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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의 유레카, 유럽] 시장도 은행도 문 닫았다…유령도시로 변한 웨지우드 고향

영국 잉글랜드 중부 도시 버슬렘의 상거 건물이 모두 비어 있다. [버슬렘=김성탁 특파원]

영국 잉글랜드 중부 도시 버슬렘의 상거 건물이 모두 비어 있다. [버슬렘=김성탁 특파원]

영국 잉글랜드 중부 도시 버슬렘. 런던에서 차로 3시간가량 떨어진 이곳은 영국의 도자기 생산지로 잘 알려진 스토크 온 트렌트 지역을 구성하는 주변 도시 중 하나다. 본차이나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던 버슬렘은 과거 관광객으로 넘쳤다.
 
하지만 지난 18일(현지시간) 찾아간 버슬렘의 하이스트리트(상점 밀집지)는 ‘유령 거리'를 방불케 했다. 시장은 아예 입구가 폐쇄됐다. 사장으로 통하는 거리에 있는 상점들은 카페 한 곳을 빼고는 모두 문을 닫았다. 간판이 떼어진 점포 안에는 소파 등 낡은 집기가 치워지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버슬렘의 시장은 아예 폐쇄됐다. [버슬렘=김성탁 특파원]

버슬렘의 시장은 아예 폐쇄됐다. [버슬렘=김성탁 특파원]

폐업 쓰나미는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전자제품 판매점과 식당, 바 등이 있던 자리에 세를 놓는다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은행이 있던 건물에도 더이상 영업하지 않는다는 안내문만 붙어 있다. 간판이 떼어진 채 점포 내부에 문구류와 카드 등 팔던 물건을 그대로 두고 문을 닫은 가게도 보였다.

 
도자기 생산회사가 공장을 폐쇄하면서 노동자들이 떠나자 버슬렘의 점포들은 구매층 감소에 시달렸다. 여기에 온라인 쇼핑 비중이 커지자 거리의 상점들은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버슬렘은 영국에서 비어있는 상점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주변 점포가 문은 닫은 거리에서 미술품 등을 파는 아트 갤러리를 운영 중인 아만드 브롬리는 “점포들이 빈 채로 방치된 게 3년이 넘었다"며 “가게를 하던 이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제품을 홍보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며 “고객을 끌어모으려면 과거보다 상인들이 훨씬 똑똑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용실과 이발소 등 뷰티 업종이 그나마 살아 남아 영업 중이다. [버슬렘=김성탁 특파원]

미용실과 이발소 등 뷰티 업종이 그나마 살아 남아 영업 중이다. [버슬렘=김성탁 특파원]

버슬렘에서 문을 열고 있는 점포는 미용실과 이발소 등 뷰티 관련 업종이 많았다. 곳곳에 폐허처럼 방치된 가게들이 즐비했지만 이런 업소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카페 등 사람들이 모여 여가를 즐기는 매장도 명맥을 유지하는 업종으로 꼽힌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시장조사기관과 지방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영국 하이스트리트에 있는 매장 10곳 중 한 곳이 비어있다. 지난해 영국 내 소비 지출은 전년 대비 5.4%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불황이 닥쳤던 2009년 이후 최악이다. 버슬렘을 비롯해 스토크 온 트렌트 지역의 상점도 30%가량이 폐업했다.
 
도시가 쇠락하면서 버슬렘에선 사람들이 모이던 성당도 폐쇄됐다. 다른 유서 깊은 건축물도 텅 빈 채 방치돼 있었다. 유명 영국 도자기 제조사인 웨지우드 공장이 있던 자리에 1896년 세워진 웨지우드 인스티튜트 건물에는 과거 예술 학교가 있었다. 이후 전시관이나 도서관으로도 사용됐지만, 이용객이 줄고 운영비가 없어 지금은 비어 있었다. 
유명 도자기 브랜드 웨지우드사가 디자인 스쿨 등으로 사용하던 건물은 비어 있다. 지역 시민단체 등은 투자를 끌어들이려 노력 중이다. [버슬렘=김성탁 특파원]

유명 도자기 브랜드 웨지우드사가 디자인 스쿨 등으로 사용하던 건물은 비어 있다. 지역 시민단체 등은 투자를 끌어들이려 노력 중이다. [버슬렘=김성탁 특파원]

 
자영업의 위기는 한국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심각했다. 전통의 제조업체가 퇴색하면서 온라인 업종이 급속 성장하면서다. 소매업은 단순히 업태가 바뀌고 있는 게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고 영국 ITV는 진단했다.
 
상가 건물과 점포 유리창에 ‘보증금이 없고 임대료가 저렴하다'는 문구가 가득한 버슬렘에선 하이스트리트를 부활시키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지역 주민들의 모임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
상가 건물에 내걸린 임대 및 매각 표지판 [버슬렘=김성탁 특파원]

상가 건물에 내걸린 임대 및 매각 표지판 [버슬렘=김성탁 특파원]

 
지역 커뮤니티를 되살려 외부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주민들의 모임인 버슬렘재생트러스트의 조안 월리 회장은 “20년 동안 지역 사업체가 서서히 쇠락하면서 소비자가 줄어들었는데, 지난 10년 동안 온라인 거래가 늘면서 소매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과거 만남과 교류의 중심이던 하이스트리트의 기능이 없어지면서 소매업에 삼중고가 덮쳤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영국에선 파운드월드, 마플린, 막스앤스펜서, 데븐햄스, 카펫라이트 등 대형 매장들도 파산하거나 일부 매장 폐쇄를 선언했다. 지난해에만 15만 개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다.
  
주민 단체는 여전히 영업 중인 점포 주인들과 도자기 제조업체, 국회의원과 지방 의원, 지역 축구클럽 등과 손잡고 대책을 수립 중이다.
이들은 우선 빈 상점을 새로운 용도로 사용할 길을 모색하고 있다. 빈 상가 위층을 저렴한 주거 시설로 바꿔 주택난에 시달리는 젊은 층을 끌어들일 계획이다. 기본적으로 정부 예산을 받아 추진하는데, 청년들이 빈 점포를 창업 공간이나 작업장으로 사용할 경우에도 적극 지원에 나선다.

 
고풍스러운 외관의 버슬렘 시청사가 이전해 텅 비게 되자 버슬렘 지역 단체들이 나서 대학입학 과정을 준비하는 고교를 유치했다. 웨지우드 인스티튜트 건물 맞은편에 19세기 초반까지 미술과 공예를 가르치던 건물도 용도를 찾지 못했었는데, 여기에도 고등학교가 들어섰다. 월리는 “유서 깊은 건물을 새로운 용도로 바꾸면서 역사적인 도시로 사람들이 돌아오게 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시청이 있던 건물이 비게 되자 고등학교를 유치해 운영 중이다. [버슬렘=김성탁 특파원]

시청이 있던 건물이 비게 되자 고등학교를 유치해 운영 중이다. [버슬렘=김성탁 특파원]

주민들은 정기적으로 야간 축제를 열어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우리의 버슬렘'이라는 지역 시민단체를 만든 준 카트라이트는 “지역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수천 명이 방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특히 축구클럽과 연계하는 행사가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 기반을 둔 포트 베일 축구클럽의 콜린 갈릭 총무는 “주민들과 손잡고 매년 마라톤과 자전거 경기를 열고 있다"며 “올해는 4.5m짜리 등불을 만들어 야간 행사를 벌이려는 주민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축구 클럽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역 사회와 손잡고 축구부터 뜨개질, 사교 행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곳 주민들은 버슬렘을 친환경 타운으로 조성하려는 시도도 하는 중이다. 과거 대형 슈퍼마켓이 있던 자리에 정보통신(IT) 기업이 들어섰는데, 지역 주민을 고용하는 효과도 있고 플라스틱 등 쓰레기 배출도 확연히 줄었다. 월리는 “버슬렘 재생트러스트는 지역 대학과 연계하고 유럽기금의 도움을 받아 친환경적으로 사업하려는 중소기업에 조언을 제공하고 있다"며 “버슬렘을 에코 타운으로 만든 다음 이런 입지를 선호하는 친환경 기업을 유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영국 정부는 올해 6억7500만 파운드(약 9956억원)의 예산을 소매업 살리기에 배정했다. 우선 하이스트리트의 시설을 개선하고 대중교통과 주차장을 확충해 접근성을 높이게 된다. 빈 상가 건물을 개조해 주택이나 작업장으로 바꾸고, 유서 깊은 건물은 작업 공간이나 문화 공연장 등으로 바꾼다.
  
이런 작업의 목표는 상가 밀집지를 ‘커뮤너티 허브’로 만드는 것이다. 버슬렘 주민 캐슬린은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쇼핑하거나 큰 매장만 찾지만 그런 곳은 인간미가 없다"며 “전통적으로 주민들이 모여 정을 나누던 지역 상점을 우리가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버슬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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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