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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유시민의 알릴레오 vs 한국당의 아웃소싱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문제는 그의 대선 출마 여부가 아니다. 정작 궁금한 것은 구독자수 60만, 조회수 500만을 순식간에 돌파한 유시민 알릴레오 TV의 미래이다. 굴곡이 없지 않았지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중심에 줄곧 서있어 왔다. 그의 유명한 항소이유서는 빼어난 논리 덕에 민주화 운동 시절의 하나의 기념비로 남아있다. (민주주의 1.0) 민주화 이후 제도권 정치에 뛰어든 그에게 민주주의 2.0 시대는 영광과 실험, 굴곡의 시기였다. 의원직, 개혁당 창당, 장관직을 뒤로 하고 어느덧 그는 시사예능의 최고 스타로 돌아왔었다.
 
그 사이에 우리 모두는 대자보, 책 읽기를 뒤로 하고,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 하루 종일 얼굴을 처박고 사는 시대로 이동해왔다. 작은 화면 속에서 우리는 대화와 검색, 포스팅으로 온 시간을 보낸다. 특히 청년층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정보의 샘은 알릴레오 같은 동영상들이 올라오는 유튜브이다. 이제 민주주의 3.0은 동영상과 댓글, 영상 구독자가 새로운 주체로 떠오른 시대이다.
 
필자의 궁금증은 유시민의 시사 지식정보 매체인 알릴레오가 3.0으로 진화하는 한국 민주주의를 어디로 이끌어갈 것인가이다. (1)알릴레오는 디지털 소통의 특징이라는 엷은 참여, 옅은 유대감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 한계를 넘어 단단하고 결속력 있는 정치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인가? (2)알릴레오는 디지털 소통의 또 다른 함정인 침묵의 나선을 넘어 다수와 소수가 함께 어울리는 개방적인 정치 플랫폼으로 나아갈 것인가?
 
첫째 질문은 알릴레오 구독자들이 디지털 나비들의 가볍고 옅은 참여를 넘어 2002년 노사모와 같은 강력한 결속력을 갖게 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사실 디지털 소통의 엷은 참여와 옅은 유대감은 우리가 매일매일 마주치고 있는 현실이다. 예를 들어, 가족 외식을 나온 가족들이 음식이 나오기까지 각자 스마트폰 화면에 열중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장면이다.
 
장훈칼럼

장훈칼럼

그렇다면 유시민 이사장의 박식함과 예능감, 흡인력은 디지털 소통의 가벼움을 과연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알릴레오 구독자들은 머지않아 유튜브 시청을 넘어 거대 공연장에서 호흡을 나누는 오프라인 미팅을 요구할 것인가? 수만 명이 운집한 거대 공연장에서 이들은 낡아빠진 정치의 파괴와 새 출발을 외치게 될 것인가? 혹은 알릴레오 구독자들은 단지 액정화면 속의 액체대중으로 머물고 말 것인가?
 
둘째, 디지털 소통을 걱정하는 이들이 흔히 제기하는 또 다른 문제는 이른바 “침묵의 나선”이다. 옅은 참여, 멀티태스킹이 일반화된 디지털 소통 속에서 다수의 의견과는 다른 견해를 가진 소수자들은 침묵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소수의 견해를 과감하게 표명하면서 지배적 흐름에 맞서기보다는, 단지 지켜보면서 침묵을 택하는 소수자들이 늘어나는 것이 디지털 소통의 함정이라는 것이다.
 
이는 유 이사장이 알릴레오의 지향점으로 ‘가짜뉴스 퇴치’를 내걸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언론학자들은 좋은 뉴스의 요건으로 담론적 진실, 표현의 품위와 더불어 소수 의견을 보호하는 사회적 선의의 실현을 꼽아왔다. 이 점에서 침묵의 나선을 넘어 소수 의견을 감싸는 것은 알릴레오의 중대한 과제가 될 것이다.
 
종합하자면, 이런 저런 염려가 없지 않지만 알릴레오는 정당정치와 정부가 극도로 위축돼있는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실험이다. “나는 접속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넘어 이제 “나는 업로드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정치의 소통방식은 변화중이다.
 
알릴레오의 급부상은 당연히 여야 정당들 모두에게 묵직한 위협이 될 것이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처지는 더욱 곤란하다. 알릴레오가 디지털 민주주의 3.0으로 성큼성큼 진화하는 동안, 한국당은 여전히 습관적인 아웃소싱 모델에 매달려 있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한나라당, 새누리당은 박정희 신화의 현장 집행인 또는 박정희 신화의 후광을 외부로부터 영입하여 왔다.
 
요즘 한국당은 다시 한번 새로운 소방수 영입으로 분주하다. 이들은 2012년, 2016년처럼 한국당을 다시 정비할 수 있을까? 소방수들은 난파된 한국당을 새롭게 단장하고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이들은 과연 알릴레오의 파급력과 흡인력을 따라 잡을 수 있을까? 역사는 종종 이렇게 말해왔다. “미래는 사실 이미 와 있다. 다만 불균형적으로 와있을 뿐이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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