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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이상만 여권 발급, 여행 전 반공 교육…그때를 아십니까

121만 명 vs 2800만 명.
해외여행 자유화 원년인 1989년과 2018년 한국인의 해외 출국자 수다. 해외여행 자유화 30주년을 맞는 올해는 한국인 3000만 명이 해외로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 누구나 여권을 받아 마음대로 여행을 갈 수 있게 된 게 서울올림픽 이듬해인 89년부터였다. 30년 동안 달라진 우리네 해외여행 풍경을 정리해봤다.

해외여행 자유화 30주년
89년 여권 발급 나이 제한 폐지
90년대까지 외화 낭비 주범 낙인

30년 새 해외여행객 23배 폭증
저비용항공 타고 일본·베트남으로
1인 지출액은 80~90년대보다 감소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진 1989년 이전에는 해외여행에 나이 제한이 있었다. 87년까지는 50세 이상만 관광여권을 발급해줬다. '해외여행'이 곧 '효도관광'으로 통했던 이유다. [중앙포토]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진 1989년 이전에는 해외여행에 나이 제한이 있었다. 87년까지는 50세 이상만 관광여권을 발급해줬다. '해외여행'이 곧 '효도관광'으로 통했던 이유다. [중앙포토]

 
억눌렸던 여행 욕구
믿기지 않겠지만 1989년 전까지는 아무나 나라 밖으로 여행 다닐 수 없었다. 먼저 나이 제한이 있었다. 87년까지는 50세 이상이어야만 ‘관광 여권’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해외여행을 ‘효도관광’과 동의어로 이해했던 이유다. 한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재산, 학력, 납세 이력까지 확인했다. 이후 40세, 30세로 연령 제한이 낮아졌고 89년 1월 1일부터 연령제한이 아예 없어졌다.
 
여권 종류도 89년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이전까지 관광 여권은 한 번만 쓸 수 있는 단수만 발급했는데 89년부터 3년 복수 여권을 쓸 수 있게 됐다. 89년 전까지는 일가족이 관광여권을 신청할 수 없었다. ‘해외 도피 우려’ 때문이었다. 여권을 받으려면 ‘소양교육 수료증’이 필수였다. 한국자유총연맹의 전신인 한국반공연맹, 한국관광공사 등이 교육을 맡았다. ‘공산권 주민 접촉 시 유의사항’ 같은 걸 가르쳤다. 소양교육은 92년 폐지됐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여름방학 때면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는 해외여행 떠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중앙포토]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여름방학 때면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는 해외여행 떠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중앙포토]

 
이같은 온갖 제한이 사라지면서 해외출국자 수는 폭증했다. 88년(72만 명)보다 67.3% 늘어난 121만 명이 89년 한 해 해외로 나갔다. 해외 출국자 수는 IMF가 닥치기 전인 1996년 464만 명으로 꾸준히 늘다가 주춤, 99년부터 다시 가파른 상승세로 돌아섰다. 2005년 1000만(1008만 명)을 넘어섰고, 2016년 2000만(2238만 명)을 돌파했다.
 
 

‘동남아 5개 국 순방’ 빅 히트
2018년 한국인이 많이 방문한 나라는 일본(753만 명), 중국(400만 명 추정), 베트남(330만 명 추정)이었다. 30년 전에는 어땠을까? 해외여행이 자유화 됐지만 갈 수 있는 나라는 제한적이었다. 중국, 베트남 같은 공산국가는 언감생심이었다. 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진 뒤 양국의 여행자 왕래가 본격화하기 전까지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는 일본·홍콩·자유중국(대만)이었다. 지금은 대한민국 여권으로 165개 국을 여행할 수 있다.
 
공산권 국가를 함부로 여행할 수 없던 시절 한국인의 인기 여행지는 자유 중국, 즉 대만이었다. 사진은 타이베이 101빌딩. [사진 픽사베이]

공산권 국가를 함부로 여행할 수 없던 시절 한국인의 인기 여행지는 자유 중국, 즉 대만이었다. 사진은 타이베이 101빌딩. [사진 픽사베이]

 
해외여행 자유화 초기엔 한 번 나갈 때 되는대로 많은 나라를 가는 게 중요했다. 12일간 인도네시아·태국·홍콩 등 5개 나라를 돌아보는 ‘동남아 순방’ 코스가 ‘빅 히트’였고, 하와이·괌·사이판 3개 섬을 한 번에 여행하는 허니문 상품도 인기였다. 90년대 들어서는 대학생이 유럽 배낭여행에 열을 올렸다. 유레일패스 한 장 들고 3~4주에 걸쳐 말 그대로 유럽을 유랑했다. 바게트로 끼니를 때우고, 야간열차와 호스텔에서 쪽잠을 자며 90년대식 ‘짠내 투어’를 즐겼다.
 
1989년 7월 8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여행사 광고. 동남아 5~6개 국 '순방' 여행 상품이 눈에 띈다. 200만원 수준의 여행상품도 많았는데 당시 짜장면 값이 1000원 정도였던 걸 감안하면 매우 높은 가격이었다.

1989년 7월 8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여행사 광고. 동남아 5~6개 국 '순방' 여행 상품이 눈에 띈다. 200만원 수준의 여행상품도 많았는데 당시 짜장면 값이 1000원 정도였던 걸 감안하면 매우 높은 가격이었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구두쇠처럼 알뜰 관광을 즐기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외에 나가 외화낭비가 너무 심하다.”
89년 10월 11일, 중앙일보 사설 내용이다. 당시 신문에는 해외여행객의 헤픈 소비를 질타하는 기사가 많았다. 억눌렸던 해외여행 욕구가 맹렬한 쇼핑으로 이어진 셈이다.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1989년 해외여행객 1인 지출액은 역대 최고인 1942달러를 기록했다. 2018년 해외여행객 1인 지출액이 1029달러(1~11월 평균)였다. 참고로, 89년 짜장면 값은 약 1000원이었다. 
 
90년대까지 해외여행객은 외화 낭비의 주범으로 몰리곤 했다. 김포공항에선 해외여행을 자제하라는 피켓 시위가 자주 벌어졌다. [중앙포토]

90년대까지 해외여행객은 외화 낭비의 주범으로 몰리곤 했다. 김포공항에선 해외여행을 자제하라는 피켓 시위가 자주 벌어졌다. [중앙포토]

  
저비용항공과 OTA가 바꾼 여행
최근 10년 새 해외여행이 일상화한 건 저비용항공(LCC) 덕분이다. 2008년 7월 제주항공이 국제선 취항을 시작했고, 2018년 한국 국적 LCC의 국제선 수송 분담률은 30%를 넘어섰다. 해외여행객 10명 중 셋은 LCC를 탄다는 말이다. LCC가 띄운 최고의 여행지는 베트남 ‘다낭’이라 할 만하다. 괌, 푸껫, 세부 같은 기존의 휴양지를 압도하는 인기를 구가 중이다. 10년 전만 해도 아무도 관심 없던 도시인데 현재 인천공항에서만 하루 LCC 14편이 다낭으로 날아간다.
 
해외여행 상품을 파는 여행사는 89년 300개에 불과했다. 30년 만에 여행사 수는 비약적으로 늘었다. 2018년 ‘여행업’ 등록 업체 수가 2만1975개를 헤아린다. 그러나 국내 여행사가 맞닥뜨린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항공권 판매 부동의 강자였던 탑항공이 지난해 폐업했고, 해외여행객 3000만 명을 바라보는 시대인데도 굴지의 여행사들이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2018년 해외여행은 한국인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유럽 여행을 가도 파리나 로마 한 도시에만 머물고 혼자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도 많다. [중앙포토]

2018년 해외여행은 한국인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유럽 여행을 가도 파리나 로마 한 도시에만 머물고 혼자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도 많다. [중앙포토]

 
30년 새 한국인의 해외여행은 확연히 달라졌다. 여행 경험이 많지 않던 시절엔 여행사가 짜놓은 패키지 상품에 의지했지만 이젠 모바일로 항공과 숙소를 예약하고, 우동 한 그릇 비우러 일본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온다. 그 예약마저도 자본력과 첨단 기술을 앞세운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OTA)를 이용한다. 2018년 1월 컨슈머인사이트가 발표한 ‘숙박·항공 예약 채널 인지도 조사’에서 상위 10개 업체 중 7개가 외국 업체였다.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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