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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양질의 일자리는 결국 시장이 만든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

이상렬 경제 에디터

친구 A는 지방전문대 이공계열 교수다. 신학기가 되면 신입생들과 학부모들의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A의 주된 일이다. 그는 “대기업은 꿈도 꾸지 마라” “우리 과에선 중견기업이라도 가면 잘 간 거다” 등등 독설을 쏟아낸다. 그 이유를 A는 이렇게 설명했다.“그렇게라도 현실을 인식시켜놓아야 중소기업이라도 취업을 해. 대기업에 직행하기는 어렵지만 2~3년 중소기업에서 착실히 기술을 익히면 얼마든지 대기업에 갈수 있거든.”
 

사상 최악 청년 고용절벽 눈앞으로 다가와
기업 기 살리고 규제 깨는 게 일자리 대책

대기업을 향한 취업전쟁은 대졸자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해 대졸자는 대략 30여만 명. 이중 대기업 상하반기 신입 공채는 총 3만명에 불과했다(취업포털 잡코리아 통계). 대학원 진학, 군 입대 등을 감안해도 상당수는 대기업 일자리를 잡지 못했다. 어디 대기업 뿐일까. 대기업, 중소기업, 공공부문을 모두 합해도 지난해 늘어난 취업자는 9만7000명에 불과했다. 학교를 마친 많은 청년들이 결국 취업준비생으로 겨울을 보내야 한다. 통계청이 파악한 2018년 취준생은 69만3000명. 전년보다 2만4000명 더 늘었다.
 
가슴 아프지만 최악의 고용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올해 채용시장은 지난해보다 더 얼어붙을 전망이다. 취업포털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4곳이 올해 정규직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거나 채용계획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4년제 대졸 예정자 중 정규직 일자리를 구한 이는 10명 중 1명(11%)에 불과하다.
 
2년 만에 29%나 오른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은 많은 고용주들을 신규 채용은커녕 기존 인력 감축에 나서도록 내몰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말 책정한 올해 취업자 증가 규모는 15만명. 기존 취준생은 말할 것도 없고 올해 새로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4년제 대졸자 30여만 명을 수용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그럼에도 긍정적인 신호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그 중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행보다. 경제 현장을 자주 찾는 것 자체가 지난해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듣는 모습이다.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는 10대 그룹 총수가 현 정부에서 문 대통령을 동시에 만난 첫 행사였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잘해 오셨지만 앞으로도 일자리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고용 창출에 앞장서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진보진영 일각에 대통령이 그룹 총수들과 만나는 것 자체를 문제시 하는 인사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이 장면에서 고용 위기를 타개하려는 문 대통령의 진정성을 느꼈을 것이다. 수많은 취준생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총수들의 의지와 각오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날 총수들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사회에 보답한다”는 기업보국의 사명감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지 않았을까. 문 대통령이 이틀뒤 울산 수소경제 전시장을 찾아 “뭐 요즘 현대차, 특히 수소차 부분은 내가 아주 홍보모델이에요”라고 말한 것도 종래와 다른 파격이었다.
 
정부에서 발신되는 청신호는 또 있다. 문 대통령이 노영민 신임 비서실장에게 “경제계 인사를 만나는 것은 비서실장도 해야 할 일”이라고 주문한 것, 이낙연 국무총리가 수원 삼성전자 사업장을 찾아 이재용 부회장에게 “최근 반도체 시장이 악화하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시련을 뚫고 수출에 기여해달라”고 격려한 것, 일정기간 기존 규제를 제로로 만드는 ‘규제 샌드박스’가 닻을 올린 것 등이다. 모든 사례가 기업이 경제활력 회복과 일자리 창출의 주역임을 인정하고 등을 밀어주는 것들이다. 이런 과정에서 대기업들의 자신감이 확인된 것도 경제심리엔 큰 성과다. 이재용 부회장은 반도체 경기 하강을 우려하는 문 대통령의 질문에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목표 미달로 부진했던 현대차는 올해 글로벌 판매 목표를 지난해보다 높게 잡고 미국 시장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시장에선 창업가들이 희망의 메시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의 신년 기획 연재물인 ‘규제 OUT’ 취재팀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사업을 가로막는 규제괴물의 현장을 전국 각지에서 목격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많은 기업가들이 규제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좌절않고 사업과 고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부 규제로 공유버스 서비스를 접어야 했던 콜버스랩의 박병종 대표가 그런 사례다. 그는 전세버스 사업으로 내용을 바꾸긴 했지만 12명 직원의 일터를 꿋꿋이 키워나가고 있다.
 
이 땅의 청년들이 소망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결국 정부 재정이 아니라 시장이, 기업이 만들어낸다. 정부가 진정 일자리 창출을 원한다면 시장이 살아나고, 기업이 신나게 움직이게 하면 된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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