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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의 중국전 88분, 벤투의 '무리수'였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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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토트넘)이 지쳤다.

한국 대표팀은 22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라시드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9 UAE아시안컵 16강 바레인과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1 승리를 거뒀다.

한국이 약체 바레인을 상대로 이토록 고전할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3위인 바레인은 한국(53위)보다 한참 아래. 아시아에서 위용, 아시안컵의 업적 그리고 역대 전적 등 과거에는 한국이 압도했다. 그러나 현재는 '이변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위기에서 겨우 빠져나온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한다.

바레인전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상대의 압박이 없는 상황에서 기본 패스도 실수하는 황당한 장면이 또 연출됐다. 패스 미스가 너무 잦았고, 백패스 역시 빈도가 너무 높았다. 패스가 안 되니 조직력이 좋을 리 없었다. 점유율 높이는 데만 집착할 뿐 정작 골은 넣지 못했다. 한국은 59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노린다고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지금의 모습으로는 절대 우승할 수 없다.

많은 문제 중 결정적인 것은 '에이스' 손흥민의 부진이다.

그는 바레인전에서 손흥민다운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드리블도, 돌파도, 슈팅도 손흥민의 위력을 담아내지 못했다. 아시아 '넘버원'이자 세계 톱클래스로 인정받는 손흥민이다. 이런 선수를 보유했기에 한국은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다.

반대로 말하면, 손흥민이 해결해 줘야 한국이 우승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손흥민이 그러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우승 후보의 자리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바레인전 선발 출장한 손흥민은 좀처럼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연합뉴스 제공

바레인전 선발 출장한 손흥민은 좀처럼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연합뉴스 제공



손흥민이 가진 능력과 경쟁력은 세계가 인정한다. 이견이 없는 세계 정상급 선수다. 아시아에는 따라올 자가 없다. 그런데 바레인전에는 왜 그 능력을 드러내지 못했을까?

'피로'에 발목이 잡혔다. '천하의 손흥민'이라고 해도 체력적으로 부담이 있다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손흥민의 피로 누적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그는 지난 1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끝낸 뒤 바로 UAE로 날아와 대표팀에 합류했다. 지난해 12월부터 12경기를 소화한 뒤다. 3~4일에 한 번꼴로 경기를 치른, '살인 일정'을 소화하고 왔다.

또 7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4시간 시차와도 싸워야 했다. 추운 영국에서 와서 더운 UAE 날씨에 적응할 시간 등 UAE의 환경에 녹아들 시간 역시 필요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손흥민이 대표팀에 합류한 지 이틀 이후에 열린 아시안컵 C조 3차전 중국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손흥민은 선발 출전했다. 파격적 선발, 아니 충격적 선발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손흥민이 무려 '88분'을 뛰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풀타임을 뛴 것이다. 후반 5분 김민재(전북 현대)의 추가골이 터지면서 한국은 2-0 리드를 잡았다. 사실상 승리가 확실시된 순간. 그런데 벤투 감독은 손흥민을 빼지 않았다. 이후 38분을 더 뛰게 했다.

당시 벤투 감독의 이 선택은 승부수로 통했다. 손흥민이 2골 모두 관여하는 등 활약을 펼쳤고, 손흥민의 기세에 중국이 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당시에도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라고 몸이 말하고 있었다. 간혹 실수를 저지르고 몸싸움에 밀리는 등 손흥민이 지쳐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드러났다.

바레인전의 손흥민을 보면, 중국전 88분은 벤투 감독의 '무리수'였다. 

중국전의 잘못된 선택이 지금의 현상을 만들었다는 분석을 부정할 수 없다. 당시 수많은 축구전문가들이 손흥민에게 휴식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에 출전시킨다면 후반 교체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신태용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염려되는 것이 있다. 지금 잘하고 있는 흐름이 환경적 문제로 영향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추운 나라에서 따뜻한 나라로 오면 컨디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많은 경기를 뛴 뒤 대표팀에 온다. 체력 소모가 심할 것이다. 이런 부분을 대표팀에서 잘 관리해야 한다"며 "몸이 좋을 때는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 피곤한 상황에서는 부상이 자주 발생한다. 3차전은 안 뛰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국가대표 출신 이천수 역시 "한국이 우승을 바라본다면 손흥민을 아껴야 한다. 당장 조 1위를 위해 중국전에서 손흥민을 투입시키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 리그 소화 이후 휴식 없이 대표팀에 합류한 상태에서 부상 위험이 있다"며 "손흥민을 빨리 투입시키면 오히려 나중에 꼭 필요한 4강이나 결승에서 투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 벤투 감독도 그런 상황은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KFA 제공

KFA 제공



벤투 감독은 이런 의견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오직 자신의 고집으로 밀어붙였다. 체력 안배 따위는 없었다. 부상이 아닌 이상 무조건 뛰게 하는 것이다. 아시안컵 선발 라인이 부상자가 등장하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다.

중국전을 앞둔 손흥민은 정상적인 팀 훈련 한번 참가하지 못했다. 이런 선수를 오직 중국전 승리만을 위해 '올인'시킨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다. 분명 '혹사'다. 손흥민이 더 뛰고 싶다고 요구했어도 감독이라면 선수 배려를 먼저 생각했어야 한다. 만류했어야 한다. 벤투 감독은 눈앞의 승리에만 집착했을 뿐,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세계적 명장'인 마르첼로 리피 중국 대표팀 감독이 한국전에 '에이스' 우레이(상하이 상강)를 제외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리피 감독은 토너먼트를 대비한 것이다.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대표팀 감독 역시 F조 3차전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베스트11 중 무려 10명을 바꿔 선발로 내세웠다.

16강 진출을 조기 확정했음에도 조별예선 3차전에 '올인'한 팀은 한국을 제외하고 찾기 힘들다.

그 여파가 '진정한 승부처' 토너먼트로 진입하지마자 드러나고 있다. 대표팀을 활기차게 이끌어야 할 핵심 동력 손흥민이 이미 지쳐 있다. '아시아 넘버원' 손흥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한국의 최대 강점을 앗아 간 것이나 다름없다.

벤투 감독도 이를 인정했다. 그는 바레인전이 끝난 뒤 "경기력이 지난 경기보다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선수들의 몸이 무겁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모두 같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다. 각자 이유들이 있다"며 "손흥민은 대표팀 합류 전 많은 경기를 뛰었다. 피로가 누적됐다.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이 내놓은 해결책은 충분한 휴식이다. 그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회복을 잘 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카타르와 8강은 25일 열린다. 이틀 뒤다.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미 정해진 일정이다. 토너먼트로 진입하면 휴식과 회복의 시간이 없기에 많은 국가들이 조별리그부터 미리미리 체력 안배와 체력 관리를 하는 것이다. 조별리그에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토너먼트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제와서 충분한 휴식을 외치는 것은 소용없다. 게다가 한국은 연장전까지 120분 혈투를 벌였다.

한 국가대표 출신 축구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벤투 감독은 핵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 중국전에서 손흥민을 무리시켰다. 그 여파가 토너먼트로 진입하면서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손흥민이 부진하거나,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벤투 감독은 엄청난 후폭풍을 맞을 것이다."
 
두바이(UAE)=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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