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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원 실수로 불에 타 죽은 황제? 황당 비극 모은 역사달력

기자
김성희 사진 김성희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20)
어느 중국 음식점에 걸려있는 일력(日曆). 요즘은 일력을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이 달력이 정보화시대를 맞아 알차게 단장한 것이 가끔 눈에 띈다. [중앙포토]

어느 중국 음식점에 걸려있는 일력(日曆). 요즘은 일력을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이 달력이 정보화시대를 맞아 알차게 단장한 것이 가끔 눈에 띈다. [중앙포토]

 
매일 낱장으로 떼어버리는 달력이 있었다. 과거형으로 쓰는 것은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들어서다. 얇은 반투명 종이 가운데 큰 글자로 된 날짜가 있는 두툼한 달력은 꽤 쓰임새가 컸다. 날자 주변엔 작은 글자로 음력이며 절기 같은 농사에 도움이 될 법한 정보가 있는 데다 재래식 변소에서도 유용하게 쓰인 덕분이었다.
 
이 달력이 정보화시대를 맞아 알차게 단장한 것이 가끔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영어나 일어 등 외국어 회화를 매일 익힐 수 있도록-솔직히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의문이지만-만든 것이나 명언을 붙이는 방식이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 모르나 책에도 매일 한 꼭지를 읽도록 한 구성이 적지 않다. 외국어 문장이나 역사적 사실이나 명언을 묶어 매일 조금씩 터득하고, 깨닫도록 만들어 읽는 이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다. 그날그날 일어난 국내외 역사적 사건 두 가지를 설명하는 ‘역사달력’ 『역사 속의 오늘』(김정형 지음, 생각의나무)이나 중국 고전에서 뽑아낸 ‘하루 명언 한 구절’을 엮은 『1일 1구』(김영수 엮음, 유유)이 얼른 떠오르는 책이다.
 
『지독하게 인간적인 하루들』 마이클 파쿼 지음, 추수밭. 이 책은 인류사에서 불운하고 불행하고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을 날짜별로 엮은 것이다.

『지독하게 인간적인 하루들』 마이클 파쿼 지음, 추수밭. 이 책은 인류사에서 불운하고 불행하고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을 날짜별로 엮은 것이다.

 
한데 형식은 ‘역사달력’인데 특이한 컨셉의 책을 만났다. 『지독하게 인간적인 하루들』(마이클 파쿼 지음, 추수밭)이 그것이다. 부제 중엔 ‘거의 모든 불행의 역사’란 표현이 있듯이, 책은 인류사에서 불운하고 불행하고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을 날짜별로 엮은 것이다.
 
지은이는 워싱턴포스트 지의 칼럼니스트이자 편집자를 지낸 논픽션 작가. 정식 역사가가 아닌 만큼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 위주가 아니라 어쩌면 기이하고 ‘우픈’ 사실들을 모은 ‘가십 창고’에 가깝긴 하다.
 
인류 역사에는 거의 수십억 가지의 불행한 사건들이 있었다. 그러니 거의 모든 사람이 희망과 기대에 부푸는 새해 첫날이라고 빠질 수가 없다. 지은이가 404년 1월 1일 수도승이자 순교자인 텔레마코스의 흉사를 전한다.
 
그는 로마에서 벌어진 두 검투사의 싸움을 말리려다 재미난 구경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분노한 관중의 돌에 맞아 죽었단다. 이뿐만이 아니다. 1387년 새해 첫날엔 나바라의 카를로스 2세가 자신의 침대에서 타 죽었다. 병 치료를 위해 브랜디에 적신 붕대로 온몸을 감고 있었는데 수행원의 실수로 불이 붙는 바람에 그랬단다.
 
모든 사람이 너그러워지고 서로를 축복해주는 12월 25일 성탄절 편에 실린 이야기도 우픈 결말이다. 2002년 12월 25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토박이인 잭 휘태커란 인물은 3억 1,500만 달러의 복권에 당첨되었다. 55세인 그는 이미 건설업으로 꽤 부유했고, 아내와 딸, 그리고 열다섯 살 난 손녀 브랜디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뒤 잭 휘태커는 교회에 십일조를 내고 자선단체도 세웠다. 시작은 좋았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스트립쇼 공연장에 드나들다 강도를 당하기도 했고, 음주 운전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사진 pixabay]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뒤 잭 휘태커는 교회에 십일조를 내고 자선단체도 세웠다. 시작은 좋았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스트립쇼 공연장에 드나들다 강도를 당하기도 했고, 음주 운전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사진 pixabay]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뒤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시작은 좋았다. 세 곳의 교회에 십일조를 내고, 자선단체도 세웠다. 잭은 “제가 당첨금을 쓰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저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스트립쇼 공연장에 드나들다 강도를 당하기도 했고, 음주 운전으로 체포되고 교통사고를 내는 등 “돈이 그의 선한 면을 모두 먹어치운 것”처럼 변했다.
 
아내와의 40년 결혼생활도 파경을 맞았다. 그뿐만 아니다. 그의 전부라 할 손녀에게 현금과 고급 차들을 마구 퍼주었는데 그녀의 돈을 노린 가짜 친구들이 모여들면서 마약중독자가 되어 버렸다. 결국 잭이 대박을 터뜨린 지 2년 만에 손녀 브랜디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죽음과 파멸로 점철된 잭의 고난을 두고 지은이는 “악마가 직접 복권을 가져다준 것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잭 자신도 훗날 “복권을 찢어버렸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단다.
 
책은 단순히 엽기적인 사실(史實)을 뒤져내는 악취미에 영합하는 것만은 아니다. 지은이가 “오늘 하루가 아무리 엉망이었어도 역사 속 어딘가의 누군가는 훨씬 더 끔찍한 일을 겪었으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데서 그 속내가 짐작될 것이다. 어떤 이의 불행과 슬픔에 대한 가장 큰 위로는 다른 이의 더 큰 불행이라는 말처럼 책은 나름의 쏠쏠한 위안을 준다. 솔직히.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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