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유행에 나만의 스토리 입히면, 누가 봐도 패션남

두 남자의 스타일 토크
 자신의 이름을 딴 쇼룸을 운영하면서 여러 브랜드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알레산드로 스쿠아르치. 전 세계 아재들의 워너비다. [사진 남훈]

자신의 이름을 딴 쇼룸을 운영하면서 여러 브랜드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알레산드로 스쿠아르치. 전 세계 아재들의 워너비다. [사진 남훈]

가전제품이나 자동차와 관련된 전시회는 전 세계 어디에서 열리든 간에 신문과TV를 뒤덮는다. 그런데 옷과 음식, 주거환경에 관한 전시회는 인간 생활의 필수요소인데도 왜 주목을 받지 못할까. 우리는 어쩌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경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전 세계 남자들이 주목하는, 그러나 우리나라 남자들은 거의 주목하지 않는 패션계의 성지에 대해 두 남자가 이야기를 나눴다.
 
신동헌(이하 신)=매년 이맘 때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피티워모(Pitti Immagine Uomo)라는 행사가 옷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성지처럼 여겨지던데, 그게 대체 어떤 행사인가.
 
남훈(이하 남)=매년 1월이면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글로벌 전자 업체들이 1년 동안 열심히 개발한 제품을 발표하는 신기술 박람회 CES (Consumer Electric Show)가 열린다. 그런 행사의 패션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아, 그러고보니 CES 이름은 ‘소비 가전 쇼’인데, 이제는 가전제품뿐 아니라 자동차나 요트, 심지어 비행기까지 전시하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시대인 것 같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CES는 익숙하지만 피티워모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가전 CES 같은 피렌체 ‘피티워모’ 패션쇼
 
=매년 1월과 6월 두 번에 걸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열린다. 전세계 남성복 브랜드들과 패션업계 관계자, 바이어들이 모이는 무대다. 올 1월 행사가 벌써 95회째다. 처음엔 클래식한 포멀 브랜드들만의 공간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그런 브랜드 뿐 아니라 스트리트 캐주얼, 빈티지, 컨템포러리, 엑세서리에 이르기까지 라이프스타일의 전 영역을 커버하기 때문에 세계 남성복의 흐름을 살피는 중요한 자리다. 피티 워모의 곳곳에는 마치 공작새처럼 차려 입은 멋진 신사들이 가득하다. 아예 일본 잡지들은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피티 워모 특집으로 발간할 정도고, 이곳에서 보이는 복장들을 열심히 공부하는 한국 젊은이들도 많다.
 
=‘패션쇼’라는 게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낯설다. 팔다리 긴 모델들이 평상시에 절대 입을 수 없을 것 같은 옷을 입고 주욱 걸어다니는 건데, 그걸 보고 대체 어떤 감동을 느껴야 하는 건가.
 
=피렌체 거리에서 멋진 남자들이 쫘악 빼입고 거닐고 있는 사진을 보면, “나도 저렇게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나라 거리에 그렇게 입고 나가면 뭔가 광대처럼 될 것 같기도 하다. 주변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안 입는데.
 
=언제나 트렌드의 정점에 있는 브랜드나 제품, 컬러와 스타일이 있다. 피렌체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에는 옷을 기가 막히게 소화하는 멋진 사람들이 많다. 캐시미어 터틀넥, 체크 무늬, 스트리트풍의 넒은 바지, 커다란 스니커즈, 허리를 조인 자켓 등 유행은 언제나 다양하고, 스타일리시한 사람들도 많다. 다만 누가 이렇게 입었더라 해서 따라 입으면 같은 느낌이 나올 리가 없다. 입는 사람도 경험도 체형도 다르기 때문이다. 강조하고 싶은 건 언제나 옷을 입을 때 자신이 생략되면 안 된다는 말씀. 브랜드나 매장이 내는 유행은 그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이고, 브랜드를 위한 스토리다. 그걸 내 스토리로 만드는 건 나 자신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렇게 빼입은 모습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건가.
 
 한껏 멋을 낸 일본의 패션업계 종사자들. 평소에도 모두가 꾸미고 다니는 피렌체지만, 피티워모 기간에는 제대로 꾸미지 않으면 될 일도 안 된다. [사진 남훈]

한껏 멋을 낸 일본의 패션업계 종사자들. 평소에도 모두가 꾸미고 다니는 피렌체지만, 피티워모 기간에는 제대로 꾸미지 않으면 될 일도 안 된다. [사진 남훈]

=이탈리아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하단 얘기를 종종 하곤 한다. 급한 성격. 쉽게 흥분하는 거. 정이 많은 스타일. 가끔 믿을 수 없는 구석 등등. 다만 그들에게서 느끼는 부러운 점 하나는 좋은 브랜드, 멋진 사람, 아름다운 물건을 보면 남녀노소 모두 그걸 존중하고 귀하게 생각해주는 모습이었다. 멋지게 슈트를 차려 입은 남자나 품위 있는 드레스의 여자를 보면 주변 사람은 물론이지만 그들과 잘 모르는,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당신 참 멋있다, 아름답다고 말을 해준다. 타인의 아름다움을 비꼬지 않으니 누구라도 차려 입는 건 불편하거나 쑥스러운 행위가 아닌 것이다.
 
=하긴 “왜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느냐”는 말이 이상하기는 했다. 처음 만난 사람을 겉모습 외의 뭘로 평가해야 하는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좀 더 멋을 부려도 된다는 건가.
 
=‘겉모습만으로 모든 걸 평가하지는 말자’와 ‘겉모습이 뭐가 중요하느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실사구시나 격물치지처럼 좋은 의미지만, 후자는 자신의 예절 없음을 위장하기 위한 수사에 가깝다.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옷을 걸치는 원시 시대가 아닌 이상 현대 사회에서 복장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예절이다. 럭셔리를 즐기는 일부와 그걸 질투하는 또다른 일부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사회보단, 사회적으로 좀 더 평균적인 부와 문화의 수준이 향상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멋을 부리는 유럽과, 천편일률적으로 옷을 입는 일본의 중간에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출근 시간에 일본 전철을 타보면 정말 너무나 똑같은 색상에 똑같은 차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숨이 턱 막히는 것 같더라. 그런데 또 패션 산업의 규모를 보면 그런 일본이 더 다양한 패션이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는 분명 다르게 발전해왔지만, 현대에 와서 유럽의 영향력이 큰 건 현실이다. 지금 우리가 입는 복장을 비롯한 여러 문화들이 이탈리아와 영국, 프랑스에서 유래한 것들이 많으니 그들이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일본은 서양 복장을 받아들인 지 오래됐으나 정부나 기업, 사회 같은 권위가 시키는대로 시민들이 전형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복장의 평균 수준은 높지만 그 안에서 창의나 상상력은 부족할 수 있다. 출근 시간의 전철 복장들이 거의 동일해 보이는 건 그런 배경이 있다. 개인적인 상상력이나 시도에선 한국이 훨씬 오픈되어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멋을 부린다’라는 게 ‘사치’로 여겨지는 분위기는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명품을 싫어하느냐 하면 그런 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인지부조화일까.
 
 
명품, 비싼 브랜드 아닌 오래 빛나는 가치
 
나이를 잊게 만드는 패션. 이탈리아 사람들 은 멋진 패션을 보면 칭찬을 보낸다(사진 왼쪽), 멋진 색감의 라르디니 컬렉션. 피티워모에서는 앞으로 유행할 옷감이나 패턴, 색상까지 엿볼 수 있다. 새 슈트를 맞출 때는 이 색상을 참고하시길(가운데), 가브리엘레 파시니는 과감한 패턴과 색상으로 급속도로 성장한 브랜드다. 평범한 옷이 싫다면 도전해볼 만하다(오른쪽). [사진 남훈]

나이를 잊게 만드는 패션. 이탈리아 사람들 은 멋진 패션을 보면 칭찬을 보낸다(사진 왼쪽), 멋진 색감의 라르디니 컬렉션. 피티워모에서는 앞으로 유행할 옷감이나 패턴, 색상까지 엿볼 수 있다. 새 슈트를 맞출 때는 이 색상을 참고하시길(가운데), 가브리엘레 파시니는 과감한 패턴과 색상으로 급속도로 성장한 브랜드다. 평범한 옷이 싫다면 도전해볼 만하다(오른쪽). [사진 남훈]

=명품은 비싼 브랜드를 말하는 게 아니고, 시간을 넘어 오래도록 빛나는 가치를 가진 무언가를 뜻하는 것이다. 브랜드로 말하면 오직 그걸 살 수 있는 경제 형편만 강조되니 사치에 대한 반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한자로 말하면 ‘名品’이 아니라 ‘明品’이 정확한 의미다. 오래전에도 좋았고 지금도 좋은 문화, 제품, 가치를 자신의 수준에 맞게 즐기는 건 삶의 행복 중에 하나가 아닐까. 이렇게 좋은 가치를 가진 뜻으로 접근하면 명품은 가구, 그림, 시계, 책, 음악 등 여러가지 영역으로 확대된다.
 
=미술관에 도슨트 서비스가 있는 것처럼, 패션쇼도 누군가가 뭘 어떻게 즐기고 어떻게 실생활에 응용해야 하는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밀라노나 피렌체에 관광갈 때 일반적인 가이드 말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눈높이로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해설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역할이 그거 아닌가. 옷과 엑세서리에 갖추는 쇼핑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꼭 필요한 것과 아닌 걸 구분하며, 무엇보다 사람과 옷이 조화를 이루는 다양한 방법을 말씀드리는 것. 남 이야기 같다고 하면서도 이 기사 유심히 읽는 사람들 많다니까.
 
=아, 정말 언젠가 라펠의 너비와 각도라든지, 코듀로이의 두께처럼 디테일에 관한 이야기도 이 지면에서 나눌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가격이나 유행 같은 너무나 심플한 잣대 말고 좀 더 감성적으로 옷을 입고 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 언젠가 ‘피티워모에서 만난 멋진 독자들’ 같은 코너도 만들어 보고 싶고.
 
=어떤 나라나 도시에 가기 전에 여행 가이드북을 보고 어느 집이 유명하다더라 하는 걸 조사하기 보다는 그곳과 관련된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걸 추천드린다. 피렌체를 가지 전에 “냉정과 열정 사이”를, 런던에 가실 계획이라면 “노팅힐”이나 “킹스맨” 같은 영화를 보시면 뭔가 배경 지식도 생기고, 실제로 보고 싶은 공간들이 떠올라서 도움이 된다.
 
신동헌·남훈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남성복 편집숍 알란스 대표
신동헌 스포츠투데이·에스콰이어 기자를 거쳐 남성패션지 레옹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온갖 놀거리를 섭렵한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패션뿐 아니라 카메라·오디오·전자기타·자동차·모터사이클에 이르기까지 광폭의 취미를 자랑하는 순혈 마초다.
 
남훈 남자의 복장과 패션에 대한 연구를 삶의 목표로 삼은 클래식 슈트 매니어. 패션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여러 기업과 협업해서 브랜드와 편집숍을 함께 만들었다. 자신만의 남성복 편집숍 알란스도 운영한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