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심상복 연애소설> 처녀 선생이 임신한 아기가 바로 누나였다

기자
심상복 사진 심상복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제18화

"여기 오신지 얼마나 됐어요?"
"으음……. 벌써 4년은 된 것 같은데."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이런 데 오는 거 좋아하는 사람 없잖아. 그런데 내 몸이 이리됐으니 어쩔 수 없긴 했지……."
당시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이 요양원으로 오게 됐다고 했다.
 
누나 아버지의 기억력은 별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부녀 사이에 어떤 히스토리가 있었는지 물어보기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에게 알리지 않은 채 여길 방문하고, 아버지에게 그런 얘기를 듣는다는 게 적이 켕기긴 했다. 
 
사실 첫 데이트 때 누나는 취한 상태로 스스로 가족사에 대해 많은 얘기를 털어놨다. 그 중엔 남 앞에 쉽지 드러내지 못할 사연도 꽤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 대해 별 관심도 없어 했는데 왜 그런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놨는지…. 누나의 입을 통해 듣긴 했지만 아버지는 또 어떤 얘기를 하는지 알고 싶었다.
 
걔는 글 잘 쓰는 사람 좋아하는데…
"우리 보람이와는 어떤 사이야?"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아버지가 불쑥 물었다.
 
"네, 제가 누나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보람이가 여기까지 데려왔겠지. 한 번도 그런 적 없었거든…. 그런데 그 애는 글 잘 쓰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총각도 잘 쓰는겨?"
아버지니까 딸에 대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아뇨, 저는 잘 쓰지 못해서 누나에게 혼나가면서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ㅎㅎ" 
"그 애가 다 좋은데 성격은 좀 못 났어. 좀 삐딱하고 칭찬에도 인색하고……. 꼭 나같이……."
아버지는 회상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피곤하시죠? 여기 따뜻한 물 한잔 드시고 한잠 주무세요."
아버지는 물은 받아 마셨지만 괜찮다며 얘기를 이어갔다. 중간 중간에 숨을 몰아쉬긴 했지만 딸에 대한 많은 얘기를 들려줬다. 이날 들은 얘기와 첫 데이트 때 누나에게서 들은 얘기를 합치니 한편의 가족사가 완성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버지가 마흔 살에 태어났다. 첫 데이트 때 나와 너무 비슷하다며 보여준 아버지 사진이 그 해 찍은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 대학 가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공주사범대를 나온 아버지는 국어교사가 되었다. 직업도 몇 개 없던 시절, 학교 선생님은 어디서나 존경받았다. 인물도 좋아 일등 신랑감으로 꼽혔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의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 평범한 신부와 결혼했다. 할아버지 뜻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래도 애를 셋이나 낳고 키우는 일상으로 이어졌다.
 
춘천고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새로 부임해 온 여자 선생님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같은 국어 과목이라 자연스레 얘기할 기회도 많았다. 방과 후에 이른바 데이트를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것은 교사로서 처신이 어떠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도덕적 책무가 요구된다는 것을 아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양심의 가책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끌림을 제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마침내 띠동갑 국어 선생님 자취방을 드나들게 되었다. 그러다 처녀 선생님이 임신하자 두 사람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이제 2년밖에 안 된 여선생에게 사표를 내도록 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누나였다.
 
아, 불쌍한 누나…
누나가 이복 언니 둘과 오빠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일곱 살 때였다. 알긴 했지만 그게 얼마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인지는 당연히 몰랐다. 누나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마침내 사건이 터졌다. 쥐꼬리 생활비로 굶어 죽게 생겼다며 언니, 오빠를 데리고 큰엄마가 자신의 집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아버지는 어르고 달랬지만 막무가내였다. 결국 한 집에 엄마가 둘인 상황이 벌어졌다. 
 
재혼도 쉬쉬하던 아버지가 두 아내를 데리고 한 집에 산다더라는 소문이라도 나면 아버지는 학교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월급의 3분의 2를 전처에게 주겠다는 각서를 써주고 사태를 대략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한번 삐걱거리기 시작한 집안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가 돈에 목매는 여자 아닌 거, 당신 잘 아시죠? 하지만 지금 상태론 도저히 살림할 수 없어요. 어떻게 다시 그쪽과 얘기해 보세요."
그러면 아버지는 쩔쩔매며 온갖 방법으로 엄마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그쪽은 식구가 넷이고 우린 셋이니 우리가 좀 양보합시다. 게다가 거긴 한참 크는 애들이 셋이지만 우리 보람이는 아직 어리니까 우리가 양보합시다."
아버지는 그런 상황에서도 열두 살 아래인 아내에게 경어를 쓰는 걸 잊지 않았다. 그날 밤 어린 딸은 눈물로 지새우며 세상 사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님을 실감했을지 모른다.
 
누나의 어머니도 선생님답게 지적이면서도 교양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삶이 점점 팍팍해지면서 변해갔다.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며 아버지 몰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딸에게 들키자 아버지에겐 절대 비밀을 당부했다. 그러던 어머니가 어느 날 집을 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중1 때였다. 어머니는 친정으로 돌아갔다. 
 
누나의 외할아버지는 주택사업을 해서 상당히 부유했다. 잘 나가던 사업이 우연히 사기꾼에게 걸려 쫄딱 망하게 생겼다. 그때 나선 게 누나의 어머니였다. 국어 선생님 하던 40대 초반 여자가 사업자로 나선 것이다. 수년 고생 끝에 친정집을 일으켜 세운 어머니는 점점 다른 사람이 돼 가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었다. 
 
거친 풍파에 시달리면서 강한 여자로 비치기도 했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이 종교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집을 나온 뒤에도 엄마는 하나뿐인 딸을 꽤 자주 찾았지만 사업에 골몰하면서 만남은 점차 뜸해졌다. 자존심 강한 딸도 그런 외갓집에 가는 걸 꺼렸다. 자신에게 늘 존댓말을 쓰던 남편과의 연락도 일절 끊었다.
 
그러다 종교를 매개로 누나의 엄마는 누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억지로 교회에 몇 번 데려가 교리공부도 시켰다. 하지만 삶은 저 혼자 사는 것이라며 이미 홀로서기가 몸에 밴 딸은 종교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그럴수록 엄마는 딸에게 더욱 집착했다.
 
"이 교회를 떠나면 너와 나는 더는 보기 힘들 거야."
그런데도 딸은 몇 달 만에 교회를 등졌다. 엄마는 그런 딸을 배신자, 배교자라고 동네방네 욕하고 다녔다. 그런 일이 있었던 뒤 엄마는 대부분의 재산을 그 교회에 갖다 바치고 오로지 교회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때 딸은 정상적인 가정에서도 방황이 시작될 나이였다. 아버지는 갈팡질팡하는 딸에게 인생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겠다며 글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두 국어 선생님 밑에서 난 딸은 그런 소질이 다분했으나 적어도 그때는 반항뿐이었다. (계속)
 
관련기사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다른 기자들의 연재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