혔는지 옆의 짝이 몇 번 바뀌더니 언제부터인가 새까맣고 성격 좋은 축구부 녀석과 짝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는 짝 문제는 편해졌다. 원래부터 눈이 나빠 안경을 써도 칠판 글씨는 보이지 않고 책도 없으니 공부가 될 리 없었다. 뒷자리에서 보니까 그래도 평균 서너 명씩은 책을 안 가져오는 것 같았다.
 
늘 책이 없던 나 역시 자연스럽게 섞여들어 불편한 마음도 차츰 사라져갔다. 옆자리 축구부는 자기는 교과서 필요 없으니까 자기 걸 갖다 주겠다고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사흘인가 기다렸는데, 이 녀석이 해맑게 활짝 웃으며 건네준 책들은 아예 4학년 교과서였다.
 
요즘 같으면 엄마한테 말하면 엄마가 마치 자기 잘못인 양 담임에게 전화하고, 교보문고로 뛰어가고 하겠지만 그때는 그 일이 사건보다는 실수, 실수보다는 죄악에 가까운 느낌이어서 그 깊은 고민을 누구한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사방에 나를 야단칠 사람뿐,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으로 느껴졌다.
 
어느 날 기적처럼 교과서가 생겼다. 누가 줬는지 주웠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국어책 파본 한 권을 손에 넣은 것이다. 표지가 거꾸로 붙어, 표지를 본 후 첫 장을 넘기면 가장 끝 페이지가 거꾸로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행복했다. 그날부터 온종일 국어 시간만 기다려졌다. (내가 국문과에 들어간 건 운명이었다. 적어도 국어 시간만큼은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다.)
 
1948, 64, 71년에 각각 나온 초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 표지와 삽화. 어느 날 표지가 거꾸로 붙은 국어책 파본 한 권을 손에 넣었는데 이후로 국어 시간만 기다려졌다. [사진 미래엔]

1948, 64, 71년에 각각 나온 초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 표지와 삽화. 어느 날 표지가 거꾸로 붙은 국어책 파본 한 권을 손에 넣었는데 이후로 국어 시간만 기다려졌다. [사진 미래엔]

 
아예 책을 안 가져왔으면 담임이 역시나 ‘한심한 놈들….’ 하면서 외면했겠지만, 책을 거꾸로 붙잡고 있으면 그 진상을 파악하거나 최소한 바로잡아줘야 할 의무감이 생기나 보다.
 
나는 국어책을 똑바로 들고 보는데 담임 입장에서는 책이 거꾸로 서 있으니 슬그머니 다가와서 머리를 툭 치곤, 책을 휙 뺏어 들었다. 속에 만화책을 끼고 보는 줄 알았을 것이다. 책을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상태를 파악하곤 다시 내 책상 위에 툭 던지고 돌아가는데 그의 눈빛에는 책이 아니라 내가 불량품으로 보이는 듯했다.
 
드디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탐구 생활을 받는 순간 감격이 밀려와 방학 동안 이 책을 달달 외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생을 끝마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1학기 교과서가 발견되었다. 아버지께서 장롱 위에서 뭔가를 내리시다가 “어? 여기 웬 책이 있지?” 하시며 먼지 뽀얗게 앉은 책뭉치를 턱 건네주셨다. 순간, 한 학기의 회한 같은 게 밀려들 겨를도 없이, 책 없이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이 발각될까 봐 가슴이 철렁! 했다. 다행히 겉이 포장지로 싸여있어 바쁘신 아버지는 어떤 책인지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셨다.
 
결혼 후 가족들에게 드문드문 이 이야기를 했다. 나는 별 감정 없이 말했는데, 주변 반응은 웃기면서도 딱하다는 것, 특히 아내는 거의 방목상태로 성장한 나의 어린 시절을 무척이나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이 사건 말고는 너무나 행복했는데 말이다. 여기까지다. 요즘 아이들의 말 못 할 고민과 비교해서 어떤가.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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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