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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의 시선] 유시민, 정말 정치안하게 될까

강민석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유방과 항우의 패권 다툼에 관한 책이나 영화, 드라마는 널렸습니다. 이중 ‘초한지-천하대전’이란, 2012년 나온 영화의 한 장면을 인상적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진(秦)나라에 대항해 봉기한 연합군의 맹주-사실은 실권 없는 바지사장-초회왕은 “관중(關中·진나라 수도)을 맨 먼저 무찌른 자를 관중의 왕으로 봉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유방과 항우의 관중쟁탈전이 벌어집니다. 유방이 항우보다 한발 앞서 관중에 도착합니다. 벌판에서 진나라 진영을 응시하던 유방이 진격명령을 내리기에 앞서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있던 번쾌(樊噲) 등의 휘하장수들에게 큰 소리로 물어봅니다.
 
“형제들, 우리 의병의 맹세가 무엇이었나.”(유방)
 
“진나라 폭정을 멸하고 만민을 구한다!”(장수들)
 
“전쟁이 끝나면 우린 어디로 가나.”(유방)
 
“우린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다!”(장수들)
 
“고향으로 돌아가서 뭘 할 건가.”(유방)
 
“고향 술을 마신다! 고향 술을 마신다! 고향 술을마신다!”(떼창)
 
대업을 이룬 뒤 고향에 돌아가 술이나 마시겠다니. 영화라서 가능한 발상일지 모르나, 기개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래전에 봤던 이 장면이 떠오른 이유는 올 초(1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을 만나 거취 문제를 취재하면서였습니다. 우연히 동선을 알게 돼 무작정 찾아가 만났던 양 전 비서관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떠나 있겠다는 입장을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번쾌는 영화에서나 실제에서나 고향에 돌아가지 않습니다. 유방이 항우보다 먼저 관중 땅을 접수하자 한걸음 늦게 도착한 항우는 ‘홍문(鴻門)’에서 연회를 개최하고 유방을 초대합니다. 연회 도중 유방을 살해하려던 항우의 특급참모, 범증(范增)의 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방의 천재 참모 장량(張良)에 의해 무력화되는데, 이게 초한 대결의 분수령입니다. 장량의 밀명을 받아 당시 홍문의 연에서 몸으로 유방을 지킨 것이 번쾌였습니다. 그러니 유방은 놓아주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번쾌 같은 역사적 인물과 양 전 비서관을 동급으로 놓으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목표를 이루고 훌훌 떠나간 점, 칼같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있다는 점을 평가하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양 전 비서관이 자기는 뭐든 안 한다면서 두 사람의 등을 세게 떠밀었습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 정치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진행한 ‘알릴레오’ 1회는 26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사진 유튜브 방송캡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진행한 ‘알릴레오’ 1회는 26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사진 유튜브 방송캡처]

양 전 비서관이 등을 떠미니 유시민-조국, 두 사람은 몹시 신경이 쓰였나 봅니다. 다음날 두 사람은 각각 정치는 안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유 이사장은 어제(27일)도 정치 할 일 없을 것이란 점을 못 박았습니다. 두 사람의 결심이 확고한 것은 사실일 겁니다. 그러나 대중은 선뜻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양 전 비서관이 두 사람을 떠민 이유는 간단합니다. 유 이사장이 유튜브에서 시작한 방송(‘알릴레오’)은 첫날 260만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조 수석이 페이스북에 검찰개혁 문제에 관한 글을 올리자, 이 딱딱하기 그지없는 문제에 호응하는 청와대 청원자가 20만명을 넘겼습니다. 폭발적인 대중동원력입니다. 야권 지지자들은 이미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링 위로 불러낸 상태입니다. 그러니, 바야흐로 유시민 등과 여권지지자들의 ‘밀당’(밀고 당기기)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여야 공통으로 흥미로운 현상이긴 합니다만, 또 다른 생각도 듭니다.
 
『삶의 정치, 대화의 정치』(대화문화 아카데미)에 수록된 논문의 한 구절입니다.
 
‘미국 사회에 팽배한 국민의 정치 혐오현상을 분석한 지온(E.J. Dionne, Jr)은 오늘날의 정치 엘리트가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특정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정당은…본질을 따지기보다 사실을 양극화하여 이를 흑백논리로 대립시키고,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도 이를 상징적인 문제로 쟁점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공통의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관심사를 철저히 무시한다. 오늘날 탈정치화 현상은 이런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살벌한 우리 정치 현실을 말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니, 국민은 여든 야든 바깥에서 사람을 찾는 게 아닐까요? 정당이 오히려 극심한 진영갈등을 유발하고, 국민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면, 제도권 바깥에 있는 ‘정치 셀럽’을 불러내는 목소리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진영갈등이 심화하면, 바깥사람도 ‘통합형’ 보다는 ‘투사형’을 원할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유시민 등은 정치하냐, 안하냐구요? 사실 정치권을 담당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최근까지도 각종 모임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도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저도 궁금합니다. 앞일은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양 전 비서관은 “사람 팔자 뜻 대로만 되겠냐”고 하더군요.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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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