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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놀지 모르는 사람 내게 오라…동네 책방의 재발견

기자
백만기 사진 백만기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25)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본 '쿠텐베르크 성경'. 미국 타임지에서 과거 1천년 동안 인류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발명이 무엇인지 조사한 적이 있다. 1위를 차지한 것은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이었다. [뉴시스]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본 '쿠텐베르크 성경'. 미국 타임지에서 과거 1천년 동안 인류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발명이 무엇인지 조사한 적이 있다. 1위를 차지한 것은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이었다. [뉴시스]

 
미국 타임지에서 과거 1000년 동안 인류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발명이 무엇인지 조사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이 인터넷이나 전화의 발명을 예상했다. 그러나 1위를 차지한 것은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이었다. 일부 사람만 점유하던 지식과 정보가 그의 인쇄술로 인해 여러 사람에게 보급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일일이 원본을 베껴 옮겨야 했다. 그래서 책을 하나 만들려면 시간이 꽤 소요되었다. 예를 들어 300페이지의 책을 하나 제작하는데 12명의 사람이 18일이 걸렸다. 이렇게 귀하다 보니 책은 아무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세에는 귀족이나 부자만이 책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도 겨우 몇 권 정도였다. 일반인은 책을 소유할 수도, 볼 수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300페이지 책 제작에 12명이 18일 일해야  
내가 어렸을 적에도 책은 귀했다. 그때는 인쇄기술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부족해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던 시기였다. 책을 구하기가 어려워 주로 헌책을 돌려 보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택배를 통해 받기도 하지만 과거엔 일일이 책방을 돌며 “어떤 책 있습니까”라고 직접 서점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다가 책을 소유하고 있는 서점이 있으면 주인과 가격을 흥정하고 책을 샀다. 군대에 입대해서도 여전히 책을 보기가 어려웠다. 크리스마스 즈음해 위문품으로 책이 오면 내무반에서 그 책들을 돌려 보았다.
 
1980년대 우리나라 경제가 살아나면서 책을 구하기가 조금씩 용이해졌다. 살던 동네에 서점이 하나둘 생겼다. 일요일이면 그곳에 들려 책을 구경하고 읽을 만한 책이 있으면 한두 권씩 사서 읽었다. 서점 주인이랑 책에 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고 내 취향을 알고 있는 그가 책을 추천해줄 때도 있었다.
 
언젠가부터 재벌기업에서 경영하는 대형서점이 들어서며 동네 서점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대형서점과 경쟁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내가 이용하던 책방도 문을 닫아 나로서는 참 아쉬웠다. 대형서점은 인터넷으로 책을 검색할 수 있고 도서 종류도 다양하지만 서점주인 아저씨와 일상 얘기를 나누는 그런 소소한 재미는 없어졌다.
 
우리 동네의 한 책방. 최근 사라졌던 동네 책방이 다시 여기저기 생기고 있다. 우리 동네의 한 책방은 독서를 좋아하는 이웃 4명이 돈을 모아 보증금을 서로 냈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4명이 당번제로 운영한다. [사진 백만기]

우리 동네의 한 책방. 최근 사라졌던 동네 책방이 다시 여기저기 생기고 있다. 우리 동네의 한 책방은 독서를 좋아하는 이웃 4명이 돈을 모아 보증금을 서로 냈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4명이 당번제로 운영한다. [사진 백만기]

 
최근 사라졌던 동네 책방이 다시 여기저기 생기고 있다. 도서를 판매할 뿐만 아니라 독서토론을 주선하고 영화도 감상하며 심지어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우리 동네의 한 책방은 독서를 좋아하는 이웃 4명이 돈을 모아 오픈했다.
 
가게를 빌리는 보증금을 서로 나누어 냈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종업원을 쓰지 않고 4명이 당번제로 운영한다. 1주일에 오전 오후 한두 번씩만 근무한다. 공간이 좁다 보니 인문학 서적을 위주로 진열하고 한쪽에서 커피를 팔며 가끔 음악회도 연다.
 
얼마 전에 새로 생긴 책방은 오랫동안 군에 근무했던 예비역 군인이 오픈했는데 이곳에서도 독서토론회를 열고 동호인끼리 영화도 즐긴다. 옆 동네에 있는 또 다른 책방도 차를 팔고 고객이 스터디 클럽을 열기도 한다. 동호인을 상대로 박물관 기행 같은 문화행사도 벌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야말로 놀이터가 생긴 셈이다.
 
은퇴하면 직장 동료나 거래처에서 밥이나 한번 먹자는 전화가 자주 오고 한동안은 바쁘다. 그러나 6개월 정도 지나면 연락이 뜸해지고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며 관계가 희미해진다. 아예 끊어지는 경우도 있다. 여행도 한두 번이지 시간이 지나면 막상 갈 곳이 없다. 온종일은 아니더라도 시간제로 일도 하고 싶다. 돈을 벌기보단 그저 일이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관심사가 같은 이웃이다. 관심사가 같으면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우리 동네 책방의 사례처럼 이웃 몇몇이 뜻을 모아 공동 창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용인 수지에 있는 ‘문탁네트워크’라는 인문학 커뮤니티도 그렇게 탄생했다. 처음에는 이웃 9명이 집에 모여 책을 읽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서로 돈을 모아 공간을 임차하여 카페, 공연장 등으로 분야를 확대하였다.
 
아름다운인생학교의 독서 토론 모습. 분당 아름다운인생학교도 그런 커뮤니티의 하나다.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인문학 독서포럼을 열고 있으며 집에 있는 책을 가져와 서로 돌려본다. [사진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의 독서 토론 모습. 분당 아름다운인생학교도 그런 커뮤니티의 하나다.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인문학 독서포럼을 열고 있으며 집에 있는 책을 가져와 서로 돌려본다. [사진 백만기]

 
이웃끼리 뜻모아 책방 공동 창업
주위에 살펴보면 이런 공간이 곳곳에 있다. 분당 아름다운인생학교도 그런 커뮤니티의 하나다.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인문학 독서포럼을 열고 있으며 집에 있는 책을 가져와 서로 돌려본다. 책의 가격에 상관없이 한 권에 1천 원씩 판매도 한다. 책뿐만 아니고 생활용품도 경매를 통해 나눈다. 돈도 벌고 즐거움도 있다.
 
창업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기왕의 동네 책방이나 인문학 커뮤니티를 찾아 그들과 함께 노는 것도 괜찮다. 죽음의 5단계 설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그의 책 ‘인생수업’에서 우리 인간을 지구별에 놀러 온 존재로 표현했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이곳에서 그저 잘 놀다 본향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놀지 몰라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동네 책방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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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