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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가 체질이 변하려면 500년은 걸릴 것

지난 18일 도쿄에서 마쓰타니 요시아키 목사가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차세현 기자]

지난 18일 도쿄에서 마쓰타니 요시아키 목사가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차세현 기자]

 
지난 18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마쓰타니 요시아키(好明松谷·75) 목사는 자신을 큰 교회의 현역 목사도 아니고 지방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은퇴한 목사이자 지금도 매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한·일 관계에 관심이 많아 한 명의 민간인으로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면 단지 한 명의 민간인은 아니다.
 
마쓰타니 목사는 고향 후쿠시마(福島)에서 전도 활동을 하면서 8년간 본인이 경영한 학원에서 '인간과 사회'라는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일본 식민지 지배와 전쟁 범죄를 사실대로 소상하게 가르쳤다. 1985년엔 아예 학원을 개조해 후쿠시마 국제교류센터(FICC)를 발족했다. 총주사를 맡은 그는 이사장 쓰지 요시토(辻義人) 박사를 비롯한 많은 후원자의 재정 지원을 받아 92년까지 7년 동안 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유학생과 연수생의 일본어 교육, 단기 방문자 지원, 후쿠시마 거주 유학생 지원 등의 사업을 펼쳤다. 1992년 마쓰타니 목사가 런던의 일본인 교회를 부임하게 될 때까지 대략 160여명의 장·단기 유학생·연수생을 도왔다고 한다.
 
최근 한·일 관계를 두고 일각에선 1965년 한·일 기본협정 체결 이후 최악의 상태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내에는 회복이 힘들 정도로 악화했다는 진단도 적잖다. 그에게 ‘현재 한·일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질문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마쓰타니 목사는 뜬금없이 “일본이란 나라는 로마 가톨릭과 비슷하다”는 답변으로 말문을 열었다.
 
 
7년간 아시아 유학생·연수생 160여 명 후원
 
일본 후쿠시마 국제교류센터 홍보 팸플릿. [사진 마쓰타니 목사]

일본 후쿠시마 국제교류센터 홍보 팸플릿. [사진 마쓰타니 목사]

 
무슨 뜻인가.
“1990년대 런던에서 일본인 전도를 할 때 런던의 한 한인교회 강연에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일본과 로마 가톨릭의 체질을 볼 때 근본적인 변화가 어려워 큰 변화가 있으려면 500년은 지나야 한다는 뜻이었다.”
 
왜 변화가 힘든가.
“최근 잇따라 불거진 위안부와 강제 징용 노동자 논란, 레이더 조사(照射) 공방 등은 표면적인 문제일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의 역사 인식이 잘못돼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개별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평은 피하고 싶다. 다만, 역사 인식, 특히 한국과 재일 한국 동포에 대한 역사적 편견을 고치지 않고서는 좋은 방향의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고 본다.”
 
역사 인식 변화가 왜 그리 힘들다고 보나.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천황 중심의 국가주의와 군국주의가 불교와 결합해 신도(神道)라는 이름으로 종교적으로 강화됐다. 또 하나는 학교 교육을 비롯한 모든 교육이 천황 중심의 민족주의와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동아공영권'을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 비슷한 관념을 심어줬다.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근대 일본사를 보면 그런 관념을 심어줬던 역사가 있었다.”

마쓰타니 요시아키 목사가 1985~92년 일본 식민 지배와 전쟁 범죄 피해를 본 아시아 국가의 청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운영한 후쿠시마 국제교류센터. [사진 마쓰타니 목사]

마쓰타니 요시아키 목사가 1985~92년 일본 식민 지배와 전쟁 범죄 피해를 본 아시아 국가의 청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운영한 후쿠시마 국제교류센터. [사진 마쓰타니 목사]

 
그러면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보였던 모습과 일본을 비교했다. “독일 역사에는 기독교가 자리 잡고 있다. 나치즘에 대해 고백교회(교회에 대한 나치의 지배와 정치적 이용에 반대한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단체)처럼 소수이지만 강력하게 항거한 크리스찬들이 있었다. 전후 독일의 국가 리더들은 나치즘이 재생산되는 걸 막기 위해 자신들이 범한 잘못을 철저하게 반성했다. 또 어릴 적부터 나치의 만행을 상세하게 배울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었다. 일본은 정반대다. 왜 일본이 전쟁을 반복적으로 일으켰는지,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지를 교육하지 않았다. 거의 무지에 가깝다. 오히려 과거의 행위에 대해 우월감을 갖게 하고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분위기가 남아있다.”
 
아베 정권 들어 심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아베 정권이 특히 올바른 역사 인식을 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제대로 역사를 배우지 못한 많은 일본인이 아베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위안부나 징용 노동자 얘기가 나오면 그게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면서 ‘전쟁 때는 당연히 그런 일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생각한다. 한국도 베트남전 당시 그러지 않았느냐고 주장하면서 일본과 한국 중에 누가 더 나쁜지를 놓고 토론하려 든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또다시 트집을 잡는다고 비난한다. 역사를 정확히 알지 못해 마음으로부터 피해자의 아픔을 느끼면서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를 직접 교육하게 된 건가.
“이런 잘못된 역사 인식을 누군가는 바로잡아야 하고, 그것이 오히려 일본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목사지만 내가 경영했던 학원(코메니우스학원대학 예비학교), 후쿠시마 주변 대학교나 사회교육기관, 후쿠시마 국제교류센터(FIFC) 등에서 틈나는 대로 일본이 한국·중국·대만 등 아시아 국가를 침략한 역사를 가능한 한 자세히 가르쳤다. 일본인들의 전체 역사인식은 3보 전진에 2보 후퇴할 순 있겠지만 결국 한 걸음은 확실히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론 낙관하고 있다.”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우익들, 특히 헌법 수정주의자에 대해 일본 내 많은 지식인이 반대하고 있다. 일본 내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갈 확률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본인, 역사 제대로 몰라 토론에 몰두
 
아베 총리는 우파 지지를 바탕으로 개헌을 통한 일본의 ‘정상국가화’를 추진 중이다.
“그 부분이 조금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일본은 메이지(明治) 시대부터 국가가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다. 산업화도 국가 주도로 했다. 모든 것이 국가 우선주의고, 그 밑에는 민족주의가 깔려 있으며 그 중심에는 천황제가 있다. 우파의 사고는 천황제 사고다. 일본식 포퓰리즘의 근저에 천황제가 있다. 올해 5월 아키히토 천황의 장남인 나루히토 황세자가 일본의 새 천황으로 즉위한다. 그런데 아사히신문 같은 지식인 그룹까지 현재의 상징천황제를 무조건 지지한다. 근대 천황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파고들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서도 혐한 정서가 퍼질 정도로 비판적인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어느 쪽이 옳다고 논평하고 싶지 않다. 다만, 역사 문제 전반에 대해 말하자면 한·일 양국 정부의 입장차는 언제든지 있었다. 대부분의 일본 지식인은 일본의 대응이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아베 정권이 워낙 강하게 우파 성향을 보이고 있고 개헌 포퓰리즘 드라이브를 걸다 보니 그의 주변에 있는 보수 성향 정치인들도 한국 얘기만 나오면 아베 총리를 따라가고 있다.”
 
올해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주년을 맞았다. 선언을 평가한다면.
“예전에 중국의 덩사오핑(鄧小平) 주석은 역사문제를 두고 '타나아게(일본어 표현으로는 복잡한 문제를 양자가 동의해서 일부러 보류해 뒤로 밀어두는 것을 의미)'를 제안해 중·일관계를 발전시켰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담긴 '타나아게' 정신과 미래지향적 움직임은 정치적 차원에서는 유효하다. 하지만 지식인은 역사인식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현재 아베정권하에서 역사문제를 '타나아게'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극단적인 면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자민당 내부에서도 총리가 지나치다는 의견이 늘고 있다. 다음 정권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역사 인식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면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추진도 가능해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역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 양국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3보 전진에 3보 후퇴만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흘러가는 정권은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일본 내에서 아무리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해도 역사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비판을 일본은 감당해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만 얘기하면 일본인들은 당연히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었네’라고 생각해 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마쓰타니 목사는 그러면서 한·일 양국 정치인들이 시도하는 ‘프레임 작업’의 위험성을 경계했다.
 
“예를 들어 일본은 1910년 천황제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탄압할 구실을 찾기 위해 '대역사건'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조선총독부는 다음해인 1911년 '105인 사건'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항일 인사를 탄압하는 구실로 삼았다. 1919년 3.1 운동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정신에 따라 참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당시 일본 총독부는 '기독교는 위험하다'는 프레임을 만들었고, 기독교인의 3.1 운동 참여를 실제 이상으로 과장해 교회와 선교사를 탄압했다. 아베 정권은 자신의 정치·경제적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비슷한 방식으로 역사 문제를 프레임화하는 측면이 있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프레임을 만드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소위 친일파 문제가 제기될 때 흑백 논리로 프레임화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프레임에 희생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플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항일 활동을 했지만, 일본의 강압에 못 이겨 신사참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단순히 친일파로 낙인 찍고 배척하는 것에 대해선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앞으로의 한·일 관계를 전망한다면.
“지금은 최악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아베 정권 때문에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일본도, 한국도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사회도 성숙한 나라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일본 우익이 예전보다 강하게 활동하고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 같지만 일본 전체로 봤을 때는 여전히 일부일 뿐이다. 일본에서 주로 한국을 비판하는 혐한파는 환영받지 못 하고 있으며 자정 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일 민간 교류가 한·일 관계를 지탱해 주는 진정한 관계다. 이런 추세는 절대 후퇴할 수 없고 오히려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한·일 양국민은 민간 교류를 통해 서로를 점점 더 잘 알아가고 있다. 예전엔 서로를 잘 몰라 온갖 정치적 선동에 쉽게 휘둘리곤 했지만 이제 그런 시도는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마쓰타니 요시아키(好明松谷) 목사
● 1944년 후쿠시마(福島) 출생
● 1967년 히토쓰바시대 사회학부 졸업
● 1977~85년 코메니우스학원대학 예비학교 교장
● 1985~92년 후쿠시마 국제교류센터(FIFC) 총주사
● 1992~96년 런던 일본인 전도 모임 활동
● 1996~2002년 후쿠오카·도쿄 등에서 목회
● 2002~2013년 세이가쿠인대 종합연구소 교수
● 2013~2016년 오사카에서 목회
● 2016년 3월 은퇴
 
도쿄=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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