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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년…125세 노인이 본 그날의 외침

연극 ‘세기의 사나이’. 3·1 운동과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125세 노인 박덕배의 개인적 경험으로 가공해 보여준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식의 만화적 기법이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 ‘세기의 사나이’. 3·1 운동과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125세 노인 박덕배의 개인적 경험으로 가공해 보여준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식의 만화적 기법이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격동과 파란의 한국 근현대사가 잇따라 무대로 올라온다. 다음달 9일부터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선 세 편의 역사 연극  ‘가미카제 아리랑’ ‘세기의 사나이’ ‘배소고지 이야기:기억의 연못’이 순차적으로 개막한다. 소시민의 눈을 빌려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 연극들이다. 모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표적인 지원 프로그램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에 선정됐다. 차민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지원부장은 “공연예술창작산실을 통해 ‘이 시대의 목소리’를 담은 창작 작품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역사의식’이 창작산실의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배신자인가, 희생자인가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가미카제 아리랑’.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가미카제 아리랑’.

2월 9∼1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가미카제 아리랑’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에서 활동한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일본에 협력한 배신자로 비판하는 대신 암울한 시대에 힘없는 땅에 태어나 불행한 최후로 삶을 마감했던 청년들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인다. “역사를 미래의 길잡이로 삼으려면 과거를 다중 거울로 바라봐야 한다”는 작품의 기획 의도가 선명하다.
 
가미카제 특공대 활동으로 죽은 청년 중 조선인으로 밝혀진 인물은 20여 명 정도다. 조선에 징병제가 실시되는 1945년 4월까지 조선인에게는 병역의 의무가 없었으며 선거권 또한 없었다. 일본군 입대는 일본인과 같은 병역의 의무를 진다는 것으로 신분 차별을 극복하고 싶었던 조선 청년 중 일본군 입대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 군인의 신분으로 연합군에 자살공격을 했던 조선인 가미카제를 친일행위자로 볼 것인지, 강요에 의한 희생자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여러 논란이 있다.
 
연극은 실존 인물 탁경현이 1945년 봄 일본 가고시마현의 한 조선인 식당을 찾아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가미카제 특공대원이었던 스물네살 탁경현은 1945년 5월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미군함대로 돌진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출격 전날 식당에서 슬프게 아리랑을 불렀다는 실화가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탁경현 역은 지난해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받은 김경남이 맡았다. 연출을 맡은 정범철 극단 극발전소301 대표는  “젊은이들이 살기 힘들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가 놀랍도록 닮았다”면서 “국가·사회 등 전체를 위해서 청년들의 삶이 희생당하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100년 역사 넘나든 사나이
 
‘세기의 사나이’는 125세 노인 박덕배의 삶을 우리 근현대사와 만화적 상상력으로 결합한 작품이다. 1919년 우연히 찾은 음식점 태화관에서 얼떨결에 민족대표들과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3·1 운동의 선봉에 서는 식이다. 우연히 역사의 현장에 서게 되는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나 ‘국제시장’, 베스트셀러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과 흡사한 구성이다.  윤봉길 의사 의거, 홋카이도 비바이 탄광 매몰 사건,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청산리 전투,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 무거운 역사적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어둡지도, 심각하지도 않다. 제작사인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소개에 따르면 “무대에서 보는 경쾌한 웹툰 한 편”이다. 최원종 연출은 “안창남·엄복동·윤봉길 등 역사 속 인물들이 주인공 박덕배로부터 영향을 받아 활동의 동력을 얻는 장면들이 펼쳐진다”며 “이는 역사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 소시민들이 실제로는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임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말했다. 또 “관객들도 현재 진행 중인 역사의 현장에 자신이 서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역사적 사건·인물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없다는 것도 작품의 특징이다. 역사라고 불리는 공공의 기억을 전달하는 것까지만 충실하게 해낸다.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관객의 몫으로 넘겼다. 2월 22일부터 3월 3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끝나지 않은 전쟁의 비극
 
‘배소고지 이야기:기억의 연못’.

‘배소고지 이야기:기억의 연못’.

‘배소고지 이야기:기억의 연못’은 1951년 3월 한국전쟁 당시 전북 임실군 옥정호 인근의 배소고지에서 200여명의 양민들이 집단학살을 당했던 구술 기록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3월 1∼10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연극이 특히 주목한 지점은 전쟁으로 달라져 버린 여성들의 삶이다. 살아남기 위해 각기 다른 선택을 한 세 여성의 삶이 그 선택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그렸다. 전쟁의 비극성과 함께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으로 우리 삶을 살아낼 것인가’란 생각거리가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작품의 소재가 된 배소고지 양민 학살 사건은 오랜 세월 묻혀있었던 역사다. 당시 배소고지에 주둔해 있던 국군은 20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을 끌고 와 빨치산에게 밥을 해줬다는 이유로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생존자는 단 한 명. 바위 뒤에 몸을 숨겨 살아남은 여성이었다. 극본을 쓴 진주 작가는 “4년 전쯤 함한희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의 특강을 들으며 배소고지 사건의 생존자 구술 기록을 처음 접했다. 그분이 여전히 살아계시고 당시 사건의 가해자이자 피해자, 방관자이자 증인인 마을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면서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는 지금도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은 채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사건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기억하기를 바라며 작품을 썼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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