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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서울, 도로 위 아니더라도 집 지을 방법 많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건축가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건축가

주택금융연구원은 연초부터 우울한 전망을 했다. 공급 부족으로 서울 집값은 올해도 오를 거란다. “정책 효과로 상승 폭은 둔화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집 없는 서민에겐 위로가 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당초 “신도시 없이 집값을 잡겠다”고 장담했으나 결국 지난해 12월 ‘3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서울시도 2022년까지 8만 가구를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북부간선도로 위에 인공대지를 만들고 도심에 비어 있는 오피스 등을 활용하겠다고 한다. “참신하다”는 생각 이전에 “오죽하면”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간선도로 위에 인공대지 만들어
2022년까지 8만가구 공급키로
서울의 용적률은 파리보다 낮아
집지을 땅 남아도 모자라는 역설

정작 두려운 것은 거듭되는 옹색한 대책을 보며 “집 지을 곳이 정말 없나 보다”라고 모두가 겁먹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진짜 투기 광풍과 공황 상황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2018년 한 해 서울의 집값은 평균 6.0% 상승했다. 온갖 독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상승률이 2008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과연 땅이 모자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서울의 평균 용적률은 160% 정도다. 시내 전체가 저층인 프랑스 파리가 250%니 아직 한참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기존 시가지 용적률 상향 같은 쉬운 방법을 놔두고 왜 도로 위에까지 집을 짓겠다는 것인가.
 
속사정을 이해하려면 그간의 주택공급 패러다임인 ‘싸고 착한 아파트’부터 살펴봐야 한다. ‘싸다’에는 주택은 공공재이므로 시세보다 낮아야 한다는 뜻이 담긴다. ‘착함’의 덕목은 양호한 일조·녹지·인동(隣棟)간격, 편한 교통과 주차 등이다. 그런데 ‘싸고 착함’은 ‘가난한 부자’처럼 형용모순(Oxymoron)이다. 억지로 싸진 아파트의 모순은 ‘분양 당첨=로또’라는 공식이 웅변한다. 통제된 가격으로 적정 품질을 제공한 덕에 아파트가 국민 주거 안정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싼 공급가는 재정 투입과 분양가 승인을 통해, 착한 성능은 평형과 방 치수까지 촘촘히 규정한 주택건설촉진법으로 담보했다.
 
시론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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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시장보다 힘이 셌던 시절에는 이것이 통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강남아파트를 필두로 가치를 반영해 가격이 급격히 오르면서 사정이 달라진다. 운 좋게 얻은 강남아파트의 큰 시세차익은 상대적 박탈감의 원인이 된다. 반대급부는 강남에 대한 역차별이다. 용적률과 재건축 규제로 공급이 줄자 강남부터 집값이 올라 다른 지역으로 확산한다. 경제적으로는 합리적 선택인 재개발·재건축이 정치·윤리 차원의 난제가 되면서 땅이 있는데도 땅이 모자라는 역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동원 가능한 대책과 아이디어가 모두 도돌이표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는 정책이 아닌 패러다임이 문제라는 신호다. 이제는 ‘싸고 착한’ 주택을 일률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원칙을 버릴 때다. 홍콩 섬의 용적률은 1000~1500%다. 2024년 완성될 미국 뉴욕 맨해튼의 허드슨 야드 지구는 무려 3300%다. 싸지만 당연히 착하지 않다.
 
방은 북향이고 단지 내 녹지가 없더라도 맨해튼에 살고 싶은 사람은 이 집을 살 것이다. 기어코 강남에 살려는 사람에게는 이런 아파트라도 필요하다. 이런 용적률 규제 완화 덕분에 2014년 이후 뉴욕 집값은 연 3% 정도로 안정세다. 반면 근대 이전의 런던 도시구획 때문에 용적률 상향이 힘들고 규제가 엄격한 런던의 집값은 1997년 대비 366.2%, 2009년 이후에만 92.5%가 뛰었다.
 
밀도의 완화가 다가 아니다. 국가 공급 시대의 유산인 법과 행정은 더 문제다. 한국에서는 북향집, 조경 없는 단지는 고사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모델로 삼은 네덜란드의 ‘큐브 하우스’나 싱가포르의 ‘인터 레이스’ 같은 창의적·혁신적 아파트조차 불가능하다. 착함을 강요하는 규정이 모든 것을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법규대로 그리면 아파트 설계는 저절로 나온다는 얘기는 농담 같은 진실이다.
 
1933년 취임 다음 날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은행 휴업 명령을 내린다. 라디오 연설을 통해 현금을 쟁여놓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취미’라며 국민을 설득했다. 유명한 첫 ‘노변정담’이다. 사흘 뒤 은행 문이 열리자 미국인들은 긴 줄을 서가며 다시 예금한다. 위기를 헤쳐 나오게 한 것은 ‘전지적 참견’이 아니라 위대한 소통이었음을 알게하는 사례다.
 
지금 서울 집값 안정에 필요한 것도 이런 리더십 아닐까. “싸고 착한 아파트는 더는 없다. 이를 받아들이면 서울에 아직 집 지을 공간은 충분하다. 부피 늘림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지난 시대의 질긴 관성을 극복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이런 불편한 진실에 정면 대응하며 국민을 설득하는 용기 있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건축가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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