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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어가 시작됐다는 겨울 나라를 가다

윤태옥의 중국 기행 - 변방의 인문학
설국으로 변한 중국 카나쓰호의 겨울 장관. [사진 윤태옥]

설국으로 변한 중국 카나쓰호의 겨울 장관. [사진 윤태옥]

이곳은 중국 서북 변방의 북쪽 끝, 카나쓰호(喀納斯湖) 인근의 산장이다. 영하 20~30도, 호수는 얼었고 수면은 눈밭이다. 두꺼운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은 계곡으로 흘러나간다. 계곡의 설경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자연의 수묵화다.
 
알타이(중국어로는 아얼타이·阿爾泰)산맥 주봉인 타반보그드산(해발 4374m)정상에서 서남으로 85㎞ 정도 된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카자흐족자치주 아러타이지구 부얼진현에 속한다. 부얼진현에서도 눈길 산길 170㎞를 달리고 넘고 돌아와야 한다. 겨울에는 고가의 사륜구동 랜드크루저가 카나쓰로 가는 길을 지배한다.
 
나는 지난해 12월 31일 이 마을에 들어와 변방의 설국에서 새해를 맞았다. 몇 해 전부터 꿈꿔 오던 ‘신년설국 카나쓰’가 이뤄진 것이다.
 
카나쓰, 몽골어로 아름답고 신비한 호수
 
카나쓰는 몽골어로 아름답고 신비한 호수라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골 마을로 꼽힌다.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꼽아도 첫손에 든다. 여름·가을이면 수많은 여행객이 몰린다.
 
가을은 아침 물안개가 특히 장관이다. 햇살이 카나쓰호 계곡 안에 스며들면 물안개가 일어난다. 동화에서나 볼 것 같은 아름다운 풍광이다. 수많은 사진 동호인이 몰려들어 카나쓰 계곡을 셔터 소리로 채우기도 한다. 10월 중순이면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이 쌓이면 일반 차량은 통행이 어렵다. 북위 48도의 겨울엔 소수만이 목도하는 설국이 된다.
 
내가 신년을 맞은 카나쓰호의 전후좌우로 알타이란 말이 두루두루 밟힌다. 우리말이 우랄알타이어족 또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배웠던 기억 때문에 귀가 솔깃해진다. 알타이는 몽골어로 황금의 산이란 뜻이다. 알타이산맥의 주봉 타반보그드산은 중국·몽골·러시아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곳에 있다. 그곳에서 다시 50여㎞ 서쪽에서는 카자흐스탄과도 접경을 이룬다. 중국에서는 우의봉(友宜峯)이라 한다.
 
알타이산맥의 남부는 중국 행정구역으로 아러타이(阿勒泰)지구다. 아러타이 역시 알타이에서 나온 말이다. 이곳에서 동으로 넘어가면 몽골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알타이 산맥을 북으로 넘어가면 러시아의 알타이공화국과 알타이주가 이어진다. 알타이공화국은 오이라트 자치주에 속했었다가 1922년 자치공화국이 됐다. 알타이공화국과 알타이주에는 6만7000여 명의 알타이족이 산다. 시베리아의 다른 민족과는 달리 알타이 지역에 사는 여러 혈통을 하나로 묶은 민족이다. 혈연이 아니라 언어·문화·관습 등에서 많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어 별도의 민족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들의 언어는 알타이어다.
 
카나쓰호의 가을 풍경. [사진 윤태옥]

카나쓰호의 가을 풍경. [사진 윤태옥]

알타이라는 단어는 우리말과 민족의 시원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곤 한다. 알타이어족은 비교언어학에서 제기된,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다. 비교언어학은 인도유럽어족에서 시작됐다. 서구의 여러 언어가 인도유럽어족의 조어(祖語)에서 하나의 계통을 이루며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다. 음운과 문법, 어휘에서 상당수의 비교연구가 축적되어 완성된 이론이다.
 
언어학자들은 인도유럽어족 다음에 아시아의 언어에 눈을 돌렸다. 처음 제기된 것은 우랄알타이어족 가설이다. 한국어도 이것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1930년대 우랄어족와 알타이어족은 일찌감치 분리되면서 우랄알타이어족설은 폐기됐다.
 
그렇다고 해서 알타이어족 가설이 학문적으로 완성된 것도 아니다. 일부 언어학자들은 알타이어족 자체를 부정한다. 알타이어족의 여러 언어는 조어가 동일해서가 아니라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유사하다는 것이다. 물론 알타이어족의 존재를 인정하는 학자도 많다. 그들은 알타이어족의 여러 언어를 튀르크어파, 몽골어파, 만주퉁구스어파 셋으로 나누고 있다. 모두 50여 개 언어가 이에 속한다고 한다.
 
나의 첫 번째 관심은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하는가다. 학자들의 찬반으로 말하면 반반 정도인 것 같다. 찬성하는 측은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하며, 알타이어족의 다른 언어와의 친연성은 소원하지만, 만주퉁구스어파와는 비교적 가까운 언어라고 본다. 반대론도 상당하다. 알타이어족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알타이어족이 동일 조어에서 나온 어족으로 성립하다고 해도, 한국어와 관련해서 동일 계통이라고 논증할 수 있는 음운·문법·어휘 등이 인도유럽어족에 비해 빈약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하지 않는 어족 분류상의 독립어 또는 고립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내가 어설프게 기억하고 있는 알타이라는 용어는 내게 익숙한 만큼 우리에게 가까운 것까지는 아닌 셈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신년설국 카나쓰로의 겨울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몇몇 언어학 저술을 찾아보았다. 그들의 조사연구 보고서를 보면 경외심이 생길 정도다. 특정 언어의 발화자들을 찾아 오지로 가서는 발화사례를 일일이 녹음하고, 옛 문헌과 기존 논문들을 하나하나 대조하고, 두서너 언어 사이를 놓고 음운이 대응하는 사례를 찾아내 비교·분석한다. 그 속에서 규칙성을 규명하고, 수많은 어휘를 점검하여, 차용해서 유사한 것인지 조어가 같아서 유사한 것인지를 규명한다. 이런 연구과정은 그야말로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자신의 혈통이나 언어의 시원을 찾는 것은 본능이다. 그렇다고 해서 합리적 논증을 건너뛰어 가설을 사실로 단정해버리거나, 역사를 판타지 소설로 덮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정치적 상업적 목적으로 가공한 조작된 전설이고 조작한 신화, 곧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광고도 수사적 과장을 넘어서면 허위광고가 된다. Kim이라는 로마자 표기가 같다고 해서 킴 베이신저라는 여배우가 우리나라의 김해 김씨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킴 베이신저가 김해 김씨? 억지 상상
 
또 하나는 알타이어족 여러 언어가 사라져 가는 현실이다. 언어의 다양성은 곧 사고와 문화의 다양성이다. 그것이 한 뭉텅이씩 사라지는 것이다. 근현대에 걸쳐 문명의 급속한 발달은 20세기에서는 초강대국을 만들어냈다. 언어에서도 그 영향은 심각하다. 미국·중국·옛소련 등의 지배적 언어는 이미 수많은 소수민의 언어와 문화를 절멸시켰다. 지배력이 약한 언어는 사회적 언어에서 가정 내의 언어로, 전체 세대의 언어에서 노인만의 언어로, 결국 언어학자의 논문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화석의 언어로 스러져가고 있다.
 
21세기 들어서서 우리나라 언어학자들이 알타이어족 언어에 대한 현장조사와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한국어 계통론을 우리 손으로 연구한다는 의미도 있고, 사라지는 언어들을 붙들어두려는 노력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취업과 경쟁이 대학을 목 조르면서 이런 순수 인문학 연구도 외면당하는 것 같다. 그곳에 우리말과 민족의 시원이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손으로 하는 언어연구도 답보에 빠져 버린 것 같다. 카나쓰호의 겨울은 동화처럼 환각처럼 아름답지만 알타이란 말을 짚어 보는 여행객의 마음 한 켠은 씁쓸하다.
 
윤태옥 중국 여행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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