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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의 섬 경북 영양서 만든 ‘영양만점’ 생고등어 육개장

박찬일의 음식만행 - 경북 영양 명물 음식 만들기 
영양은 경북 내륙이지만 자반보다 싱싱한 생고등어를 많이 먹는다. 이에 착안한 생고등어육개장. [사진 김하영]

영양은 경북 내륙이지만 자반보다 싱싱한 생고등어를 많이 먹는다. 이에 착안한 생고등어육개장. [사진 김하영]

영양(英陽) 가는 길은 멀다. 서울에서 간다면, 뻔한 루트를 탄다. 무리해서 밟지 않는 한 얼추 4시간은 각오해야 한다. 훨씬 먼 여수며 목포, 마산까지 고속열차로 3시간 이내에 간다. 영양 인근의 다른 도시로 가는 어떤 길도 만만치 않고 오래 걸린다. 경북 영양은 그래서 내륙의 섬이라고도 부른다. 오지 중의 오지다. 
한때는 이런 말이 영양으로서는 불편했다. 이제는 아니다. 오지가 오히려 영양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설명하는 코드가 된 것이다. 영양군에서도 더 깊은 산중인 수비면. 왕피천을 앞에 둔 곳에 별자리 관측대가 있다. 미리 듣기를  “몽골이나 히말라야 수준의 별을 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은하수도…”라고 했다. 
에이 설마. 오염과 인공 조명이 적을수록 별이 잘 보이게 마련이다. 그래도 그렇지, 영양도 한국 아닌가. 세계적인 인구밀도 때문에 어디든 인공 조명이 환하다. 속는 셈치고 관측대 옥상에 올랐다. 방문객들이 옥상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멀리 은하수가 소용돌이치듯이 나타났다. 탄성이 터졌다. 책에 나오는 별자리가 마치 하늘에 그림을 그린 듯 시야에 들어왔다. 
경북 영양은 2015년 국제밤하늘협회로부터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선정됐다. 영양 천문대에서 촬영한 별 일주 사진. [중앙포토]

경북 영양은 2015년 국제밤하늘협회로부터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선정됐다. 영양 천문대에서 촬영한 별 일주 사진. [중앙포토]

영양은 2015년 국제밤하늘협회로부터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선정됐다. 인공 조명의 밝기를 비롯한 까다로운 조건을 따져 밤하늘을 얼마나 잘 볼 수 있을지 판단해 부여하는 제도다. 소외된 땅, 그래서 ‘투자가치 없는 곳’이었던 영양의 지리적 조건이 오히려 강점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지난 늦여름 반딧불을 보러 영양에 들어갔다. 반짝이는 반딧불이 검디검은 흑색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올랐다. 영양은 그런 땅이었다. 시대가 외면했던 역사가 영양의 청정을 완성했다. 
 
파노라마 별자리·반딧불에 관광객 탄성 
영양의 인구는 1만7356명이다(2018년 12월 기준). 오죽하면 새터민(탈북자)을 군내 오지인 수비면에 유치하는 방안이 나왔을까. 인구 한 명이 아쉬운 땅이다. 매달 인구가 꼬박꼬박 떨어진다. 노인 인구가 많은 까닭이다. 70대 이상 인구의 비율도 압도적이다. 영양은, 많은 이들이, 결국 인구 소멸로 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런 불편한 현실과 고립에 가까운 불편이 역설적이게도 영양의 아름다움에 대한 재조명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주말이나 방학 때는 별자리와 반딧불을 기대하며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경북 영양에는 반딧불이를 보기 좋은 특구가 있다. 빙글빙글 춤 추듯 날아다니는 늦반딧불이의 궤적을 사진으로 담았다. [중앙포토]

경북 영양에는 반딧불이를 보기 좋은 특구가 있다. 빙글빙글 춤 추듯 날아다니는 늦반딧불이의 궤적을 사진으로 담았다. [중앙포토]

이제는 그들이 영양에서 맛있게 먹을 명물 음식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영양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청년이 영양에 들어와서 음식을 만들어 팔기를 바란다. 먹고살 길이 있다면, 청년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한다. 말하자면, 나는 그들이 만들 요리도 함께 개발해야 했다. 영양에 청년이 과연 돌아올 것인가. 
영양은 알려진 대로 『음식디미방』의 현장이다. 정부인 장씨(장계향)가 지은 조리 고서다. 많은 이들이 장계향이 살며 책을 집필했던 석보면 두들마을에 가서 옛 음식 문화를 배우고 체험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음식 문화가 발달하지는 못했다. 인구가 적고, 방문객도 드무니 이른바 요식업이 활발할 리가 없었던 셈이다. 
그나마 영양다운 음식을 내는 곳이 읍내의 나물 집 ‘고은식당’이다. 여주인 김옥분씨가 내는 나물정식 한상을 받아봤다. 희한한 나물이 가득했다. 명이, 눈개승마, 우산나물, 개두릅 등 10종이 넘는 나물에 싸리·먹버섯 같은 자연산 버섯도 올라왔다. 맛은 말해 무엇하리. 
5월이 되면 명이 같은 각종 나물이 청정한 산골에서 쏟아진다. 사진은 명이나물 군락. [사진 김하영]

5월이 되면 명이 같은 각종 나물이 청정한 산골에서 쏟아진다. 사진은 명이나물 군락. [사진 김하영]

이런저런 연고로 내가 영양의 음식을 만들어볼 기회가 생겼다. 누구나 영양에 와서 대표적인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것, 영양의 재료를 쓸 것 등의 조건이 있었다. 대중적으로 가볍게 먹을 수 있되, 영양의 특징을 담고 있어야 했다. 고민이 깊었다. 
우선 비빔밥을 만들어봤다. 영양은 내륙 산간지역이어서 자연산 나물이 흔하다. 군데군데에서 완만한 산지(山地)를 이용한 나물 재배도 활발하다. 한겨울에도 소금에 절이거나 건조한 나물로 어느 정도 맛을 낼 수 있다. 나물만큼은 언제나 최상의 물건을 얻을 수 있다. 
알다시피 비빔밥은 진주와 전주가 유명하다. 영양과 문화적으로 가까운 안동에는 헛제삿밥이 있다. 헛제삿밥도 일종의 비빔밥이다. 다만 고추장을 쓰지 않을 뿐이다. 조선간장을 넣고 담박하게 비벼서 먹는다. 영양이 이토록 나물이 좋은데 대표적인 비빔밥은 왜 없을까 싶었다. 
낮은 온도로 천천히 익힌 달걀을 비빔밥 위에 얹었다. [사진 김하영]

낮은 온도로 천천히 익힌 달걀을 비빔밥 위에 얹었다. [사진 김하영]

내가 개발한 비빔밥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했다. 김옥분씨가 준비해준 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었다. 우선 모양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보기 좋은 떡. 그것이 일차 목표였다. 상업적으로 잘 팔릴 수 있는 물건은 의장(意匠) 즉, 시각적인 미감이 있어야 한다. 
나물은 좋다. 그러니 보기 좋게 마감하면 될 일이었다. 달걀을 크게 지단을 부쳐서 얹고 고추장 양념을 멋지게 뿌려내는 방식을 써봤다. 밥이 완전히 덮여서 나물이 보이지 않았다. 시식하는 이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다른 하나는 현대 요리과학을 응용했다. 낮은 온도로 천천히 익힌 달걀을 얹었다. 비빔밥에 흔히 생 노른자를 얹는데 이럴 경우 너무 질다. 저온으로 익히면 부드럽되, 어느 정도는 익은 상태라 생 노른자를 비볐을 때보다 맛이 좋다. 여기에서 경상도 지방에서 즐겨 쓰는 고추장아찌, 방풍나물, 초피잎 장아찌 등으로 맛을 더했다. 색다른 비빔밥이 나왔다. 맛도, 비주얼도 좋은 평가를 얻었다. 
생나물과 말린 나물을 적절히 섞어 맛을 낸 영양 산나물 비빔밥. 왼쪽은 달걀을 크게 부쳐 덮었고, 오른쪽은 부드럽게 익힌 계란을 얹었다.[사진 김하영]

생나물과 말린 나물을 적절히 섞어 맛을 낸 영양 산나물 비빔밥. 왼쪽은 달걀을 크게 부쳐 덮었고, 오른쪽은 부드럽게 익힌 계란을 얹었다.[사진 김하영]

 
영양 지나 산 넘으면 고등어 상하기 시작
다음으로 고등어육개장을 만들었다. 몇몇 경상도 내륙지방에서 먹는 요리인데,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우연한 계기로 아이디어가 되었다. 영양 장날, 시내에 깔린 생선 좌판에 고등어가 흔한 게 아닌가. 그것도 서울에서 볼 수 없을 만큼 싱싱한 상태였다. ‘경상도 내륙=간고등어’의 공식 아닌가. 알고 보니 영양은 울진·영덕 등 항구와 가까워서 예부터 생고등어를 먹어왔다는 것이다.
옛날, 고등어가 바닷가에서 실려서 영양으로 올 때까지는 생고등어로 팔았다. 영양에서 험준한 산을 넘어 임하에 이르면 고등어가 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임하부터는 소금을 쳐 간고등어가 됐다. 최종 목적지인 안동과 영주는 당연히 간고등어의 명물 지역이 되었다. 이런 사연으로 영양의 생고등어를 써서 육개장을 만들었다. 고등어와 대파의 수확 시기는 대체로 비슷하다. 맛이 최고로 오른 겨울 대파와 고등어뼈로 육수를 내고, 살을 찢어 넣어 고명을 냈다. 고추기름을 뽑아 얼큰하게 만들었더니 이 또한 별미가 됐다. 
영양에서 난 온갖 나물과 생고등어를 넣고 끓인 생고등어육개장. [사진 김하영]

영양에서 난 온갖 나물과 생고등어를 넣고 끓인 생고등어육개장. [사진 김하영]

영양 같은 산간 오지에서는 그저 나물과 향토 산물로 식사하기를 즐기는 줄만 안다. 외부 시선이 그렇다. 그러나 오지일수록 현대의 유행 음식에 소외되어 있다. 이를테면 피자와 치킨, 스파게티 같은 것들이다. 젊은이도 거의 없고 인구가 적어 이런 요리를 취급하는 가게가 아주 드물다.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매 끼니 나물 정식을 먹을 수는 없다. 도시의 음식이 의외로 지역에서 크게 인기가 있는 것도 위에 든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피자도 만들어보기로 했다. 영양은 버섯이 좋다. 먹버섯은 식감도 좋고 색깔도 검어서 이채롭다. 이것을 다른 재료와 섞어 피자의 토핑으로 마감했더니 아주 멋지고 유니크한 고급 피자가 되었다. 
영양까지 가는 길은 여전히 멀다. 더 빨리 갈 방법은 요원한 일이다. 대신, 얻는 것이 있다. 자연에 더 가까이 존재하는 천혜의 환경이다. 여기에 맛있는 명물 음식까지 더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나물을 얹은 먹버섯 피자. 영양은 험준한 산악에서 좋은 자연 버섯이 많이 생산된다. [사진 김하영]

나물을 얹은 먹버섯 피자. 영양은 험준한 산악에서 좋은 자연 버섯이 많이 생산된다. [사진 김하영]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글 잘 쓰는 요리사. ‘로칸다 몽로’ ‘광화문 국밥’ 등을 운영하며 음식 관련 글도 꾸준히 쓰고 있다. 본인은 ‘한국 식재료로 서양요리 만드는 붐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불리는 걸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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