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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대기만성형 화가 세잔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지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 중인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는 후기인상파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그림 두 점으로 시작한다. 세잔을 말하지 않고는 서양미술사의 중요한 혁명인 큐비즘(입체주의)의 탄생을 말할 수 없고, 피카소는 세잔을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으니까. 마침 오늘 1월 19일은 세잔의 탄생일이다.
 
피카소가 신동이었던 것에 반해 세잔은 대기만성형 화가였다. 그가 20~30대에 그린 그림은 별로 뛰어나지 않았다. 스스로의 작품세계에 대해 갈피를 못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늘 자신이 ‘보는 것’을 제대로 그리고 있는지 의심했다. 우리는 딱 사진 같은 그림, 즉 고정된 앵글에서 한 찰나에 포착한 이미지를 정교한 명암법과 원근법으로 재현한 것을 ‘보는 대로 잘 그렸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게 정말 우리가 ‘보는 것’일까? 이건 망막에 순간적으로 맺히는 상일 뿐이다. 우리는 사물과 사람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 시간에 걸쳐 본다. 또한 최종적으로 우리가 ‘보는 것’은 망막에 맺히는 상이 아니라 뇌를 거쳐서 오는 시각 정보로서, 거기에는 기억, 판단, 감정 등이 개입되고 결합된다.
 
19세기 중후반 서양화가들이 다시 눈을 뜨게 된 것은, 진짜 사진이 나옴으로써 사진 같은 그림은 쓸모 없어지고 대신 사진이 나타내지 못하는 우리의 시각적 체험을 보여줄 새로운 미술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먼저 등장한 화풍이 모네를 위시한 인상주의 ‘외광파’, 즉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찰나적 시각 체험을 그대로 나타내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인상주의 그림은 빛과 색채를 강조하다 보니 평면적이고 공간감이 별로 없었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세잔은 40대에 고향인 엑상프로방스로 돌아가서, 식탁 위의 사과를, 멀리 보이는 생트 빅투아르 산을, 끝없이 반복해서 그렸다. 그러면서 비로소 자기 세계를 찾고 50대부터 절정으로 오르게 된다. 이 시기 작품을 보면, 인간의 눈이 여러 위치와 여러 시간에 걸쳐 훑은 세계를 과거 화가들의 원근법과는 다른 면 분할을 통해 독특한 공간감과 입체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기에서 영감 받아 큐비즘을 탄생시킨 화가가 바로 피카소였다. 세잔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를 말해준다. 내가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의심할 것. 사진 같은 신기술의 출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 그리고 각자의 전성기 시계는 다르다는 것.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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