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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코치 감옥 갔지만 자신의 잘못 아직도 몰라”

‘스포츠 미투’를 처음 시작한 테니스 김은희 코치가 17일 고양시 성사체육공원 테니스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스포츠 미투’를 처음 시작한 테니스 김은희 코치가 17일 고양시 성사체육공원 테니스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체육계 곳곳에서 성추행·성폭행 고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체육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의 시작은 2016년 10월 김은희(28) 테니스 코치다. 김 코치는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테니스부 코치를 고발하고, 징역 10년형을 이끌어냈다. 김 코치는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에서 피해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했다. 김 코치의 말을 편지 형식으로 정리했다.
 

2016년 체육계 미투 김은희씨
10세 때 테니스 코치가 성폭행
“나쁜 행동이란 교육한 적 없어
체육계 성적지상주의의 현실
피해자 도와줄 독립기관 필요”

2017년 10월 13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열 살이었던 나를 수차례 성폭행한 테니스 코치가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주변에서는 “이겨서 축하한다”고 했지만 저는 울었습니다. 어린 김은희가 불쌍하고 가여워서요. 이후에도 법정 공방은 이어졌고,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징역 10년 실형이 확정됐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판결이 나기까지 꼬박 2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냐고요?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안 될 것 같아요. 수면장애, 불안, 악몽, 소화장애…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도 아침마다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제가 그랬던 것처럼 고통을 받고 있는 체육계 선후배, 동료들이 있겠죠. 그래서 제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알리고 싶습니다.
 
2001년부터 이듬해까지 강원 철원군의 초등학교 테니스부 코치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코치는 “죽을 때까지 너랑 나만 아는 거다. 말하면 보복할 거다”라고 협박했죠. 배가 아프고 출혈이 났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저는 그게 성폭행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고, 15년이 지나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대한테니스협회 등 체육계 단체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신고센터 담당자와는 연결도 되지 않았고, 문체부 조사관은 성범죄에 관련한 단어도 잘 몰랐죠. 일반 성폭행 상담소인 여성의 전화, 해바라기 센터 등이 전문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피해자 편에 서줬습니다. 체육 기관들은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기 어려웠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있는 중립적인 기관이기 때문이죠. 오로지 피해자를 위한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독립적인 기관이 필요합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경력이 끝날까봐 두려워 말을 못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테니스 지도자라는 꿈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고발했습니다. 그래도 공부를 계속해 석사 학위까지 받았고, 고양시 한 테니스 아카데미 코치로 일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솔직히 다른 피해자에게 감히 용기를 내라고 말하는 게 겁이 납니다. 모두 저처럼 승소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저도 너무 힘들었고 외로웠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용기를 냈다는 이유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한다면, ‘용기내라’는 말을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호소합니다. 피해자들 편에 서 달라고.
 
피해자들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힘듭니다. 저도 수시로 병원에 다녀야했고, 적지 않은 소송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민사소송도 진행중이지만 쉽지 않습니다. 성폭행 피해에 대한 보상 체계가 자리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가해자들을 형사 처벌하는게 우선이지만, 그것만으로 피해자들의 삶이 완전히 회복되고 치유되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가해자 코치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하는 성추행과 성폭행은 아주 잘못된 행동입니다. 당신들의 행동이 우리들에겐 평생의 아픔으로 남아요. 지금 감옥에 있는 제 사건의 가해자는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모릅니다. ‘왜 그런걸까’를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교육’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평생 운동만 하고 산 그들에게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죠. 성적 지상주의 속에서 자란 체육계가 만든 씁쓸한 현실입니다.
 
유명 선수의 피해 고백으로 수사 속도와 여론 반응이 달라지는 모습이 아쉽기는 합니다. 한 테니스 선수 출신 여성이 1998년 초등학생 6학년 때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지난해에 고발했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아 상처만 받았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제도가 바뀌길 바랍니다.
 
정리=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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