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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이스 “난 그의 주구” 격찬한 거장, 팔대산인을 만나다

팔대산인이 60대에 그린 ‘대나무와 바위, 영지’(159x64㎝). 17세기 그림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구도에 강력한 필체가 돋보인다.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팔대산인이 60대에 그린 ‘대나무와 바위, 영지’(159x64㎝). 17세기 그림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구도에 강력한 필체가 돋보인다.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팔대산인이 그린 70세 전후에 그린 사슴. 중국국가미술관 소장.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팔대산인이 그린 70세 전후에 그린 사슴. 중국국가미술관 소장.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제백석(齊白石·치바이스·1864~1957) 전시를 보러 갔는데, 팔대산인(八大山人· 1626~1705)의 수묵에 마음을 빼앗겼다.” “뜻밖에 횡재한 기분이다. 팔대산인의 원작을 이렇게 한국에서 볼 수 있다니….”

서울 예술의전당서 작품 첫 공개
중국 명말청초 때 문인화 대혁신
청에 멸망한 명나라 왕족의 후예
목숨 부지하려 평생 떠돌며 살아

파격적 글과 그림 후대에 큰 영향
‘그림 속 그림’ 현대적 요소도 풍부

 
최근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하는 얘기다. 화제의 전시는 ‘같고도 다른: 치바이스와의 대화’. 예술의전당이 지난해에 이어 열고 있는 중국 국민화가 치바이스를 조명하는 두 번째 특별전이다.
 
“왜 또 치바이스냐?” 일부 관람객들은 전시도 보기 전에 타이틀을 보고 이런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정작 이번 전시에서 예상치 못한 ‘거장의 거장’ 작품을 만났다. 중국 문인화의 거두 팔대산인의 작품 7점과 우창쉬(吳昌碩·1844~1927)의 작품 14점이다. 치바이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들이다. 그 영향이 어느 정도였느냐면, 치바이스가 스스로 “나는 팔대산인 문하의 주구(走狗, 개·꼭두각시라는 뜻)”라고 했을 정도다. 중국국가미술관이 소장한 이들 작품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에 처음 공개됐다.
 
이 전시는 치바이스가 전통을 어떻게 소화했는지, 또 현대 작가들이 그 전통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를 조명한다. 팔대산인과 우창쉬에서 시작해 치바이스의 영향을 받은 우쭤런(吳作人·1908~1997), 우웨이산(吳爲山·57) 등 현대 대표 작가들의 작품까지 116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 중에서도 그동안 ‘전설’처럼 거론돼온 팔대산인의 파격적인 작품들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중국 현대작가 진상이(85)가 그린 팔대산인 초상(2007, 캔버스에 유채). 중국국가미술관 소장.

중국 현대작가 진상이(85)가 그린 팔대산인 초상(2007, 캔버스에 유채). 중국국가미술관 소장.

◆팔대산인, 울다가 웃다가(哭之笑之)=명말 청초의 서화가인 팔대산인의 본명은 주탑(朱耷)이다. 장시성 출신으로, 명 태조 주원장의 17번째 아들의 10세 손이다. 18세 되던 해인 1644년 명나라 왕실이 망하자 승려가 되었다가 50대에 환속했다. 조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팔대산인은 청나라 들어서면서 신변의 위협을 받아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승려가 됐다”며 “그는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승려로서도 높은 수준에 도달했던 인물”이라고 전했다. 팔대산인은 벙어리인 척, 미치광이인 척, 승려인 척하면서 목숨을 부지했다. 60세 이후에는 서화가로서 자신만의 화풍을 뚜렷하게 세웠는데, 특히 동아시아 서화 미술의 핵심 화두인 ‘필묵사의(筆墨寫意·붓과 먹으로 정신을 표현한다)’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팔대산인, '물고기'(1694). 물고기의 표정이 눈길을 끈다. 중국국가미술관 소장.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팔대산인, '물고기'(1694). 물고기의 표정이 눈길을 끈다. 중국국가미술관 소장.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시작  중에서 전문가들이 ‘팔대산인의 자화상에 가깝다’고 가리키는 작품이 있다. 그가 70세에 그린 ‘물고기’(1694) 그림이다. 화폭엔 수초와 단 한 마리의 물고기만 등장하는데, 물고기의 뾰로통해 보이는 표정이 눈길을 끈다. 안휘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는 “팔대산인은 새나 물고기 등 대상을 통해서 자기 심정을 반영하는 데 탁월했다. 먹과 붓을 다루는 방법도 독창적이고 표현이 간결 명료해 호소력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는 “물고기 한 마리를 화면 가운데에 그린 구도가 파격적”이라며 “그는 그림에 쓴 자작시에서 팔대산인은 자신을 곤(鯀·신화 속의 큰 물고기)에 비유했다. 나라를 잃고 떠돌고 있지만, 한족의 자존심은 지키겠다는 저항의식이 보인다”고 분석했다.
 
시를 써내려간 글씨체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수석큐레이터는 “그의 글씨는 군더더기 없는 담박과 천진 그 자체”라고 했다.
 
◆파격적 구도·몰골법, 300년 전 혁신=그러나 팔대산인에게 그러한 도도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그린 새는 한 발로 서 있는가 하면, 사슴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다. 언뜻 보면 아름답고 평안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서글픔이 보인다. 이 수석큐레이터는 “그림에 남긴 ‘팔대산인’이란 글자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곡(哭·울다) 혹은 소(笑·웃다)로도 읽힌다. 자신의 실존적 상황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팔대산인이 그린 '연꽃'.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팔대산인이 그린 '연꽃'.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대나무와 바위, 영지’ 역시 구도가 파격적이다. 화면 윗부분에 사각 평면, 그 안에 둥근 원, 원 안에 영지가 있다. ‘그림 속의 그림’ 구도다. 연의 줄기는 쇠꼬챙이처럼 가늘고 건조하게,  꽃은 마치 먹물을 들어부은 듯 흥건하게 표현한 ‘연꽃’(1694) 그림도 눈여겨볼 작품이다. 이미 300년 전에 몰골법(沒骨法·사물의 테두리를 그리지 않고 먹의 농담으로만 표현하는 기법)을 자유자재로 운용했음을 보여준다.
 
전시장엔 팔대산인이 그린 ‘연꽃’과 치바이스의 ‘연꽃’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한 자리에서 비교해 볼 수 있다. 치바이스는 1901년 친구 집에서 우연히 팔대산인의 그림을 접하고 20년간 팔대산인의 작품을 모사하며 ‘학습’했다. 안 서울대 명예교수는 “팔대산인은 중국 회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한다”며 “이번 전시 제목에 팔대산인의 이름이 명시돼 있지 않은 게 안타까울 정도”라고 말했다.
 
◆같고도 다르게, 전통은 이어진다=이번 전시의 또 다른 묘미는 난초, 모란, 대나무, 국화, 조롱박 등을 그린 우창쉬와 치바이스의 그림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치바이스를 따르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도 탄성을 자아낸다. 안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웨이산의 조각 작품은 동양화의 사의(寫意) 전통을 현대 작가가 3차원의 조소로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동국 수석큐레이터는 “치바이스가 필묵사의 전통의 주구를 자처하지 않았다면 그의 혁신적인 작품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전시는 예술 창조 또한 고전에 대한 천착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말했다. 서예박물관은 30일 오후 2시 ‘사의와 문인화’를 주제로. 김백균 중앙대 교수의 특별 강연을 연다. 전시는 2월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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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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