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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12살 빈민가 소년 “제 부모를 고발합니다”

‘가버나움’의 주인공인 빈민가 소년 자인과 젖먹이 요나스. 영화는 실제 난민 아이들을 캐스팅해 레바논 거리 난민들의 혹독한 현실을 그렸다. 지난해 칸영화제 등에서 호평받았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가버나움’의 주인공인 빈민가 소년 자인과 젖먹이 요나스. 영화는 실제 난민 아이들을 캐스팅해 레바논 거리 난민들의 혹독한 현실을 그렸다. 지난해 칸영화제 등에서 호평받았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열두 살이나 됐을까. 어린 소년이 수갑을 차고 재판을 받는다. 그 모습만도 충격적인데, 알고 보니 소년은 형사사건 피의자일 뿐 아니라 친부모를 고소한 고발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칸영화제 수상작 ‘가버나움’ 충격
전쟁·가난에 몰린 아이가 본 세상
“왜 낳기만 하고 돌보지 않았나요”
지구촌 곳곳의 비극에 경종 울려

레바논 여성감독 4년여 준비작업
아이·부모 모두 길거리서 캐스팅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처참하다”

24일 개봉하는 ‘가버나움’은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 힘이 뚜렷한 영화다. 왜 낳기만 하고 제대로 돌보지 않냐며 아이가 부모를 고발한다는 충격적 설정, 현재의 재판 장면과 과거 이야기를 오가며 궁금증을 부추기는 전개 때문만이 아니다.
 
가난하고 학대받는 아이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또 전쟁 난민이나 불법체류자가 된 어른과 아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가 강렬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스크린에서나마 이를 지켜보는 건 고통스러운 체험이다. 그럼에도 감내할 가치가 있다. 가장 큰 이유라면, 주인공 소년 자인 때문이다.
 
가난은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한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가난한 동네에 사는 자인도 그렇다. 부모의 사랑과 사회의 보살핌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는 대신 동생들과 길에서 주스를 팔고, 동네가게에서 배달 일을 하고, 또 가족에게 돈벌이가 되는 뭔가를 한다. 이런 생활에 필요한 거짓말 솜씨와 당찬 기질도 적절히 갖췄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아니, 그 이상이다. 여동생 사하르가 첫 생리를 하자 부모가 강제로 결혼을 시킬까 봐 곧바로 뒷감당에 나서는 자인, 가출한 뒤 우연히 만나 함께 살게 된 젊은 여성 라헬이 갑자기 집에 돌아오지 않자 어떻게든 라헬의 아기를 배곯이지 않으려는 자인을 보고 있으면 이 소년에 빠져들어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 맹랑하고도 순진한 자인의 힘만으로 이 모든 상황에 직접 맞서기는 역부족이다. 자인의 분투는 다른 방식으로 울림을 낳는다.
 
이 강렬한 영화를 만든 나딘 라바키(45)는 레바논 여성감독. 레바논 여성들의 유쾌한 로맨스를 그린 ‘카라멜’(2007)을 시작으로 이번이 세 번째 장편영화다. 4년간의 사전조사를 거쳐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나딘 라바키 감독과 주연 배우 자인 알 라피아의 모습. 감독은 극 중 변호사 역할도 겸했다.

나딘 라바키 감독과 주연 배우 자인 알 라피아의 모습. 감독은 극 중 변호사 역할도 겸했다.

감독은 영화사에 보낸 인터뷰에서 “현실에 비하면 영화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현재 레바논은 심각한 난민 위기에 처해있다. 이미 도시의 풍경이 된 거리의 아이들을 이대로 위험 속에 방치할 순 없었다.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아이들의 머릿속엔 어떤 생각이 있는지 먼저 알고 싶었고, 그들과 대화에서 영화가 시작됐다”고 했다.
 
어린 자인이 친부모를 고소한단 설정도 실제에서 따왔을까. 그는 “이 영화의 거의 유일한 허구지만,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이 내비친 분노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아이들은 대부분 ‘왜 사는지 모르겠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일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마다 아이들을 그 전쟁 같은 삶에 남겨두고 왔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이 영화는 아이들을 가난과 학대에 내모는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복잡한 국제정세를 꺼내들지 않는다. 그저 어린 자인의 눈높이와 발걸음을 따라 지금 벌어지는 일을 차분하게 펼친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에 돌덩이가 얹히는 듯한 먹먹함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뭉클함을 불러낸다. 베이루트라는 특정 장소를 넘어 지구촌 어디라도 벌어질 법한, 누구라도 공감할 법한 이야기로 끌어올린다.
 
자인을 연기한 자인 알 라피아는 원래 배우가 아니라 시리아 난민 출신 소년이다.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다 영화에 캐스팅됐다. 영화를 찍기 시작했을 땐 열두 살이었지만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했다. 심금을 울리는 연기가 더욱 놀랍게 보이는 배경이다.
 
제작진은 극 중 인물과 다를 바 없는 처지인 사람들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아기 엄마 라힐을 연기한 여성도 영화에서처럼 불법체류자. 이런 이유로 영화 촬영 도중 체포되기도 했다. 젖먹이 요나스 역할의 아기 역시 부모가 불법체류자. 아기의 연기 아닌 연기가 천진하고 깜찍하다.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를 연기한 소녀 역시 거리에서 껌을 팔다 캐스팅됐다.
 
비전문 배우들로 2시간짜리 완성본에 앞서 촬영 분량이 무려 500시간. 아역들에 대사를 달달 외우게 해 연기를 뽑아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감정을 이끌어내고 포착하는 데 공을 들였다는 얘기다.
 
“우리가 한 일은 그저 아이들이 반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뿐이었다. 미리 카메라 동선을 짜지도, ‘액션’이라 말하지도 않았다. 그냥 찍어야겠다 싶은 때가 오면 촬영을 시작했다. 자인과 요나스가 서로를 의지할 때 연기는 특히 아름다웠다. 자연스럽고 본능적이었기 때문이다.” 라바키 감독의 말이다.
 
가버나움은 성경에 나오는 도시 이름. 예수가 여기서 여러 차례 기적을 행했건만 이곳 사람들은 믿지도, 회개하지도 않았다니 축복받았을리 없는 도시다. 이후로 가버나움은 혼돈(chaos)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고 한다. 자인이 사는 지독한 혼돈의 도시에 기적이 생긴다면, 그건 자인 같은 아이 덕분일 것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이다.
 
이후남·나원정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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