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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택시 늘어나 부끄럽다는 김정은

김정은 ‘민생경제’ 얼마나 알고 있나
북한 김정은 체제를 굴려 가는 세 축을 꼽으라면 장마당과 휴대폰, 택시로 압축할 수 있다. ‘노동당보다 믿음직하다’는 시장과 570만 대 이상 보급된 ‘손전화’에다 최근 택시가 가세했다. 그만큼 민생을 파고들어 실질적 기능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관영 선전매체가 내세우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나 ‘국가 공급’(노동당의 배급 체계) 같은 건 주민 뇌리에서 잊힌 지 오래다. 김정은 집권 이후 급성장한 장마당과 휴대폰 확산 추세를 무서운 기세로 따라잡고 있는 평양 택시를 통해 민생경제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거리에 택시들이 점점 늘어나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는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런 발언을 전하며, 그가 새 모델의 트롤리버스를 시승한 뒤 “이제는 전망이 보인다”고 언급한 것으로 소개했다. 트롤리버스는 도로 위에 가설된 전기선으로부터 동력을 공급받아 운행되는 무궤도 전차 형태의 교통수단으로 평양 주민들의 발 역할을 하고 있다. 중앙TV의 이런 보도는 노후화된 궤도전차와 버스·지하철에 의존해 출퇴근과 이동을 해야 하는 불편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선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이뤄진 김정은의 시승행사 장면을 이른바 ‘현지지도 기록영화’로 만들어 민생을 챙기는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당국이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평양에는 2500대 정도의 택시가 운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김정은 시대 8대 변화’ 보고서에서 평양 택시 숫자를 6000대 수준으로 밝힌 바 있다. 북측 안내원 등을 통해 득문한 정보라 차이가 나지만, 2016년 5개 회사가 1500대 정도의 택시로 영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던 것에 비해 크게 늘어난 건 분명해 보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택시의 급격한 증가는 평양을 방문한 서방 관광객이나 북한 내부 소식을 현지 영상으로 전하는 중국의 유튜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순안공항이나 평양역·고려호텔 등에 줄지어 선 채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영상 자료엔 공연 드레스를 입은 여자아이를 데리고 바이올린을 챙겨 들고 택시를 타려 뛰어가는 여성의 모습이 드러난다.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택시를 이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수행원 자격으로 방문했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평양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해봤는데 요금을 2달러 정도 냈다”고 전했다.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대표는 “북한 택시요금은 기본거리 4㎞에 2달러이며, ㎞당 0.5달러가 추가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10㎞를 타게 되면 5달러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다.
 
택시는 김일성·김정일 집권 시기 교통수단으로 매우 제한적인 역할을 했다. 외국인 방문객이나 관광차 방북한 인사들의 경우, 사실상 감시원 역할을 하는 안내원이 타고 있는 북측 제공 차량(승용차나 버스)을 이용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평양에 상주하는 외국인이나 국제기구 요원, 조총련 간부 등이 전화로 택시를 불러 탑승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한 탈북인사는 “초기엔 택시에도 기사와 탑승객을 감시하는 안내원 한 명이 조수석에 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북한 주민이 택시를 이용하는 건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평양과 지방 도시에 택시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 건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고, 김정은이 통치의 바통을 이어받으면서다. 각 기관들이 택시영업에 나섰고, 평양을 중심으로 중산층 이상의 이동수요가 늘어나면서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장마당 유통 등으로 큰돈을 거머쥔 신흥자본가인 ‘돈주’들도 개인택시 영업에 뛰어들었다. 해외에서 온 방문객들이 택시를 비교적 쉽게 탈 수 있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평양 지역의 택시는 국영 운수회사 격인 대동강여객운수사업소에 등록을 해야 운행할 수 있다. 주로 장거리를 운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려항공 택시는 기본요금 없이 ㎞당 0.49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택시영업이 짭짤한 수입을 챙길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이권을 둘러싼 갈등도 엿보인다. 미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달 보도에서 “보안성(우리의 경찰) 산하 택시의 경우 평양 시민들 속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의 측근 인사가 실소유주라는 말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설주 택시’로 불리는 이 회사는 중국산 새 차량을 대거 들여와 손님을 싹쓸이하는 바람에 다른 택시 업체와 기사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 정전이 돼 궤도전차가 멎으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특정 회사 택시가 몰려온다는 뒷소문까지 주민 사이에 돌고 있다고 한다.
 
택시의 증가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먹고살 만한 중상류층 그룹에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급 아파트와 주말 외식, 스마트폰 등으로 삶의 질을 챙겨온 이들이 이동수단으로서의 택시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평양의 새 쇼핑시설인 광복거리상업중심 앞에는 구입한 생수나 쌀·가전제품 등을 택시 트렁크에 싣는 주민들의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장마당을 통한 돈벌이나 뇌물 등으로 지갑 사정이 넉넉해진 일부 계층에겐 택시비가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북한 당국이 자가용의 개인 소유나 운행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도 택시 증가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김정은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정책을 펼쳐나갈지도 관심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택시가 민생 속으로 점차 파고들고 있는 상황에서 ‘평양에 택시가 늘어 부끄럽다’는 식의 김정은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버스·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수단의 현대화도 중요하지만 택시 쪽으로 선택 폭을 넓히고, 자가용을 허용하는 등의 개혁·개방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인 2012년 봄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며 민생 챙기기를 공언했지만 7년 가깝도록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동당과 내각에서 입맛 맞춰 올리는 보고서가 아닌 경제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본과 동선까지 치밀하게 준비하는 보여주기식 ‘현지지도’에 머물러서는 실상을 알기 어렵다. 거기에 의존하다간 평양 택시 발언뿐만 아니라 “평양~순안공항(20㎞ 거리) 사이에 고속철을 놓으라”는 식의 황당한 지시를 내릴 수밖에 없다. 택시를 잡아타고, 장마당에 나가 민초들의 팍팍한 삶을 체감해보면 남북관계와 대미접근의 청사진도 더 또렷하게 드러날 수 있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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