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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밸리의 길 안내인, 엑셀러레이터가 말하는 스타업이 크는 법

판교는 대한민국의 새 성장동력이다. 공장 굴뚝 하나 없는 이곳에 1200여 개 기업, 7만여 명의 인재들이 한국판 구글ㆍ페이스북을 꿈꾸며 일한다. 중앙일보는 2019년 한해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디지털 시리즈를 통해 판교 테크노밸리 기업과 사람들의 꿈ㆍ희망ㆍ생활을 해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에 걸쳐있는 사막 지역 데스밸리. [중앙포토]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에 걸쳐있는 사막 지역 데스밸리. [중앙포토]

‘데스밸리(death valleyㆍ죽음의 계곡)의 길 안내인’. 판교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액셀러레이터를 지칭하는 말이다. 창업 초기 자금난과 온갖 시행착오를 겪는 고통의 시기를 함께 견디고 스타트업이 J 커브(매출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시기)를 그릴 때까지 초기 투자 및 창업 노하우 전수 등 지원하는 역할을 해서다. 특히 사업 실적은 없고,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는 신생 스타트업에게 액셀러레이터는 '구원의 동아줄'과도 같다.
 
  중앙일보는 국내 대형 벤처캐피털로부터 추천받은 민간부문 액셀러레이터 이택경(48) 매쉬업 엔젤스 대표, 송경복(45) 펑키브로 대표와 공공부문 액셀러레이터인 이지선(54) 오즈인큐베이션센터 센터장을 만나 스타트업을 키우는 법에 관해 물었다. 이재웅 현 쏘카 대표와 함께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한 이택경 대표는 2013년 매쉬업 엔젤스를 창업해 지금까지 75개의 정보통신기술(ICT) 스타트업을 발굴해 왔다. 국내 1세대 벤처기업 홍보 전문가인 이지선 센터장은 판교에 있는 경기도 스타트업 캠퍼스와 연계한 ‘보육프로그램’으로 창업 3년 이내 스타트업 60곳을 지원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특화된 마케팅 기법으로 현재 스타트업 20곳을 키우고 있는 송경복 대표는 배우 송승헌의 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스타트업 투자는 '카드 한장만 보이는 포커판' 
 액셀러레이터는 아이디어와 시제품만 있는 상태의 스타트업에 적게는 5000만원에서 많게는 3억원까지 시드머니를 투자한다. 전통적 금융투자 관점에서 보면 초창기 스타트업 대부분은 투자 부적격 회사다. 회사의 가치를 입증할 매출 등 객관적 지표도 없고 비전 또한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옥석을 구분해 키울 회사와 버릴 회사를 가려야 한다. 이택경 대표는 이런 스타트업 발굴 과정을 포커판에 비유했다.  
“초기 스타트업 투자는 카드가 한장만 뒤집어져 있는 상태의 포커판과 같다. 하나씩 카드를 열어 볼수록 베팅금액을 늘릴 수 있겠지만 제일 처음 한장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정보가 너무 제한돼 어렵다. 그래서 첫 단계에서는 팀과 사람을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창업자가 배수의 진을 칠 정도로 창업 의지가 강한지 그리고 그의 팀이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창업자와 함께 일하는 팀 구성도 중요 요소다. 이지선 센터장은 “연예기획사가 아이돌 그룹 안에 노래, 춤, 예능 담당을 두듯이 스타트업 내에서도 핵심 분야를 직접 담당할 사람이 필요하다. 한번은 노인 행동을 분석해 치매 예방을 할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온 창업자가 있었다. 상은 많이 받았는데 팀 내에 메디컬 전문가가 한명도 없었다. 어떻게 할 거냐 했더니 아는 교수가 많다고 하길래 돌려보냈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핵심 영역은 누가 도와줄 수 없어서다”라고 말했다.
 
 때로는 객관적 지표를 만들어 투자하기도 한다. 펑키브로는 스타트업 발굴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을 활용한다. 괜찮은 사업계획이 있으면 SNS 광고를 만들어 일정 기간 마케팅을 한 다음 여기서 나온 결과를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송 대표는 “3개월이든 6개월이든 같은 금액으로 광고했는데 앱을 설치한다든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하는 부분에서 유달리 반응이 좋은 제품·서비스가 있다. 그런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 초기 스타트업 대부분이 매출이 형편없거나 아이디어만 있고 손가락만 빠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에게 수익률 등 객관적 지표를 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선배 창업자가 낭떠러지 있다 알려줘야
액셀러레이터가 일반 벤처캐피털과 다른 점은 투자에 더해 코칭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센터장은 “창업자는 앞만 보고 달려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회사라는 게 창업자 의지대로만 되는 게 아니다. 꿈을 향해 달리는 창업자가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선배 창업자가 저쪽에 낭떠러지가 있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스타트업일수록 페이스북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타트업에 최적화된 마케팅 도구가 페이스북이다. 어느 지역, 어떤 연령대의 사람이 자신의 제품에 열광하는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원래 아이템이 잘 안되면 다른 쪽으로 사업방향을 틀기도 쉽다. 페이스북 성과를 근거로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기도 편하다”고 말했다.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인맥에서부터 조직관리까지 경험이 전무해 선배 창업자들의 노하우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 이 대표는 “맨땅에 헤딩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재무·회계·법률 기초부터 지속해서 가르친다”며 “대형 벤처캐피털의 후속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네트워킹 기회도 꾸준히 제공한다”고 말했다.
 
경쟁자와 한 끗 차이, 역발상이 중요  
액셀러레이터들은 스타트업 성공 비결로 역발상을 꼽았다. 오즈인큐베이션 센터에 둥지를 틀고 있는 와이즐리는 면도날과 면도기를 배송해 주는 스타트업이다. 글로벌 대기업의 면도날이 몇만 원대로 비싼 점에 착안해 독일에서 부품을 들여와 한국에서 조립하는 시스템으로 가격을 낮췄다. 첫 구매 시 8900원에 면도기와 면도날 2개를 무료 배송하며, 재구매 시 면도날 4개를 9600원에 배달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최근 1년 간 직원 수를 3명에서 12명으로 늘릴 정도로 성장 중이다. 이 센터장은 “면도기가 왜 비싸야 하냐에 착안한 성공 사례”라고 설명했다.
 
 펑키브로가 투자하고 있는 루이도 역발상 스타트업이다. 전 세계 디자이너들에게 크라우드 소싱 형태로 디자인을 받아 소량의 신발을 제작해주는 플랫폼이다. 통상 디자인을 제출하면 해당 브랜드의 이름으로 신발이 제작되는데 루이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브랜드로 신발을 제작할 수 있게 했다. 2013년 부산에서 창업해 판교에서 성장한 루이는 사무실을 미국 시애틀로 옮겼다. 송 대표는 “소품종 대량생산이 정석이었던 신발을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바꾼 경우”라고 말했다.

 명함 앱 리멤버로 잘 알려진 스타트업 드라마앤컴퍼니는 매쉬업 엔젤스에서 성장해 2017년 말 네이버에 인수됐다. 창업 당시 다른 명함 입력 앱이 있었지만 후발 주자인 리멤버가 시장을 장악했다. 선행주자들이 명함 스캔 후 인식기술의 정확도 향상에 총력을 다하는 동안, 리멤버는 역발상으로 수작업으로 명함을 입력해 정확도를 높였다. 이후 데이터베이스가 쌓인 뒤 자동 입력방식으로 바꿨다. 이 대표는 “같은 목적이라도 방법을 다르게 해 접근해 시장을 선점했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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