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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도 바꾸려했던 영장심사, "구속 권력 누가 갖느냐 싸움"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오는 23일 오전 10시 30분 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열린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오는 23일 오전 10시 30분 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열린다. [연합뉴스]

1989년 10월 30일, 서울지법 동부지원 이병노 판사는 화염병 투척 혐의(화염병처벌법 위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건국대생 6명에 대해 "서류심사만으로는 영장발부 여부를 결정할 수 없어 직접 심문하겠다"며 검찰에 소환을 요청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23일 영장심사
법원·검찰 30년째 영장 권한 갈등
法 '보석 조건부제'VS 檢 '영장 항고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검찰이 영장 서류를 제출하면 판사가 그대로 영장을 발부해 왔고, 검찰은 "법적 근거가 없는 월권 행위"라며 이 판사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 판사는 피의자 6명 중 3명에 대해 "자료가 부족하다"며 영장을 기각했고 파문은 정치권까지 확산됐다.
 
피의자와 변호인, 검사가 참석해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지금의 영장실질심사제도는 이 사건에서 촉발돼 8년 뒤인 1997년 1월 1일 도입됐다. 
 
지난 30년간 작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23일 오전 10시 30분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이 참석하는 영장실질심사는 이 틀을 거의 벗어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는 등 6차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장이 21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법원은 21일 김 지회장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다. [연합뉴스]

청와대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는 등 6차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장이 21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법원은 21일 김 지회장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다. [연합뉴스]

제도의 연식이 오래된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대법원장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구속영장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소신을 밝힌 적이 있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시대 상황에 맞춘 변화가 필요하다며 '보석 조건부 영장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판사가 구속명령을 내린 뒤 조건을 달고 보석을 해줘 피의자의 신체 자유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대법원장이 취임한 직후 직접 드라이브를 걸었을 만큼 대법원의 주요 과제였지만 입법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수사 과정에서 구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온 검찰과 법무부는 양 전 원장의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그 대가로 영장실질심사에 대한 검찰의 불복(항고)을 허용하는 '영장항고제' 도입에 법원이 긍정적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영장실질심사 제도의 핵심은 피의자의 신병 처리 권한을 법원과 검찰 중 누가 갖느냐에 대한 싸움"이라며 "두 기관의 밀접한 이해관계와 권력이 맞부딪치는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관련 검찰에 출석하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모습. [중앙포토]

지난 11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관련 검찰에 출석하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모습. [중앙포토]

법조계에서는 각 법원의 영장전담판사 중 한 명이 단 한 번의 심사로 피의자의 신병을 결정하는 현 제도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많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경우처럼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수사가 진행되면 피의자를 구속하려는 검찰과 이를 기각하는 법원 간의 공개적인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서울변호사협회 회장을 맡았던 김한규 변호사는 "영장이 기각 또는 발부되더라도 검사와 피의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관련 문제를 연구해왔던 경북대 법학연구원 박남미 박사도 "구속영장 발부를 두고 두 기관의 대립이 지속될수록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더욱 커져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영대 전 대법관이 지난달 6일 영장심사를 받기위해 서울 중앙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다. 법원은 박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고, 박 전 대법관은 이날 구치소를 나오며 "법원의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박영대 전 대법관이 지난달 6일 영장심사를 받기위해 서울 중앙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다. 법원은 박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고, 박 전 대법관은 이날 구치소를 나오며 "법원의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9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의 1호 구속 대상이었던 유해용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경우,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며 검찰에게 보란 듯 3600자의 사유서를 공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검찰은 "결론을 정해놓은 후 기각을 위한 기각 사유를 발표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2006년 '론스타 외한은행 헐값 매입 의혹'을 수사했던 대검 중수부는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 구속영장을 네 차례나 기각했던 법원에 대해 "검찰 수사에 인분을 뿌리는 것", "치욕의 날"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법원과 검찰의 영장 갈등은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 있었던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이후 최순실 특검과 문재인 정부의 '국정농단''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에 그대로 반복돼 이어지고 있다.
 
영장전담 부장판사를 역임했던 변호사는 "최순실 사태 이후 검찰이 언론과 여론을 활용해 법원에 영장 발부 압력을 가하는 모습이 잦아지고 있다"며 "불구속 수사가 형사법상 대원칙이다. 법원 내에서 검찰이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천지검 부천지청장 출신의 이완규 변호사는 "배심제와 같이 국민이 사법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관료 법관의 재판권 행사인 영장실질심사에 불복할 수단이 없는 것은 납득하긴 어렵다"며 "검찰이 항고할 수 있는 '영장항고제' 도입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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