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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전자 분석 키트 파는데, 한국선 검사 항목도 규제

메디젠휴먼케어의 유전자 분석 시스템. 하루 최대 5000건까지 분석할 수 있지만 검사 항목을 제한하는 규제에 막혀 직접 의뢰 건수는 많지 않다. 최정동 기자

메디젠휴먼케어의 유전자 분석 시스템. 하루 최대 5000건까지 분석할 수 있지만 검사 항목을 제한하는 규제에 막혀 직접 의뢰 건수는 많지 않다. 최정동 기자

“유전자 분석 의뢰가 들어오면 하루 5000건까지도 소화할 수 있지만, 규제에 막혀 실제 분석이 이뤄지는 건 일주일에 50건 정도가 전부에요.”
지난 8일, 서울 역삼역 인근 메디젠휴먼케어 유전자 분석실은 조용했다. 대당 1억원이 넘는 유전자 분석 장비 5대는 이날 오전 작업을 끝낸 뒤 멈췄다. 김경식 메디젠휴먼케어 팀장은 “의료기관 건강검진센터를 통해 접수되는 유전자 검사 의뢰는 하루 평균 600건 정도지만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 검사는 이와 비교해 접수 건수가 절대적으로 적다”며 “규제가 풀려 검사 항목이 늘어나면 의뢰 건수도 많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기관 검진센터와 소비자 직접의뢰 검사 건수에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정부의 규제 때문이다. 동일한 유전자 검사지만 검사 항목에선 큰 차이가 있다. 의료기관을 통한 유전자 검사는 120가지 항목에 대한 검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소비자 직접의뢰 검사는 12가지 항목에 대해서만 정부가 허용하고 있다. 이를 허가한 것도 불과 3년 전인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침 몇 방울이면 집에 앉아서 각종 암 발병 위험도를 검사할 수 있지만, 규제에 막혀 국내 시장은 제자리걸음이다. 반면 유전자 분석을 통한 질병 예방과 정밀의료 세계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기술 발전으로 검사 비용도 저렴해지고 있다. 현재는 검사 항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15만~30만원이면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다. 
 
유전자 검사 키드. 이 키트를 활용하면 택배를 통해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다. [사진 메디젠휴먼케어]

유전자 검사 키드. 이 키트를 활용하면 택배를 통해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다. [사진 메디젠휴먼케어]

 
김경식 팀장은 “미국이나 중국 유전자 검사 업체에서 검사 키트를 사서 각종 질병 발생 위험도에 유전자 검사를 의뢰할 수 있다”며 “유전자 검사 시장에서 국경이 무너진 지 오래지만 유독 국내에선 규제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 최대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선 유전자 분석을 통해 조상을 찾을 수 있는 분석 키트를 판매하고 있다. 일부 키트는 국제 택배를 통한 한국 배송도 가능하다. 
 
유전자 검사 항목 규제가 대표적인 역차별 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해외 유전자 분석 기업에 대한 적당한 규제가 없다 보니 국내 기업이 역으로 차별받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시범사업을 통해 개인 의뢰 유전자 검사 항목을 기존 12종목에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산업통상자원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개인 의뢰 유전자 검사를 허용하는 안을 논의하는 중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개인 의뢰 유전자 검사 규제는 국내 원격의료의 현실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오래지만, 국내 원격의료 수준은 시범사업이 처음으로 진행된 20년 전과 비교해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의료법이 원격의료를 ‘정보통신기술을 사용해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과 기술을 지원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어서다. 의료인과 환자 사이의 스마트폰 영상통화를 통한 진료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8월 여야 5당 원내대표와의 오찬 회동에서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의료혜택이 닿기 어려운 도서벽지 환자의 원격의료는 선한 기능”이라며 “의료민영화로 가지 않고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정도의 원격진료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년이 넘도록 의료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7년 5월 총리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활용한 원격진료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015년부터 원격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7년 5월 총리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활용한 원격진료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015년부터 원격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이와 달리 개인 의뢰 유전자 검사를 일찌감치 허용한 일본은 2015년부터 병·의원과 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했다. 섬이나 격오지 등에서만 허용하다 전국 어디서든 원격의료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앴다. 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른 진료비 증가를 막고 IT 기술과 결합한 스마트 의료 산업을 키우려는 게 목적에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기술 발전에 맞추지 못하고 의료계가 정체된 게 문제”라며 “일본 정부가 초기에 접근한 방식처럼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에 먼저 스마트 헬스케어를 열어주는 방식으로 규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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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원격의료에 꼭 필요한 의료 빅데이터 역시 곳곳이 암초다. 개인정보 보호법과 의료법에 막혀 의료 빅데이터를 신약 개발이나 정밀의료 분야에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유전자 분석을 통한 정밀의료 시장을 키우기 위해선 의료 빅데이터 활용이 필수”라며 “정부가 세계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라고 기업에 주문하면서도 정작 관련 규제는 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강기헌ㆍ최연수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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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