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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훈의 시시각각] 강단에 설 권리…시간강사들의 절규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몇 년 전 서울의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한 적이 있다. 대학생을 상대로 1주일에 한 번 하는 3시간짜리 미디어 과목이었다. 그해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동안의 강의 대가는 세금을 제하고 212만원, 시간당 5만원이었다. 그 대학에는 시간강사가 수두룩했다. 한 동료 강사는 시간당 5만원짜리 3과목 9시간 강의를 배정받아 방학을 빼고 8개월 동안 연간 1400만원을 버는 게 수입의 대부분이었다. 박사 시간강사의 삶은 그렇게 고단하다.
 
전업 시간강사들은 비정규직이다. 학기마다 강좌가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신분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안 주면 그만이다. 해고 절차도 없이 졸지에 실업자가 된다. 요즘은 교수평가가 나쁘면 강의를 맡지 못하게 돼 있어 수강생들의 눈치도 본다. ‘5만원짜리 인생’이지만 강단에 설 수만 있어도 감지덕지한다.
 
시간강사의 추억을 대학 지인들과의 최근 모임이 되살렸다. 50대 교수, 40대 시간강사, 30대 대학원 박사 과정 학생은 대학가에 도는 우울한 소식을 전했다. 지금 캠퍼스에는 ‘강사법’ 이라는 시한폭탄이 투하돼 공포에 떨고 있다고 했다. 시간강사들을 배려한 법이 도리어 실직 위기로 내몰고 있다는 얘기였다.
 
“언제 죽을지 모를 파리 목숨이 됐다.”(시간강사) 교육부가 주도한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국회를 통과했고, 올 8월 시행된다. 강사 임용을 최대 3년까지 보장하고, 방학 중에도 임금을 지급하는 등 강사의 열악한 신분과 처우를 개선하자는 게 골자다. 의도는 고상했다.
 
사달은 돈에서 났다. 전국 7만6000명의 시간강사에게 법의 혜택을 주려면 대략 3000억원이 필요하단다. 교육부는 10분의 1에 불과한 288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사립대(217억원)와 국립대(71억원)에 주기로 했다. 나머지 수십억 원씩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 대학들은 고민이다. 시간강사와 강의를 구조조정해 재원을 마련하려는 유혹에 빠져들었다. 강의 통폐합, 대형 강의와 온라인 강의 늘리기, 졸업 학점 축소 등이 한창이다. 1학기에는 살아남았다 해도 법 적용이 본격화되는 가을 2학기에는 누구도 운명을 모른다. 시간강사만 희생양이 되는 고약한 역설이 현실화되고 있다.
 
“박사를 따도 강의 한번 못해보고 실업자가 될까 두렵다.”(대학원생)  박사→강사→교수로 이어지는 학문 생태계의 붕괴는 더 심각한 문제다. 갓 학위를 딴 젊은 박사들은 강단에 서기조차 어려워진다. 한정된 강좌 탓에 검증된 고참 강사가 선호되고 진입장벽이 세워진다. 연구하겠다는 학생은 줄고 학문은 녹슬면서 나라와 사회도 쇠퇴하는 끔찍한 악순환이 쉽게 떠오른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혼돈에 눈을 질끈 감아버린 채 1월 안에 시행령을 입법예고 하겠단다. 분배·약자·정의라는 너무도 옳아서 소음 같은 거룩한 담론을 던져놓고 이해 당사자의 고통과 갈등에 대해선 나 몰라라 식이다.
 
문재인 정부는 통이 크다. 총사업비 70조원 규모의 SOC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곧 발표한다. 삽질·토목 공화국을 만드는데 수십조 원을 퍼붓겠다는 뜻이다. 올해 일자리 예산만 23조원이다. 정부가 강사법 시행에 소용되는 인건비 전액을 지원하는 ‘강사기금’을 조성할 수는 없을까. 학자들의 조용한 죽음을 외면하지 않겠다면, 학문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본다면, 통 큰 정부엔 ‘푼돈’인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
 
라면 한 그릇 대접에 고마워하던 동료 강사들의 눈망울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배고프고 고달픈 강사 생활이지만 강단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그들을 지탱했다. 강단은 그들의 삶과 꿈이다.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밖에 모르는 서생들에게서 강단에 설 권리를 빼앗지 말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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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