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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그녀의 가장 비싼 옷은 7만원 점퍼였다

[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①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는 속칭 ‘옐로하우스’라는 집창촌이 있다. 인천항에 있던 업소들이 1962년 이전하면서 터를 잡았다. 한때 33개 업소에서 700여명이 일하던 이곳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사양길에 들어섰다. 
 
지난해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현재 남아있는 업소는 10개 정도. 40여명의 성매매 여성과 20여명의 업소 직원(주방 이모)이 있다. 이들에게 ”이번 달 안에 업소를 비우라“는 통첩이 날아들었다. 57년을 이어온 현장에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 
 
대구 ‘자갈마당’ 등 다른 지역 집창촌 역시 부동산 개발, 문화 재생사업을 이유로 폐쇄 수순을 밟고 있다. 
 
남아있는 여성들은 ”갈 곳이 없다“며 이주 대책을 요구한다. 오늘의 이 상황이 온전히 그들만의 잘못이냐는 억울함이 가슴에 담겨있다. 
 
외부 사람을 철저히 경계하는 여성들을 설득해 평생 마음에 묻어온 얘기들을 끄집어냈다. 인터뷰에 응한 다섯 명의 여성은 때론 서러움에, 때론 분노로 눈물을 쏟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싣는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집창촌 '옐로하우스'.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를 앞두고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김경록 기자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집창촌 '옐로하우스'.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를 앞두고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김경록 기자

지난 18일 옐로하우스의 성매매 업소 4층 방에서 만난 여성 A씨(45)는 이곳 생활이 11년째다. 오랜 설득 끝에 취재에 응한 그는 자신이 사는 방으로 기자를 데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츄 한 마리가 주인을 반겼다. 방은 깔끔했다. 분홍색 커튼과 침대 위 캐노피가 눈에 들어왔다. 쿠션과 인형이 유난히 많았다. 요즘 유행하는 카카오프렌즈 인형도 보였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직접 그린 듯한 유화, 화분들, 애견용품이 눈에 띄었다. 
 
A씨가 이곳에 발을 들인 이유는 장애인인 어머니 때문이라고 했다. 갑자기 쓰러져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닥쳤다. A씨 부모는 모두 장애인으로 돈을 벌지 못한다. 조금 나오는 연금으로는 병원비와 생활비를 대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형제들도 모두 형편이 빠듯했다. 
 
살던 방을 빼도 수술비에서 700만원이 모자랐다. 돈을 구할 곳이 없을 때 유일하게 현금을 내준 곳이 옐로하우스다. 그의 말을 빌자면 “다행히” 아는 언니를 통해 선불을 받았다. 그렇게 나이 서른둘에 제 발로 ‘○호 아가씨’가 됐다.
 
서른둘에 ‘○호 아가씨’가 되다 
성매매 업소 4층에 있는 여성 A씨의 방. 2평 남짓 방에 직접 그린 유화가 걸려 있다. 서랍장 나무 그림 역시 직접 그린 것. 파스와 수면제가 없으면 일을 하지도, 잠을 자지도 못 한다. 최은경 기자

성매매 업소 4층에 있는 여성 A씨의 방. 2평 남짓 방에 직접 그린 유화가 걸려 있다. 서랍장 나무 그림 역시 직접 그린 것. 파스와 수면제가 없으면 일을 하지도, 잠을 자지도 못 한다. 최은경 기자

나이가 적지 않은 데다 지병(신우신염)이 있는 A씨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돈을 벌기란 쉽지 않았다. 신우신염은 신장에 세균이 감염돼 생기는 병으로 완치가 어렵다. 그래도 매달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350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고향 집에 보내는 돈은 한 달에 100만~200만원. 1년 넘게 고생해 선불을 갚았다. 그러나 무리해 일한 탓에 신우신염이 심해져 입원하게 됐다. 
 
그걸 계기로 이곳을 떠났다. 한편으로 기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까지 장애 판정을 받았다. 돈이 필요했다. 성치 않은 몸으로 다시 옐로하우스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그렇게 8년이 흘렀다. 
 
“솔직히 여기밖에 없었어요. 제가 돈을 못 벌면 부모님이 생활할 수 없었으니까요. 다른 일 하면서 집에 보내는 돈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지금도 전동 휠체어를 해드리고 싶은데 못 해 드려 마음이 너무 아파요.” 
 
A씨가 일어나 옷장 문을 열었다. 가장 비싼 옷이 7만원 짜리 패딩 점퍼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이들을 욕하는 글에 자주 등장하는 명품백은 보이지 않았다. 
 
가난은 오랜 세월 A씨를 쫓아다녔다. 미술을 좋아했지만 집안 형편상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 공부를 하면서 하루 8시간씩 일했다. 이런 생활이 너무 힘들어 학업을 포기했다. 고등학교 중퇴 학력의 A씨가 일할 곳은 많지 않았다. 
 
어렵게 들어간 공장에서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다음 직장인 회사에서 사장은 A씨에게 보증을 서라고 했다. “지나고 보면 바보 같은데 회사니까 믿었어요.” 
 
몇 년 뒤 집으로 5000만원을 갚으라는 통지가 왔다. 회사 사장은 외국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돈을 갚을 방법이 없었다. 고민 끝에 파산 신청을 했다. 어머니가 쓰러졌을 때 단돈 100만원도 빌릴 수 없었던 이유다. 통장·휴대전화도 만들 수 없었다. A씨는 지난해 보험에 처음 가입했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엄마·아빠는 내 직업을 모른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병 때문에 일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아는 언니가 카운터 보는 일을 도와달라고 해 인천에 왔다. 혼자 그럭저럭 자리를 잡았다 싶었을 때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이야기를 들으며 자꾸 되묻는 기자의 태도에서 의심의 마음을 읽었던 것일까. 그는 “믿기 어려우시겠지요. 잠깐 부모님과 통화를 할게요”라며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예요. (오냐.) 몸은 좀 어때요. (그냥 그렇지.) 아버지 아픈 데 무리하지 마세요. 제가 다 해드릴게요. 엄마 바꿔주세요. 엄마. (○○아.) 아픈 데 없어요? (괜찮아.) 드시고 싶은 건 없고? (많지.) 사서 보내드릴게요.”(※신상 노출을 막기 위해 대화 내용을 간략히 줄임.) 
 
전화를 끊은 뒤 A씨는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울었다. 기자도 눈물이 자꾸 나는 걸 억지로 참았다.
홍등은 더 이상 찬란하지 않다. 숭의역이 생긴 뒤로 옐로하우스 홍등은 가게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게 됐다. 김경록 기자

홍등은 더 이상 찬란하지 않다. 숭의역이 생긴 뒤로 옐로하우스 홍등은 가게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게 됐다. 김경록 기자

이 일을 하면서 허리 디스크를 얻었다. 옐로하우스 여성 대부분이 앓는 일종의 직업병이다. 서랍에는 파스가 가득했다. 진통제를 먹으면 급격하게 살이 쪄 수입이 줄 우려가 있어 파스로 버틴다고 했다. 병원에서 시술을 권했지만 일을 쉴 수 없어 미루고 있다. 
 
“사실은 한두 달이라도 정말 쉬고 싶어요. 처음 왔을 때는 조금만 있다가 나가려고 했는데 부모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져서.” 
 
또 다른 서랍에는 하얀 알약이 든 통이 있었다. A씨는 보통 오후 7시쯤 일어나 영업을 준비하고 오후 9시부터 오전 7시까지 10시간을 일한다. 퇴근 뒤 청소하고 오전 11시쯤 자는데 잠이 안 올 때가 많다고 했다. 
 
“요즘 철거 걱정 때문에 수면제 양을 두 배로 늘렸어요. 조합에서는 업주에게 아가씨들 다 내보내면 돈을 준다고 했다는데 저희는 한겨울에 갈 곳이 없어요. 다른 집과 다르게 주인 언니가 힘들 때 많이 도와줬는데 참 난감해요. 어떻게 해야 할지….” 
 
A씨는 허리 디스크 때문에 오래 서 있을 수 없어 마트나 공장에서 일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금씩이나마 저축을 했지만 방 한 칸 마련하지 못할 돈이다. 그는 밖으로 나가면 당장 뭘 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면서도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 와서 어머니를 살렸잖아요. 제 생활하면서 집에 도움도 주고요. 식당·마트에서 일하면 저 혼자는 살 수 있었겠지만 부모님 병원비는 못 드렸을 거예요. 분명 사치하는 성매매 여성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도 있어요. 흙수저를 물고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게 바로 저희예요.” 
 
옐로하우스에서 만난 여성들은 대개 가족 부양을 위해 성매매에 발을 들였다고 했다. 이 일을 그만두고 서빙 점원, 계산원, 텔레마케터 등 다른 일도 해봤지만 한 달 100만원이 안 되는 돈으로 가족 뒷바라지하고 본인 생활비·병원비를 쓰다 보면 빚이 쌓이고 다시 여기로 돌아오게 된다고 했다. 
 
오랜 시간 대화하는 동안 A씨는 “이 일이 좋아서 하는 여성은 한 명도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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