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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합숙훈련 폐지” 유승민 “선수 의견 들어야”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체육계 비리 근절대책 합동 브리핑을 하는 유은혜 교육부 장관, 도종환 문체부 장관, 진선미 여가부 장관(왼쪽부터). 정부는 엘리트 위주의 정책을 바꾸기로 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연합뉴스]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체육계 비리 근절대책 합동 브리핑을 하는 유은혜 교육부 장관, 도종환 문체부 장관, 진선미 여가부 장관(왼쪽부터). 정부는 엘리트 위주의 정책을 바꾸기로 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연합뉴스]

성적 지상주의를 타파하겠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개혁 의지는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의 ‘미투(나도 당했다)’ 파문으로 전 국민이 충격에 빠진 가운데 불과 17일 만에 나온 정부 대책을 보며 체육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종미 호서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27일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정책이 또 바뀔 수 있다. 엘리트 스포츠 위주의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너무 서두른 감이 있다.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지난 25일 성폭력 등 체육계 비리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도 참석했다. 도 장관은 “반복되는 체육계 비리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성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극한의 경쟁 체제로 선수들을 몰아가고 인권에 눈을 감는 잘못이 반복돼선 안 된다”며 “스포츠 가치를 국위선양에 두는 게 아니라 공정하게 경쟁하며, 최선을 다해 뛰고 달리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결과에 승복하고, 건강한 사회를 이루며 사는 데 두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성적 향상을 위해 또는 국제 대회의 메달을 이유로 가해지는 어떤 억압과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체육계의 성적 지상주의, 엘리트 체육 위주의 육성 방식에 대해서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개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 후 열흘 만에 문체부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성)폭력 피해 발생 때 가해자의 격리를 의무화하고, 체육 단체의 종사자의 성폭력 사건 은폐 때는 최고 징역형까지 처벌받도록 하는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체육계 폭력·성폭행 사태가 커지면서 거센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뉴시스]

체육계 폭력·성폭행 사태가 커지면서 거센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뉴시스]

문체부는 또 ‘스포츠혁신위원회’(가칭)을 구성해 엘리트 체육 중심의 선수육성 방식을 개선하기로 했다. 혁신위원회는 ▶합숙훈련 폐지 등 엘리트 선수 양성제도 개편 ▶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의 균형 육성을 위해 대한체육회로부터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검토 ▶ 소년체전을 폐지하고 전국체전 고등부에 통합해 ‘학생체육축제’로 전환 ▶ 국제대회 우수 선수와 지도자에게 지급하는 경기력 향상연금과 병역특례 제도 개선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러나 체육계는 “정부의 대책이 한국 스포츠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시스템에서 착실하게 운동하고 있는 선수들이 이번 대책으로 인해 정당한 지원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50년간 한국의 스포츠는 태릉선수촌으로 상징되는 합숙 시스템과 연금·병역특례 제도를 동력으로 압축 성장했다. 한국이 88 서울울림픽을 시작으로 2018 평창 겨울올림픽까지 각종 국제대회에서 세계 10위 안에 드는 스포츠 강국이 된 것은 이 시스템 덕분이었다. 선수층이 얇고 훈련 시설이 부족한 한국에서 합숙훈련은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현재 국가대표 선수들은 2017년 9월 개장한 진천선수촌에서 최첨단 시설을 이용하며 훈련하고 있다. 종목 단체나 지자체·기업이 지원하지 못하는 물적·인적 인프라를 국가가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체육계의 한 인사는 “정부 대책에 따르자면 앞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은 각자 소속팀에서 훈련하다가 대회 직전 선수촌에 모여 손발을 맞춰야 한다. 국제대회 성적은 점차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일부에서 드러난 합숙훈련의 폐해를 정부가 지나치게 확대해 시스템 전체를 성급하게 바꾸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5월 노태강 문체부 2차관은 대한빙상경기연맹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그동안 스포츠계에 성적 지상주의가 만연했다. 이제 정당한 절차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메달을 사회가 반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심석희가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문체부가 인지한 건 1년 전이다. 성적 지상주의의 그늘을 걷어내겠다고 약속한 건 8개월 전이다. 이후 긴 침묵을 이어가다 문 대통령이 이를 지적하자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경쟁하듯 여러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21일 성폭력 의혹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약속하면서 빙상연맹을 회원단체에서 제명할 가능성도 거론했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를, 대한체육회는 산하 종목단체를 개혁 대상으로 몰아붙이는 모양새다. 주종미 교수는 “문제가 이렇게 드러났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에 예산을 주는 상급 기관인데도 제대로 문책조차 못하고 있다”며 “교육부가 학교체육 시스템 변화를 통해 체육 개혁을 주도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2004 아테네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은 “체육계 미투 사태에 대해 체육행정가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개혁이 필요하지만, 합숙·연금 제도를 폐지하는 건 능사가 아니다. 올림픽을 목표로 땀 흘린 선수들의 꿈이 사라지는 것이다. 선수들의 의견도 듣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개선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식·박소영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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